퍼레이드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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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장편소설

은행나무 출판



 

제15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작인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소설 《퍼레이드》가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커뮤니케이션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의 유대를 갖고자 애를 썼으며, 그런 젊은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제15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 소감 중에서




 


20년이 지난 책이라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과 지금 젊은이들의 감성이 완전히 다를 거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기술의 발달로 통신과 환경이 발달한 것일뿐 현재와 다를 바 없는 공동생활의 삭막함과 개인주의는 마찬가지였다.

 

방 둘에 거실이 있는 아파트 401호에서 남자 셋, 여자 둘 5명의 청춘들이 우연히 동거를 하게 된다. 소설은 5명의 동거인들이 차례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옴니버스식 전개로 구성되어있으나 화자가 바뀌어도 이야기는 계속되어 각 개인이 가진 사연을 듣고 내면의 감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스기모토 요스케”는 21세 H대학 경제학부 3학년으로 선배의 애인을 호시탐탐 노린다.

“오코우치 고토미” 23세 무직으로 인기 배우 ‘마루야마 도모히코’와 (비밀연애)열애 중이다.

“소우라 미라”는 24세 일러스트레이터 겸 잡화점 점장으로 삶을 고뇌하며 음주에 심취 하는 중이다.

“고쿠보 사토루”는 18세 자칭 ‘밤일’에 종사하는데 쓸모없는 젊음을 팔아치우는 중 이다.

“이하라 나오키”는 28세 독립영화사에 근무하고,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예상 중이다.

 

 

처음은 한 공간 안에 생활하며 마음을 터놓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주거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라 일정한 거리감을 두며 필요한 말만하는 동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의 아파트 이웃과 인사하며 지내지 않는 현상처럼, 내가 쉬고 안락함을 위한 공간에 대해 침범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심심할 때면 왠지 시간이란 직선의 개념이 아니라 그 양끝이 연결된 원 같은 느낌이 들고, 아까 지나간 시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보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현실감이 없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런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P10 스기모토 요스케)

 

마지막에 요스케는 왜 울음을 터트렸던 것일까. 윤리적으로 선배의 애인을 뺏은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자신을 믿고 있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을 눈물로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그런 장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싫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을 거라면 웃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인 만큼 모두들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미라이도 나오키도 요스케도 여기서는 모두 선인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계산된 교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는 이 정도가 딱 좋다. 물론 이런 생활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순조로울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P103 오코우치 고토미)

 

잘생긴 마루야마와의 시간은 행복하지만 정신을 놓고 있는 미루야마의 어머니를 본 이후엔 고토미의 마음은 변해버렸다. 마루야마를 좋아해도 20대의 풋풋한 사랑을 즐기고 싶은 고토미였기에 선남선녀로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만을 바랄뿐 동정의 시선을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철부지 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남자와 요양이 필요한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것을 저울질하는 고토미가 현실적일 수도 있다.

 

고토미의 계산된 행동이 카톡이나 SNS소통이 없는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코로나를 겪은 이후 더욱 고립과 개인화를 겼었기 때문에 사회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적당한 거리감이 편안함을 준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있는 그대로 산다’는 풍조가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란 나에게는 ‘게으르고 칠칠맞지 못한 생물’의 이미지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P141 소우라 미라이)

 

청춘. 호기심 그 어느 사이에 방황하는 젊은 피들은 들끓는 자신들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가도 본성을 되찾으려는 내면의 분열들이 미라이에게 보였다.

 

요즘 들어 왠지 자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항상 서 있는 공원에서, 손님과 깉이 머문 호텔에서, 손님의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온 사우나에서, 필로폰을 너무 많이 해 이불에 오줌을 쌀 뻔했던 마고토의 아파트에서……여러 장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지만, 언제나 걷기만 할 뿐 내게 도착지란 없다. (P233 고쿠보 사토루)

 

어릴 때부터 가족의 편안함을 알 수 없었던 소년은 문 열린 빈집에 들어가 그 집의 거주자들의 행동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취미나 성향을 몰래 훔쳐보며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정서의 빈 공간을 채워보려 한다. 그래서인지 18살임에도 밤일에 종사하며 미래 따위는 없는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지만 나오키의 멋진 모습에 직업이라는 것을 가져보는 꿈을 꾸기도 하고 요스케와 고토(미)의 설득과 관심으로 대학이라는 것을 준비하려 한다.

 

고토 역시 최근 몇 달 동안 함께 살긴했지만, 내게는 단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일뿐이다. 사실 이 모호한 거리감이 어렵다. 우린 버럭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가깝지도 않고, 눈앞에서만 짐짓 걱정해주는 척하며 끝낼 만큼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P272 이하라 나오키)

 

마지막 반전은, 충격이다. 모두가 가면을 쓴채 공동의 공간을 쓰는데 서로가 진짜 서로에 대해 몰랐을까. 어쩌면 내 주변에도 뉴스에 나올 법한 범죄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고 나를 제외한 모두를 경계하게 만드는 소설. (또는 모두가 나를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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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𓂃𓏧 '은행나무'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이렇게 심심할 때면 왠지 시간이란 직선의 개념이 아니라 그 양끝이 연결된 원 같은 느낌이 들고, 아까 지나간 시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보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현실감이 없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런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P10 스기모토 요스케) - P10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그런 장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싫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을 거라면 웃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인 만큼 모두들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미라이도 나오키도 요스케도 여기서는 모두 선인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계산된 교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는 이 정도가 딱 좋다. 물론 이런 생활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순조로울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P103 오코우치 고토미) - P103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있는 그대로 산다’는 풍조가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란 나에게는 ‘게으르고 칠칠맞지 못한 생물’의 이미지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P141 소우라 미라이) - P141

요즘 들어 왠지 자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항상 서 있는 공원에서, 손님과 깉이 머문 호텔에서, 손님의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온 사우나에서, 필로폰을 너무 많이 해 이불에 오줌을 쌀 뻔했던 마고토의 아파트에서……여러 장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지만, 언제나 걷기만 할 뿐 내게 도착지란 없다. (P233 고쿠보 사토루) - P233

고토 역시 최근 몇 달 동안 함께 살긴했지만, 내게는 단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일뿐이다. 사실 이 모호한 거리감이 어렵다. 우린 버럭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가깝지도 않고, 눈앞에서만 짐짓 걱정해주는 척하며 끝낼 만큼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P272 이하라 나오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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