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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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베르나르 뷔페 그림
백수린 옮김
안온북스 출판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사강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감성과 세심한 관찰력, 담담한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해독일기>는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자동차 전복 사고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에 중독된 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쓴 소설로 백수린 작가의 번역했다.

책의 장마다 있는 베르나르 뷔페의 흑백 그림이 그 불안을 잘 보여주는 듯했는데 여자 나체 그림들이 치료제로 인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잠을 자거나 바닥에 느러져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왜 나는 모든 이들이 감각적이라 말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글이 난해한건지ㅠㅠ 다른 책을 읽지 않고 해독일기만 읽은터라 일기 내용이 너무 짧기도 했고,, 그 짧은 내용들도 중독 치료 과정동안의 불안들만 보였다.


🔖
화요일.
아마 더 힘들어질 모양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침부터 숨이 차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되는가 보다.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기분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수화기를 들고, 담대한 모습을 유지하며,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차분하게 설명하면, 그들은 무언가를 해줄 것이다. 내가 떠날 순간을 늦출 그 무언가를. 나를 위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에게 반대로 작용한다. 그것은 꽤 끔찍한 일이다. P33



#해독일기 #프랑수아즈사강 #베르나르뷔페 #백수린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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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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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소설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출판

 


15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고, 모두 중년 남성의 ‘나’가 화자여서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홀로 중년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기도해서 읽다보면 한 인물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각 단편소설은 강렬하게 기억 남는 사건이나 반전 없이 표지의 그림처럼 강물에 떨어진 낙엽들이 물길따라 떠내려가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현재의 안온한 삶이 유지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감, 예술가와 대학가의 직업을 갖고 있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의 고뇌하는 모습은 내가 중년의 나이라 그런지 공감되었다. 한편으로 저물어가는 젊음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내가 놓쳤던 무언가와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오스틴>

 

아이들이 태어나며 바뀐 일상과 나이가 든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며 느낀 감정. 내 인생이 아니라고 남일이라 여겼던 이야기가 내 삶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감. 가족이 생기고 안정감이 있음에도 눈물이 많아진다.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잃을 것만 같은 상실감을, 이것이 나이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소설.

 

 

🔖친구들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는 두툼한 허리와 넓적하고 편한 신발,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굴복해버렸다. 

P14 오스틴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늦은 밤 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서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벽 바로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더욱 거대한 부재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늘 있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P21 오스틴

 

<넝쿨식물>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이제 방안에는 다른 기운이,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P58 넝쿨식물

 

삼십대. 동네 카페 바리스타로 일하는 나와 추상화를 그리는 마야는 판화가로 꽤 유명한 예순즈음의 라이어널 집에 세를 들어 산다. 라이어널은 20대 젊은 여자를 모델로 누드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의 작품이 성적이라며 비난하던 마야와 나는 라이어널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다. 삼십대는 최고의 성과라 말하는 라이어널의 말에 지금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으며 사랑하는 일을 알아가는 중이라 답을 한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마야와 헤어지게 됨을 알아채게 되고,(직업도 재산도 꿈도 명확하지 않은 자신에 비해 마야는 꿈이 있으니 헤어지는 것이겠지만) 우연히 라이어널의 작업실에서 마야와 닮은 누드화를 보게된다.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손 내밀던 라이어널은 마야에게도 손을 내밀었을까. 그래서 마야는 라이어널을 통해 성공하고 싶었던 것일까.

 

<첼로>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P92 첼로



 

아내 내털리는 유능한 첼로 연주자이지만 손의 떨림으로 연주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낙담한다.

 

<라인벡>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P126 라인벡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P126 라인벡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꺠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P127 라인벡

 

리베카와 데이비드. 그 두 연인과 오랜 친구처럼 지냈지만 둘 사이의 흔들림과 권태 사이에 한번씩 자신이 이용당하는 듯한 기분. 함께 있으면 좋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셋 모두 안다. 각자의 길을 가야하는 기로에서 왜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지. 아니 그런 마음을 가졌었는지도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

 

<숨을 쉬어>

 

🔖어쩌면 이언은 이런 불행을 내게만 내보였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이라고,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다고 알려주기 위해. 아니면 그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저 자기가 뽑은 패에, 자신에게 주어진 아버지에게 실망한 건지도. 아이가 가장 원한 건 그저 다른 삶이었는지도. 

P154 숨을 쉬어

 

아이는 풍족한 장난감과 환경을 어른과 다른 호기심으로 소유욕으로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 모든 걸 갖추었는데 어릴 때 물에 빠진 기억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기침을 하는 것으로 아이도 부모도 모두 예민하다. 사고가 일어난 후.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 정상처럼 보이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정작 마음으로 고통은 극복하지 않았다. 경제력과 방법이 잘못되었나. 결국 극복 못한 모습. 아이 부모 모두.

 

<벌>

 

🔖내가 너무 세게 밀면 모든 게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P212 벌



 

🔖 마치 아내가 우리 둘 다 말하지 않았던 우리 사이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정통으로 찌른 것 같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녀의 어떤 측면에 나는 또한 이끌린다는 사실을. 

P227벌

 

 

알렉시스와 나. 그리고 딸 리아. 별거 중인 부부의 헤어지는 감정들. 곧 떨어져 추락할 듯한 불안함과 더 이상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모두가 안다. 그 사이에 더 불안하게 벌들이 집에 벌집을 짓고. 이미 마음 떠난 아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지만. 인정하면 희망조차 사라질 것 같다. 구질구질하게도 리아와 벌을 핑계로 끊어질 것 같은 인연을 붙들고 있다.

 

<포솔레>

 

🔖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P232 포솔레

 

육아에 지쳐 유일하게 힐링하는 공간.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고 변해가는 그런 공간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그리움으로.

 

<히메나>

 

🔖 그해 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음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P267 히메나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P287 히메나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나와 직장의 안정감을 위해 노력하지만 젊은 나이의 경쟁상대에게 질 때마다 힘들어라는 칼리. 그런 둘 사이에 젊은 히메나와의 대화로 서로가 알지만 말하지 않던 충고들을 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긴 시간이 흐르면 번듯한 집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고 아이도 없고 안정적인 직업도 없이 사는 지금을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 매일을 쉬지 않았고 미래를 꿈꾸었고 노력했지만 지금 현실의 답답함이 보였던 소설.

 

<사라진 것들>

 

🔖 우리는 아주 이상한 이틀을 함께 보냈다고, 그리고 내가 떠난 뒤 우리는 아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어쨌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이유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에겐 아직 반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P326 사라진 것들

 

#사라진것들 #앤드루포터 #읽을만한책 #독파 #독파챌린지 #잔잔한 #단편소설 #신간도서 #북클럽문학동네 #문학동네 #신작 #내돈내산 #서평


친구들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는 두툼한 허리와 넓적하고 편한 신발,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굴복해버렸다.

P14 오스틴 - P14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늦은 밤 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서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벽 바로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더욱 거대한 부재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늘 있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P21 오스틴 - P21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P92 첼로 - P92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P126 라인벡 - P126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P232 포솔레 - P232

그해 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음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P267 히메나 - P267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P287 히메나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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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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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032



 


나는 시가 어려워서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눈으로는 시를 읽고 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가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ㅠㅠ 
박준 시인의 시는 독파를 하는 2주 동안 한 번에 읽지 않고 나누어 천천히 읽어보았는데,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롭게 이해되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군인, 노인, 사람들.. 많은 대상들이 있지만 붙잡히지 않는 그리움, 아련함들이 담겨있었다.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문장은 작가가 시를 쓰는 마음가짐과 그 대상들이 글 속에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어떠해야하는지 잘 보여주는 듯했다. 


자주 나오는 '미인'은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 동백을 함께 보았던 헤어진 연인은 아니었을까. 풍요롭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풍성했었 그 시절에 빛 하나들어오는 창만 있어도 함께여서 좋았던 사람. 당신의 말들에 연을 묶어 놀던 그 때 아름다움의 끝을 하늘에 띄워두고 눈을 감으면 보일 것 같은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제는 병이 다 나은 걸까. 물론 꾀병이겠지만 어둠에서 더는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시의 해석이 절실합니다 ㅎㅎ 문학평론가의 해석을 찾아보러 가야겠어요..)

 


🔸박준 시인의 '추천책'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인간과 말」

 


🔸가장 좋았던 시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시집 속 밑줄 긋기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P029 관음(觀音)-청파동3

 

변심한 애인들의 향기는 좋고 나는 살아서 나를 다 속이지 못했다라고도 말하기로 합니다 덧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달게 잤습니다, 라고 연이어 말할 때 나는 저녁의 억양과 닮아갑니다 
P030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지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P034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P037 광장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P49 환절기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P68 마음 한철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P69 마음 한철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P77 낙서


 

당신의 슬픈 얼굴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주저앉은 길 위에는
물도 하릴없이 괴어들고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P79 저녁-금강

 

손이 찬 당신이 투명한 잔을 내려놓았다 번져 있는 입술자국이 새가 날아오르기 전 땅을 깊게 디딘 발자국 같았다면 살아남은 말들은 쉽게 날 줄을 알았다 나는 가난하고 심심한 당신의 말들에 연을 묶어 훠이훠이 당기며 놀았다 사실 우리 아름다움의 끝은 거기쯤 있었다
P88 연

 


 

작은 창으로 바라본 하늘엔 봉제선 같은 별들이 두둘두둘 많다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별보다 많은 눈동자들이 어두운 방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창에 골목에서 만난 눈동자를 잘도 그려넣었다 
P99 잠들지 않는 숲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P116 당신이라는 세상

 

 

🔸독파챌린지 ‘박준’ 시인의 응원 메세지

  (시 한편을 남기신 줄 알았습니다 😊)

 

<쪽>
 
눈앞에 있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다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은 너머를 넘나들지만 한번 맺힌 상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응시도 미루어두고 외면도 거두어들이면서 헤매기만 합니다 와중 품고 있는 바람도 하나 있습니다 속절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애를 쓰며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의 사이가 멀어지기를 더 아득하게 부디 영영 멀어져서는 어느 삶의 장면에도 한데 놓이는 일이 없기를 일단 그때까지는 쪽과 쪽 사이를 두텁게 쌓고 볼 것입니다

 

 
#당신의이름을지어다가며칠은먹었다 #박준 #시집 #추천시집 #문학동네 #문학동네시인선032 #독파 #독파챌린지 #북클럽문학동네 #완독 #앰버서더 #앰버서더3기 #서평


❤︎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P029 관음(觀音)-청파동3 - P29

변심한 애인들의 향기는 좋고 나는 살아서 나를 다 속이지 못했다라고도 말하기로 합니다 덧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달게 잤습니다, 라고 연이어 말할 때 나는 저녁의 억양과 닮아갑니다
P030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 P30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지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P034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 P34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P037 광장 - P37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P49 환절기 - P49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P55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P68 마음 한철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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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과 살인귀
구와가키 아유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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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과 살인귀』

 

구와가키 아유 장편소설

문지원 옮김

블루홀식스 출판

 


 

 

 

10년 전, 아버지가 살해됐다. 사가미 쇼라는 십대 청소년의 난도질로 칼에 찔려 숨졌다. 그릴 나미 식당을 운영하던 미오네는은 치킨 레몬 소테 메뉴로 장사가 잘 되었지만 아버지 죽음 이후 엄마의 가출로 어렸던 고바야시 히나 동생과 친척집에 맡겨지게 된다. 성인이되어 동생 히나는 보험설계사로, 미오는 대학 행정실 파견직으로 일하며 부모의 부재는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자매는 만날 때마다 푸념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마저 칼에 찔려 숨진다.

 

언론은 보험설계사였던 히나가 전 연인이었던 가와키타의 생명보험을 가입하고 사고로 죽자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히나가 수령했다며 범인으로 몰며 마녀사냥을 한다. 히나가 그럴리 없다며 전 연인 중 한명인 유명 요식업자 도모리를 찾아가던 중 기자 미토에게 끈질긴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던 나기사의 도움으로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ㅡ책 속 인물들.

대학 행정실 파견직으로 일하는 주인공. 고바야시 미오

‘지쿠야 바’ 식당운영자. 히나의 전 연인. 도모리

중3 같은 반 미오의 고르치 않은 치열을 보고 조롱하던 아이들 중 한명. 우미노 마린

저널리스트 지망생이자 우미노 마린의 남친. 나기사

미오의 첫사랑. 렌

방과 후 아이들의 돌봄을 돕는 자원봉사 동아리인 '그 후 클럽'을 운영하는. 레몬나무를 키우는 농학 연구과 대학원생. 기리미야 쇼헤이.


 


 


ㅡ책을 읽고

 

히나와 미오 자신은 함께 고생하고 불운한 처지이지만 히나가 고통을 주는 쪽이라면 타인에게 짓밟히던 비참한 자신만 홀로 불행의 수렁에 있을 것 같아 붙잡아두고 싶었다는 불안한 감정들을 미오는 자주 나타냈다. 외톨이었지만 같은 불행 속 히나를 보며 견뎠다는 것. 이것도 정상이라고 볼 수 없다ㅠㅠ

 

사가미는 TV 사극의 우시와카가 절개적인 존재로 생각하며 동경하고 우시와카가 칼을 휘두르고 칼 날이 살을 가르는 감각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열망을 키워갔다.

 

미오 주변의 히나를 죽인 범인을 쫓으며 드러나는 진실. 다양한 인물들. 미오의 심리변화. 고통 주는 자와 받는 자. 미오는 고통받았지만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통으로 검게 변한 악마를 숨기며 사는 자.

 

누가 범인일까를 찾는 재미를 몰입감 있게 잘 끌고가는 서스펜스 소설이었다.

 

살인하지 않았지만 괴물같은 존재들도 있다. 딸을 폭력하고 위협으로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아버지, 외모만으로 놀리고 따돌리는 마린,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여자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돌아이 나기사같은 인물들.

 

그리고 석연치 않은 인물들도 있다. 그래서 첫사랑 렌은 어디로? 기리미야가 렌이 아니면 누구? 기리미야는 왜 미오를 지켜봤고 레몬나무를 키우고 있었을까. 목을 비틀어 죽인 닭을 미오 신발장에 넣은 사람은 히로 학생?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 인물들이 나온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가기 위해 설정한 것이겠지만 2~3명만 이었어도 괜찮았을텐데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 아마도 작가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도 미오처럼 고통받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에서 불안정하고 포기하고 꾹꾹참고 체념해야만 했던 순간들과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악마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보게했다.

 



ㅡ책 속 밑 줄 긋기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고 그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정은 일관되지 않으며 쉽게 뒤집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P47

 

우주를 수놓은 별은 스스로 밝게 빛나는 별과 그 빛에 가려 어둡게 지는 별로 나뉜다. 말하자면 고통을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그리고 나와 하나는 같은 불행의 별 아래 태어나고 말았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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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고 그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정은 일관되지 않으며 쉽게 뒤집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 P47

우주를 수놓은 별은 스스로 밝게 빛나는 별과 그 빛에 가려 어둡게 지는 별로 나뉜다. 말하자면 고통을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그리고 나와 하나는 같은 불행의 별 아래 태어나고 말았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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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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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연작소설집

래빗홀 출판

 


 

 

 

「저주토끼」로 22년 부커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가 살고 있는 포항바다 도시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가족과 이웃들의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해양생물체들을 주제로 한 첫 SF연작소설이다. 힘들고 지치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사랑이 베이스에 깔려있다. 고통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감정을 귀하게 느끼게 해주는 소설♥

 

시간강사의 불안정한 고용과 교수가 되기위한 을의 눈물겨운 노력들.

외국계회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 해고.

적의 수중 무기 탐지용이 되버린 벨루가흰고래.

북한이 바다에 쏘는 미사일로 이유없이 죽는 해양 생물들.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로 생태계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

 

분명 SF이지만 장애, 노동, 기후, 생태 등 의 엮인 상황들은 현실이었기 때문에 마냥 웃을 수 없다.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 이야기에서 작가는 함께 어우르며 항복하지말고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문어

 

🔖전쟁의 기본은 피아 구분이고 그런 관점에서 위원장님은 완전한 나의 아군이었다. 학교 측이 나를 몰상식하게 대하거나 강사로서 일하다가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하소연하면 위원장님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현실적인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했다. P21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제정되면서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났고 노조가 형성되어 농성을 벌이는 중 위원장님(이제 남편이 된)은 말하는 대형문어를 보고, 먹었다는 이유로 검은 정장을 입은 자들은 해양정보과라는 건물 밀실로 납치하다시피 위원장님과 나를 차에 태워 끌고 가서 질문을 쏟아낸다.

예전 저주 토끼에서도 머리카락이 물을 내려도 나오고 나오고 나와 같은 형체가 되는 모습이 기괴하다 느꼈는데 일반 문어가 아닌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생물체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의 등장은 시작부터 독특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학생들의 온라인 강의와 동영상 컨텐츠가 준비가 되지 않았던 학교에 비싼등록금을 내고 제대로 된 수업을 듣지 못한다며 등록금반환 요구를 하던 그 사건들. 짤린 강사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들을 봉고차에 태워간 이유가 일반 해양생물이 아닌 문어의 출연 때문이 아니라 불합리한 고용과 사각지대 놓인 강사들의 농성때문에 괜한 시끄러움이 싫은 정부에서 잡혀간 것 같았을까.

 

 

🦀대게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질 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끌려 나가 사라지더라도 어쨌든 끝까지 고개를 높이 들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인간을 위해서든, 난데없이 등장한 대게를 위해서든 말이다. P69

 


 

 

 

죽도시장에서 러시아에서 온 대게가 말을 건다. 도와달라고. 집에 데리고 왔더니 얼씨구 대게가 사람이 먹으려고 사온 새우, 생선, 홍게, 꽃게 도 먹어치운다. 대게는 러시아연방정부에서 일본을 잇는 동해 깊은 바다 속 가스관 건설을 하는데 자신들이 그 일을 하다 동료의 죽음, 자신은 납치되어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며 토로한다. (대게한테 술 한잔을 권하는 어머님도 참 ㅋㅋ)

 

남편은 대게에게 조직화를 조언하고,, (1인 시위를 해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권력들에게 조직으로 뜻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대응을 할 수 있는 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기에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인간들은 생물도 인간도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버려진다. 다리 속 칩을 위해 다리를 떼주는 것으로 결말은 되었지만.

 

🦈상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잠을 자는 모습은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그런 남편을 살리고자 신약개발회사의 명함을 받고 포항죽도시장 망한 돔배기 가게로 찾아간다. 가게 수족관 안에는 상어, 대게, 문어 등이 실험대상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해양생물들은 이들이 사기꾼들이라 말한다. 검정양복사람들이 찾아와 사기꾼들을 쫓으면서 다행히 사기는 당하지 않지만 정치계 인물들이 투자한 신약개발 사기극이라는 것이 드러나며 국민을 대상으로, 그것도 진짜 아픈 사람을 상대로 한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들은 죄가 없다는 듯 당당하다. 이번에도 자신들을 해하려한 인간들임에도 해양생물들은 돕는다.

 

경상도에서는 제사상에 돔배기 고기, 상어 고기를 올린다. 시대가 변하고 제사를 지내는 집도, 상어 고기를 올리는 집도 줄어들니 비싼 상어 고기를 취급하는 돔배기 가게도 장사가 안되어 망했던 것 아닐까. 이렇게 먹이사슬의 최종단계인 상어를 보호하기는커녕 신약개발이 성공했다면 인간의 욕심을 위해 해양생물들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개복치

 

잠수함을 타고 내려간 곳에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등장한다. 아빠도 알고 있었던 걸까. 선우는 잠수함의 또 다른 비밀공간을 통해 아주 특별한 바닷속 체험을 한다. 개복치를 가까이에서 보기도 하고 돌고래가 개복치를 장난으로 치면 뒤집어지는데 덩치가 큰 개복치는 싸우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한다. 크니까 싸우지 않는다는 아빠 말에 어떤 방식이 싸우지 않는 건지 선우는 생각한다.

 


🪼해파리

 

🔖8년 복직 투쟁의 구심점을 몰래 따돌리고 동지애를 정규직과 맞바꾸라는 제안을 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우 원색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작가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고려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 답변을 순화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치아라 마”로 요약할 수 있다. P186

 

구미는 국가산업단지가 있어 더 다른 지역보다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협과 생계의 무계 앞에 근심과 두려움에 잠겨야 했는데 외국계회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 해고로 싸우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하늘을 날아가던 거대한 해파리 꿈을 꾸고난 후, 해파리에 쏘인듯 발이 퉁퉁 부었다. 이제 지긋지긋하다못해 익숙해진 검은정장은 또 심문한다. 귀신이 된 해파리가 꿈에서 촉수를 쏘면 실제로 아픈가에 대한 수수께끼.

 

적의 수중 무기 탐지용이 되버린 벨루가흰고래. 북한이 바다에 쏘는 미사일.

 

🔖그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머리 위로 느닷없이 떨어지는 미사일과 포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P207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빼앗기고 위기에 처한 해양 생물들. 그런 고민을 이어가기 무섭게 일본이 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진짜 킹 받는 소식이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인간의 소멸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P208

 


 

 

 

 

🐳고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구룡포에 간다. P217

 

작가는 글을 쓰는게 아닌 (순화된 말인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말고) ‘원전 폐수 해양 투기 반대’ 행진을 하고 있었다. 시간강사, 노동자, 환경운동. 싸움 꾼 들 같지만 무력시위따위가 아니라 처절하게 삶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개하며 자동반사처럼 그들과 한편이 되어 운동을 하는.

 

작가의 지구에 대한 마음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위한 몸부림이. 사랑하며 사는 삶이. 멋있다.

SF소설이지만 현실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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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빗홀’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전쟁의 기본은 피아 구분이고 그런 관점에서 위원장님은 완전한 나의 아군이었다. 학교 측이 나를 몰상식하게 대하거나 강사로서 일하다가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하소연하면 위원장님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현실적인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했다. P21 문어 - P21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질 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끌려 나가 사라지더라도 어쨌든 끝까지 고개를 높이 들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인간을 위해서든, 난데없이 등장한 대게를 위해서든 말이다. P69 대게 - P69

8년 복직 투쟁의 구심점을 몰래 따돌리고 동지애를 정규직과 맞바꾸라는 제안을 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우 원색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작가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고려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 답변을 순화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치아라 마"로 요약할 수 있다. P186 해파리 - P186

그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머리 위로 느닷없이 떨어지는 미사일과 포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P207 해파리 - P207

죽음과 삶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인간의 소멸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P208 해파리 - P208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구룡포에 간다. P217 고래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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