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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황시운 산문
교유서가 출판

거짓말처럼 빛나던 봄밤이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살아오면서 겪은 날들 중 가장 빛나는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화가 많았다. 억울했고 나만 이런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책을 덮기까지도 반복되는 고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증명해야한다고, 나 여기있다고 손을 흔들었다. 자신과 같이 장애를 입은 사람에게 자신도 버티고 있으니 버텨보라고 말해주기까지 용기내고 힘을 냈다.
(작가님 자신을 증명 할 필요 없어요. 충분히 글로 마음을 움직여주고 있습니다 ^^)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입구마다 휠체어는 턱을 넘지 못해서 돌아나와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턱이 있는 곳이 드물 정도로. 수많은 턱을 뒤로 한채 돌아서야 했던 그 마음이 세상이 등을 돌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준다면 충분히 매번 도움을 청하고 눈치를 봐야하는 일 따위는 없을텐데 사회는 발전하지만 배려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멀었다.
포기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 속에서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면 세상은 따스하게 함께 할 것이라 믿는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게 선뜻 도와주거나 시선을 두지 않았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돕는다면 그들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나 또한 받을 터인데 그런 일어나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혼자만의 상상으로 피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동등한 시선으로 보는 것! 나부터가 실천해야할 것이다.
어쩌면 기적이 있다. 움직일 수 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이지 않은 말들로 희망고문하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현재의 고통이 심하다.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앞으로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해주는 것이 좋았다.
신체적 장애를 후천적으로 얻게 되면서 자신이 장애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매번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꿈속을 걷는 듯한 소설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야 말로 세상으로 나가는 마음의 문을 닫으려는 이들에게 밖으로 함께 나가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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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에서
◯ 장애를 가지고 살아다가보면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엄이 너무 자주, 생각지도 못한 대목에서 무너져내린다. 사람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얼마나 참담한지, 세상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P14-15
한밤의 골목은 낮과는 달리 위험한 상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그렇게 위험한 상상을 따라 익숙하지만 낯선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덜컥 무서워지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도 확실히 모른 채 달리고 달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즈음에야 골목에서 벗어난 날도 숱했다. 글이 막힐 때면 밤이고 낮이고 상관하지 않고 산책을 했다. 그렇게 산책하며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들을 차곡차곡 정리했고 집으로 돌아와 글로 옮겨 적었다. 내게 소설쓰기는 그런 일이었다.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익숙한 골목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막막하고 무서웠다. P22
◯ 어제의 통증은 침대에서 맞았지만, 오늘은 휠체어에 앉은 채로 견뎌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달랐다. 어제의 나는 집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나는 집밖으로 나와 이제 막 잎이 돋기 시작한 철쭉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달라진 나는 달라진 통증을 점점 더 익숙하게 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23
◯ 그때 나는 사고와 함께 내 삶도 끝났다고 믿었다. 어떻게든 나를 살려보려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만 궁리했다. 할 수만 있다면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절망적인 생각들과 하나마나한 후회,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 같은 것들이 한데 뒤엉켜 질실할 것만 같은 시간들이 덮쳐왔다. P30
◯ 흉터로 남은 상처는 더이상 아프지 않다. 다만 상처를 기억하는 매개가 되어줄 뿐이다. 나는 내가 그날의 나를 잊지 않은 덕에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잊지 않는 일은, 그래서 무척 중요하다. P51
내 고통에 매몰되어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던 시간에서 빠져나오자 귀를 기울이면 보이는 것들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 어쩌면 영영 볼 수 없었을 모습이었다. P58
수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누군가 나타나 이 수렁에서 나를 단박에 건져올려주면 좋겠지만, 영영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영원히 깨지 않을 악몽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 P76
◯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 더이상 나를 묶어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무수한 턱들을 앞세워 사회가 아무리 나를 밀어낸다 해도 나는 여전히 세상 속, 사람들 틈에 있고 싶었다. P95
◯ 그들이 무심결에 드러내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내가 의도치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태도나 언어가 있다면 스스로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선의를 가진 보통의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배제하고 아프게 한다면 그것은 차별이고 혐오일 수 있다. P101-102
태어난 모든 생명은 원래의 저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생은 공평하지 못하지만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죽음 이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있을 뿐이다. P134
가난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가난해서 가난이 뭔지 몰라도 되던 시절이었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있을 것이다. 바닷가 말을에서 태어나 매연 가득한 도시에서 삼십여 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의 살던 고향은 시커먼 탄가루를 뒤집어쓴 아버지들이 탄 때 가득한 손으로 신명나게 젓가락을 두드리던,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날이 저물도록 장터를 누비던 그곳이다. P156
◯ 인파 속에서 갯골을 따라 흐르는 물과 그 안에서 무리를 이루거나 외따로 떨어져 있는 새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내내 어쩐지 가슴 한편이 단단하게 다져지는 것 같았다. 이유는 잘모르겠지만, 그 순간 세상 속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의미 있게 느껴졌다. P159
나는 한껏 의기소침해져 있었고, 세상에 내 존재를 알리는 일 앞에선 무기력하기만 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였지, 그 소설이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주 오랫동안 가질 수가 없었다. P165
어쩐지 그들이 내 소설보다는 내가 가진 장애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책이 나오기 전부터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장애를 입고도 소설을 써낸 장애 극복 서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쓸쓸해지기까지 했다. P167
사람들은 종종 감사해야 할 일을 잊고 살아간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잊은 채 남이 가진 것에만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그것이 늘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가진 소중한 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더 나은 것을 이룰 수 있을까. P179
◯ 가능하면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일. 그래서 나처럼 마지막 존엄마저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당신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고, 당신과 같은 내가 여기에 있다고 손을 흔들어주는 일.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P187
하지만 엄마에게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세상엔 기적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걷고 달리고 자전거 타고 수영하는 꿈들을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기적의 징후처럼 여기곤 한다. 간절함이란 그런 것이리라. 그런 간절함 앞에서 옳고 그름이나 의학적 판단 같은 냉철한 이성은 힘이 없다. P199
내 안엔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절망의 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잃어버린 세상의 말과 글을 되찾고 싶어졌다. P223
세상에서 완전히 밀려난 기분이었다. 그러자 극도의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휠체어에 앉은 채 창밖을 바라보는 일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아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P229
고통이 일상이 되다보면 어지간한 고통쯤은 미처 감지하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기도 하니까. P271
◯ 스스로 넘지 못할 턱을 만나면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며, 세상은 지금껏 내가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인 곳일거라는 기대를 품은 채, 삼십 년 넘게 살아온 이 도시를 천천히 다시 걸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그리워만 해온 이들을 만나러 가보려 한다.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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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당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다가보면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엄이 너무 자주, 생각지도 못한 대목에서 무너져내린다. 사람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얼마나 참담한지, 세상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 P14
흉터로 남은 상처는 더이상 아프지 않다. 다만 상처를 기억하는 매개가 되어줄 뿐이다. 나는 내가 그날의 나를 잊지 않은 덕에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잊지 않는 일은, 그래서 무척 중요하다. - P51
그들이 무심결에 드러내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내가 의도치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태도나 언어가 있다면 스스로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선의를 가진 보통의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배제하고 아프게 한다면 그것은 차별이고 혐오일 수 있다. - P101
가능하면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일. 그래서 나처럼 마지막 존엄마저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당신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고, 당신과 같은 내가 여기에 있다고 손을 흔들어주는 일.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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