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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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꿈』

 

손보미 연작소설

문학동네 출판

 

연작소설이지만 특이하게 각 단편들마다의 주인공들이 친밀감 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사랑의 꿈>의 엄마, <해변의 피크닉>의 딸, <첫사랑>에서 이사간 이웃의 이야기는 정우맨션이라는 동일한 장소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편모, 이혼, 재혼 가정의 이야기들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아프게 와닿는 장면이나 공감되는 부분은 없었다.

 

그 중 <불장난>이 기억에 남았다. 여자아이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들이 내 유년기를 떠오르게 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인지도 모르겠던 감정들, 그냥 집에 있을 뿐인데도 평온한 기억들은 소설과 전혀 다른 배경이었음에도 그 시절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렴풋한 사진 한 장처럼 기억에 남은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주는 듯했다. 중간 중간에 그 기억이 정확하게 맞는지 흐리다는 표현들이 많은데 기억하고 싶은 내용으로 그 기억들이 변질되었을 수도 있고, 몰랐으니 그 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순수함 또는 답답함으로 지난 자신의 시간을 옹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님의 소설마다 강조하는듯한 단어 하나가 있다. 문장 속 글씨체가 다른 단어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독파를 하는 다른 분들도 궁금해하는 듯하다. 이 궁금증은 곧 있을 5/18일 줌토크에서 질문을 하기로 해야겠다(^^)

 



 


📖 밤이 지나면


외삼촌 부부네서 사는 ‘나’

말하지 않는 화자가 어린 마음에 무슨 억한 심정이 담겼길래 입을 닫았을지 초반부터 안타깝고 사연이 궁금해졌다. 아빠 엄마의 이혼으로 죽었다고 말해도 전혀 가슴 아프지 않는 것은 상처를 외면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입을 닫았나?

‘양예은’이 배구공으로 계속 치는 것을 맞기만 했는데 아마 나도 꾹 참고 견뎠을 것 같다. 오기로 맞으면서 말을 절대 하지 않으려고.. 몸이 다치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는 것은 놓치지 않겠다는 쓸 때 없는 오기로..

 

시간이 좀 지나면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차리게 된다. 어둠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후회를 떠올릴 때도 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런 것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게 되리라. 마치 어떤 잘못이나 실수도 저지른 적이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P58

 


📖 불장난


예전엔 그랬지, 비오는 날 번개가 치면 정전이 자주되어 집에 늘 초가 비상으로 대기해 있었고 그런 날은 가족이 모두 모여 쓸 때 없이 재잘 거리거나 밖에 다른 집은 불이 나갔는지 둘러보는 때가 있었다. 정전된 집에 배가 고파 냉동실의 떡국떡을 촛불에 데워 먹는 모습은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게 했다.

 

책을 사줄 어른이 남들의 두 배(물론 정확히 두 배는 아니었다. 1.5배!)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왜 원하는 것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가? 왜 이들은 내가 이렇게 얕은수를 쓰게 만든단 말인가?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바로 이게 내가 느낀 혼란스러움과 상처의 정체였다. P84

 

내가 그들에게 화가 났었나?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그런 감정은 점차 불장난의 열기 앞에서 힘을 잃어갔다. 다만, 나는 화난 기색을 유지하는 게 불장난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여겼다. P124

 

다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삶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호들갑스럽게 기대했던 순간들이 그저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P128



 


때때로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그런 착각과 기만, 허상에 기꺼이 몸을 내주는 일이라고. 착각과 기만, 허상을 디뎌야지만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존재한다고. 언젠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돌이켜보는 눈 속에서 어떤 사실들은 재배열되고 새롭게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며, 허구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허구가 되는 그런 순간들! P130-131

 


📖 사랑의 꿈


사랑하는 남자와 딸을 낳았으나 그는 부잣집이었고 자신은 남자의 가족과 어울리지 못했다. 시종일관 할머니의 세심함을 자신에게 투정으로 절망적 기분으로 만드는 아이때문에 짜증이 난다. 시댁에서 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무기력한 자신에서 딸과 함께 독립해보고자 행정실 취직도 하며 달라지려고 하는데, 어느 날 고양이를 차로 치고, 묻는 과정에서 예전 딸을 버리고 싶었으나 버릴 용기도 없었던 자신이 떠올랐고, 이 고양이를 묻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되는 듯 하다. 콤플렉스를 숨기지 않고 자신있게 드러내는 공주연과 자신이 속하지 못했던 시댁과 왕래를 하는 딸을 보면서 주인공은 질투를 했던 것일까. 표제의 소설이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심드렁한 말투 속에는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조바심과 반감이 숨어 있었다. 반감. 하지만 그애가 왜 반감을 가진다 말인가? 그애가 대체 누구에게 반감을 가진단 말인가? 그게 마땅한 일인가? 그녀는 그애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그냥 본능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시험에 들게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며 덫을 놓지만, 정작 그런 후에는 아무도 그 덫에 걸려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나약한 이율배반 같은 것. P136

 

그래. 그녀는 딸을 떠나고 싶었다. 그 당시 그녀는 절대로 ‘딸을 버린다’는 표현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건 자기기만이나 허영심, 혹은 죄책감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아, 물론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P168

 

어떤 사람들은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절대 멈추지 못한다. 아니, 자신이 하려는 일이 진실로 미친 짓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일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그 일을 완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P180




 


📖 해변의 피크닉


이혼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아빠의 죽음이후 엄마와 사는 어린 여자아이.

반쪽짜리 삼촌과 여자친구를 할머니와의 해변의 피크닉에 초대하고 디저트를 먹는 장면에서 모두가 본 마음을 숨긴채 가짜의 웃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어리다고 해서 단어를 모른다고 해도 그 흐르는 분위기는 알 수 있으니까.

 

비약. 건너뛰는 것. 그건 어머니의 신념이 작동하는 방식이었고, 단순한 눈가림이나 위장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때때로 어떤 진실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런 식의 건너뜀이 필수불가결했다. P193

 

우리를 몇 번이고 크게 웃도록 맹렬히 격려한 건, 우리 스스로를 그 이야기 속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열망이 담긴 본능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그 더럽고 지저분한 세계를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 자신은 그 세계 바깥에 있고 싶다는 열망이 반영된 행위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 열망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었다. P241

 


📖 첫 사랑


정우맨션에 사는 중학생 소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새아빠와 막 태어난 동생.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춘기 여자 아이의 마음이 잘 보였다. 하지만 편지의 이름만 보아도 두근두근 가슴뛰던 턱님이 첫 사랑인지 과외 선생님이 첫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염두에 둔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우지끈하며 땅이 갈라지고 그 사이로 새로운 대륙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별안간 떠오르는 과거의 편린들. P253

 

시간이 지나고 내가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때때로 진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있는 힘을 다해 손에서 탈탈 털어내지만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입안으로 가져가고야 마는 과자 부스러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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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절대 멈추지 못한다. 아니, 자신이 하려는 일이 진실로 미친 짓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일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그 일을 완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 P180

우리를 몇 번이고 크게 웃도록 맹렬히 격려한 건, 우리 스스로를 그 이야기 속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열망이 담긴 본능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그 더럽고 지저분한 세계를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나 자신은 그 세계 바깥에 있고 싶다는 열망이 반영된 행위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 열망 역시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었다 - P241

다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의 삶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 호들갑스럽게 기대했던 순간들이 그저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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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TOH』 샘터 2023. 05
—어린이





📖 특집_에세이1
달이 내려다보는 아이들의 집. 박성진


공간과 장소는 얼핏 비슷한 말 같지만 사실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공간은 활짝 열린 광장과 같은 곳이고, 장소는 아주 익숙하고 아늑한 집과 같은 곳이다. 아이들에게 장소란 안정과 영속,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뜻하지만 공간은 변화하고 광활하게 열린 경계가 없는 세계이다. 성장 중인 어린이에게는 이 두 가지 경험과 환경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의 아파트 단지 속에 놓인 아이들에겐 공간을 마주할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 P16


건축과 공간을 기획하고 사이트앤페이지를 운영하는 글쓴이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공간을 중요시 여긴다. 일반적으로 아이들 교육하는 방법으로 독서, 악기, 운동 등을 생각했는데 삶이 바쁘다고 무감각해져가는 어른보다 아이들은 눈 앞의 모든 것들이 호기심 거리이고 알아가야하는 대상들이었다.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공간에 대해 느끼고 알아가는 시간을 준다는 것은 가장 큰 양육환경이 아닐까.

 


📖 특집_에세이3
갖지 못한 선물에 숨겨진 동화. 최영희


사람이든 물건이든, 아니면 시간이나 기회든 ‘갖지 못한 것들’에는 긴 이야기가 숨어있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엮어서 동화를 만든다. 결국 나의 동화는 아홉 살 생일에 시작된 셈이다. 그날은 단순히 생일선물을 받지 못한 날이 아니라 갖지 못한 구슬 목걸이의 힘을 자각한 날이었다. P25


청소년 문학작가의 어린 시절 생일 선물을 왜 갖고싶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여 분홍색 구슬을 갖지 못했고, 그 갖지 못한 선물을 (상상놀이 속의 동물들과 소통할 때 사용하는 번역기 역할이 목걸이였다 ㅎㅎ) 상상했지만 덕분에 지금은 소설 속의 캐릭터로 소설 속에서는 마음껏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대상이 있는 것과 상상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 채워지지 못한 마음이 있을터인데 작가는 그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을 동화 속 세계에 적음으로 달래는 것이 흥미로웠다. 

 



 


📖 특집_그리운, 가요
아저씨가 부르는 이상한 동요. 에디터 한재원


어른이 되어 엄마한테 물언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나를 잃어버리고 기분이 어땠느냐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같은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가 데리고 있다면 요구르트 딱 하나만 애한테 줬으면, 하고 생각했어. 잃어버리기 직전에 네가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했는데 이따 사준다고 못 사줬거든.” 요구르트를 먹이지 못해 안타까워 했던 엄마의 마음은 아무리 여러 번 확인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난 자꾸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다. 권인하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어디선가 들려올 때마다. P34


이런 글은 내가 샘터를 읽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기억 속의 나를 사랑해주는 엄마의 마음과 당시의 노래들이 한데 어우러진 추억을 픽션에서 느낄 수 없는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런 글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지어진 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추억 속 한 토막 이야기.

 


 

📖 행복일기2
생일에 날이든 40통의 문자메시지. 정순옥


경제적으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결국 자식한테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준 현실이 속상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진 못할망정 항상 화만 내서 미안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나는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온 아이를 어색하게 맞이했다. 

연신 울려대던 알림은 40여 통의 축하 메시지를 배달하고 나서야 멈췄다. 누구의 이벤트인지 알 것 같아 마음에 감동의 물결이 일어났다. 난 딸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아이를 품에 안았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P47


사춘기 딸 아이와 매일 전쟁같은 말다툼으로 나도 아이도 모두 스트레스가 최고조인 때가 있었다. 한발짝 물러나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보니 예전보다는 말다툼도 덜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여전했다. 샘터의 글을 읽어보면 가족이야기가 많다. 부모와 자식간의 이야기들은 어느 집도 마찬가지로 고민이 많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서로가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왜 조금 더 서로가 노력하지 못했을 까 후회도 되고 그 삶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행복일기는 아직은 철없는 나의 딸 아이가 시간이 흘러 내 마음도 이해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포근함 가득한 엄마와 딸로 돌아가기를 바래본다.

 



📖 내가 사랑한 그림
그럼에도 함께 있어주는 것. 이소영 아트컬렉터


상처없는 사랑은 없다. 다만 상처가 생길 때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아직 서로 사랑한다면 함께 치유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브랑쿠시의 <입맞춤>을 보며 생각하다. 지금 사랑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P65


이소영 작가님의 글은 항상 따뜻하고 희망을 전달해주어서 찾아 보게 된다. 가난하고 빛을 보지 못했던 화가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스토리로 들려주듯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는 딱딱한 작품 해석에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읽는 독자들이 작품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작가님의 글과 이야기가 좋다보니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볼 때도 예전보다 감상하는 태도도 달라지는 듯 하다.😊


 


 


📖 시인 박준의 오늘생각

<오월과 너>


오월의 너는 목이 간지러운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옷의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든 사람이다 한낮에도 헤매는 사람이다 아주 멀리까지 멈춘 듯
보다가도 다시 눈부터 움직이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마음과 씨름을
하는 사람이다 넘어졌다가 이내 꽃잎을 털어내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아침의 수업을 마치고 새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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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서평단으로 ‘샘터’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엄마한테 물언본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나를 잃어버리고 기분이 어땠느냐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같은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가 데리고 있다면 요구르트 딱 하나만 애한테 줬으면, 하고 생각했어. 잃어버리기 직전에 네가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했는데 이따 사준다고 못 사줬거든." 요구르트를 먹이지 못해 안타까워 했던 엄마의 마음은 아무리 여러 번 확인해도 기분이 좋아져서 난 자꾸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다. 권인하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어디선가 들려올 때마다. - P34

상처없는 사랑은 없다. 다만 상처가 생길 때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아직 서로 사랑한다면 함께 치유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브랑쿠시의 <입맞춤>을 보며 생각하다. 지금 사랑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 P65

오월의 너는 목이 간지러운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옷의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든 사람이다 한낮에도 헤매는 사람이다 아주 멀리까지 멈춘 듯
보다가도 다시 눈부터 움직이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마음과 씨름을
하는 사람이다 넘어졌다가 이내 꽃잎을 털어내는 사람이다 오월의 너는
아침의 수업을 마치고 새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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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사생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5
장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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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사생활』

장진영 저

은행나무 출판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은행나무 시리즈 N° 15번째 『취미는 사생활』

장진영 첫 장편소설!

 

소설은 ❝이 모든 일은 10월의 한파특보에서 비롯되었다.❞ 로부터 시작된다. 초반엔 서울 아파트에 아이 넷을 키우는 육아 노동에 시달리는 주부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초가을 추위때문에 2302호의 은협은 두꺼운 이불을 꺼내야 했고, 이불장 서랍을 열면서 남편이 숨겨둔 크리스찬 루부탱 빨간 구두를 발견하면서 아랫집 2202호 민희와 남편을 미행도 하고, 아이들의 이모, 은협에게는 이웃집 언니가 되면서 친해지게 된다.

은협은 부정했지만 한편으로는 수긍하는 듯했다. 나를 뺏고 내 시간을 뺏은 게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여기는 듯했다. 임시 은협으로서의 삶이 나라는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도피시켰으리라고. 얼마간 사실이기도 했다. (P144)

민희는 은협을 도와주는 행동에 공감이 되면서도 가족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돌봄을 함께 하는 수준에서 대출을 받아야하는 은협을 대신해 학부모 상담에 은협이 되어 찾아가기도 하고, 전세계약 만료로 집주인과 협의할 때도 은협을 대신했다. 누구도 민희에게 은협을 도우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안타깝게 했다. (물론 이런 상황들도 결국엔 민희가 계획한 일부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은협을 뺏은 게 아니라 은협이 나를 뺏었다. 누구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나로부터, 내 시간으로부터. 불만은 없었다. 내가 은협으로 하여금 나를 뺏게 했으므로. (P84)

어쩌면 그렇게 자신에게 없던 자식을 함께 돌봐주며 끝내 행복하지 못했던 지난 결혼생활에 대한 미련을 한풀이하듯 보였다. 한편으로는 아이 넷을 키우는 은협이 불쌍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민희는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은협의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지금 가진 전세금으로 아파트에 살려면 경기도로 나가야 했고 서울에 살려면 빌라로 옮겨야 했다. 경기도는 싫었고 빌라는 더 싫었다. 한번 밀려나면 끝이었다. (P89)

은협은 어째 일이 이렇게 안풀릴까. 대출도 환불도 중고거래도. 온통 엉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엉망 속에서도 살아보려는 억지가 있다. 자신들의 불안정한 주거를 형편에 맞게 포기하고 살면 되는데 억지만큼이나 서울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않는 욕망으로 채웠다. 어느 장소에 살고 있는지, 어떤 이웃을 두었는지에 따라 삶의 기준을 정해버리는 현대의 모습을 은협을 통해 잘 보여준다.

보일 씨가 원했던 건 여자 옷을 입는 게 아니었다. 아내와 자식들이 모르는 어떤 것,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어떤 것을 원했다. 사생활을 원했다. 여섯이 살기에 집은 좁았다.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다. 보일 씨는 은협과, 아니면 대연과, 아니면 중연과, 아니면 소연과, 아니면 민희와 끊임없이 마주쳐야만 했다. 회사에서 지쳐 돌아와도 쉴 수가 없었다. 일하고 돌아오면 또 일이 기다렸다. (P156)

회사일도 힘든데 집에가면 쉬지 못하는 보일 씨가 보미 씨로 여장을 하는 모습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코미디를 보듯 배꼽잡고 웃었다. 보일 씨의 머리숱이 없어 가발을 사는데 은협네부부는 또 기왕이면으로 시작해서 긴머리 가발을 산다. 그 계기로 보일 씨는 가발에 어울리는 명품 루부탱 하이힐을 사고 현실도피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여장의 취미를 갖게되니. 은협의 집은 서울 아파트라는 장소가 중요하지만 보일 씨의 집은 휴식을 할 수 있는 안정된 공간의 장소는 아닐까. 아니면 보일 씨도 은협과 마찬가지로 뜬구름처럼 잡히지 않는 희망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죽었다 깨나도 집을 살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시골 땅은 헐값에 살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투기할 의도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투기한 게 될 수도 있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투기, 보일 씨가 바라는 건 그것이었다. 양심을 팔기는 싫고 부자는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P159-160)

전세사기로 거주의 불안감이 늘어나는 가운데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정부가 나선다면 구제를 위해 소요된 비용은 또 국민들 세금이 가중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로 쉽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내는 현실에서 소설 속 은협과 보일 씨가 전세 보증금 마련을 위해 나무 수저 부업을 알아본다던지 적금으로 도저히 모을 수 없는 금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투기 목적의 땅을 구매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의 집 없는 자들의 불안한 설움이 소설 속에 있는 듯 했다.

이 소설에서 집 문제와 더불어 주변 경제 상황에 대해 자주 나온다.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데 더해 탄소배출을 제한하기까지 하면서 화석연료를 추출해서 만드는 요소수를 한국에 수출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해져 멈춰 있는 공사장 중장비들. 스타벅스 리유저블 이벤트로 긴 줄이 이어지자 파트너들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규탄하며 트럭시위를 한 것. 맥도날드 햄버거의 양배추 수급 문제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온 것.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가 아니라 탄소배출권으로 전기차 사업의 적자를 메우는 이야기.

은협은 새마을금고에 대출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건너편 스타벅스에는 할로윈 이벤트로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목적으로 기다리는 모습은 정치권의 자신들의 이권챙기기와 서민들의 힘든 삶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민희가 떠날 것을 알아챈 어린 소연은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주지 않은 새콤달콤을 사기 위해 10원씩 모아 밤에 몰래 편의점에서 사온다. 민희는 소연이 준 새콤달콤을 받아들고 울어도 소리내지 않는 소연의 엉덩이를 때리는데 자신은 나쁜 사람이고, 소연의 집에 피해를 줄 것이므로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말라는 것처럼 이뻐했던 소연에게서 미안한 감정을 가지지 않게 정을 떼어내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사기는 걸리면 친 사람 잘못 안 걸리면 당한 사람 잘못이었다. P195

민희는 은협의 전세살이의 불안감을 알고, 그 불안을 이용해 한 가정을 흔들어놓았다.

우리가 얼마나 그동안 부에 집착하고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라도 욕망을 채우고자 했는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집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에르메스에서 금테사 둘린 자잘하고 복잡한 패턴의 접시도 샀다. 나무 수저가 아무리 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주변마저 빈해 보이면 곤란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환경주의가 아니라 환경주의적인 것이었다. 둘 사이에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았다. 알고도 모르는 척 했으며, 모르는 척한다는 것도 서로 모른 척했다. 일종의 공모였다. P66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른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은협이 소연을 데리고 피부과의원에 간 동안 민희를 돌봤고, 보일씨의 애인을 찾으러 상암에 동행했고, 아기를 포대기에 업은 채 소연을 등원시켰다. 대연과 중연의 일을 수습하러 초등학교에 가지 못할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한번 자전거를 배우면 다시는 못 타는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이미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P79-80

 

#은행나무 #시리즈n #장진영 #취미는사생활 #부동산 #스릴러 #소설추천 #장편소설 #신간도서 #책스타그램 #서평

❤︎ ‘은행나무’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에르메스에서 금테사 둘린 자잘하고 복잡한 패턴의 접시도 샀다. 나무 수저가 아무리 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주변마저 빈해 보이면 곤란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환경주의가 아니라 환경주의적인 것이었다. 둘 사이에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았다. 알고도 모르는 척 했으며, 모르는 척한다는 것도 서로 모른 척했다. 일종의 공모였다. - P66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한 번이 어려웠지 두 번른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은협이 소연을 데리고 피부과의원에 간 동안 민희를 돌봤고, 보일씨의 애인을 찾으러 상암에 동행했고, 아기를 포대기에 업은 채 소연을 등원시켰다. 대연과 중연의 일을 수습하러 초등학교에 가지 못할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한번 자전거를 배우면 다시는 못 타는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이미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 P79

사기는 걸리면 친 사람 잘못 안 걸리면 당한 사람 잘못이었다. - P195

그들은 죽었다 깨나도 집을 살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시골 땅은 헐값에 살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투기할 의도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투기한 게 될 수도 있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투기, 보일 씨가 바라는 건 그것이었다. 양심을 팔기는 싫고 부자는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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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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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세계문학전집 223)

세계문학을 읽는 물결 #18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문학동네 출판


 

 

🖊️

『속죄』는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인 메가셀러이며, 키이라 나이틀리,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평범한 여름날, 소녀의 작은 오해가 불러온 젊은 연인들의 비극과 이를 되돌리려는 평생에 걸친 지난한 속죄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거짓말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추락시킬 수 있는지 거짓말을 한 자와 거짓말로 피해를 입고 사는 인생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브라이어니의 상상력의 산물들이겠지만, 작가는 상상력이란 무엇이고 어떤 위력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도덕적 책임이 따르는지를 『속죄』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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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에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루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1935년, 교외의 저택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작가를 꿈꾸는 열세 살 소녀 브라이어니 탤리스와 사촌들의 연극놀이 이야기만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로비 터너와 언니 세실리아가 분수대 앞에서 꽃병을 깨뜨리고 물 속에 떨어진 것을 줍는 과정을 브라이어니가 언니가 위협받는다는 상상을 하면서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질서정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브라이어니는 거짓말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어린 브라이어니가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죄를 짓는 과정이 나온다.

 

🖊️

2부에서는 1940년 브라이어니의 행동으로 파멸을 맞은 로비 터너가 전쟁터에 나가 고통 받는 과정이다. 로비는 무죄가 될 수 있을까 희망에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힘든 군 생활을 세실리아와 잠깐의 만남을 기다리며 버텨낸다. 로비는 그렇게 무너질 것 같을 때 가족을 버리고 자신을 택한 세실리아를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로비는 그 사람들을 모두 용서한 것인가. ‘누구나 다 죄가 있고, 누구나 다 죄가 없기도 했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갑자기 초연한 사람이 된 듯 죄는 누구나 있다고 말한다. 로비는 범죄자가 아니었지만 당시의 모두는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구타당하는 군인을 보며 과거 자신이 억울했던 상황과 비슷하지만 입장이 바뀐 상태이다. 군인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크고 강해보이는 군중심리를 즐기고 있었던 로비는 과거 자신을 돕지 않은 모두를 이해하는 걸까 궁금했다. 아니면 군중에 속하고자한 자신을 속죄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불행은 한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로비는 알지만 그 불행이 자신이 된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

3부는 1940년 간호사가 된 브라이어니가 속죄를 위해 애쓰는 과정이 나오고, 이후 육십여 년이 지나 저명한 작가가 된 브라이어니는 지금까지의 내용이 몇 십년동안 고쳐 쓴 소설이라는 고백을 하면서 모든 이야기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이라고 말한다.

 

브라이어니가 어리다고 해서 거짓말로 로비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어쩌면 작가는 마지막에 상상이었다고 말하며 누구나 특별할 수도 있지만 특별하지도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 같다. 내 생각만 옳고 내가 만든 세상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브라이어니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을 불행에 빠뜨리는 행동을 했다. 혼동과 오해로 인하여 순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로비의 마음도 같았다는 사실을 어리다고 몰랐다고 말하기에 망쳐버린 타인의 인생은 브라이어니가 속죄한다고 그 마음이 치유되고 되돌릴 수 있을까. 피한다고 해결되는 현실이 아님에도 감미로운 상상이라는 곳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이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비록 현실이 고통 속일지라도 돌아온 현실을 마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듯 했다.

 

긴 이야기를 읽고 지난날 나는 누군가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는지, 그 거짓말로 인해 크고 작은 마음의 짐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본다.

 

-------------

 

🔖이미 깨달았던 바지만, 아름다움은 이 우주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차지했다. 반면에 추함은 무한히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다. P20

 

그러나 사실은, 짐을 꾸려 아침 기차를 타고 떠나자고 생각해도 별로 신이 나지 않았다.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는 회의가 밀려올 뿐이었다. 지루하지만 아늑한 이곳에 머무는 것은 세실리아가 선택한 자기학대이자 형벌이었다. P41

 

둘 중 하나가 말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만회해보려고 애를 쓰곤 했다. 따라서 편안하게 대화가 오갈 수 없었고, 마음은 항상 불편했다. 가시 돋친 말과 함정이 있는 암시, 어색하게 화제를 돌리는 일이 반복되자 세실리아는 그를 싫어하는 만큼이나 자기 자신도 싫어하게 되었다. P50

 

🔖이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십억 개의 목소리와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십억 개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특별할 수 없었다. 모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하찮음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었다. P61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도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에 대한 몰이해가 불행을 불렀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두가 마음이 똑같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에 필요한 유일한 교훈이었다. p.67

 

🔖감미로운 공상 뒤에는 현실 복귀라는 쓰라린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공상을 통해 피해왔던 현실을, 더 나빠진 것만 같은 현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세부 하나하나까지 그럴듯하게 보이던 공상의 순간들은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찰나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P117

 

“네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잖아. 무슨 일인가 일어났어, 그렇지 않아? 나보다 먼저 알았잖아. 바로 코앞에 뭔지 모를 무언가가 있는데 너무 거대해서 존재조차 알 수 없는 느낌. 그게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내 앞에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어.” P198

 

로비는 어둠 속에서 그 마지막 두 문장을 소리 없이 되뇌어보았다. 내 삶의 이유, 생활의 이유가 아니라 삶의 이유. 바로 그거였다. 그녀는 그의 삶의 이유였고, 그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였다. P304

 

무죄가 입증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사랑과도 같은 단순성이 있었다. 그 가능성을 음미해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줄어들거나 사라져버렸는지가 느껴졌다. 삶에 대한 애정, 오랜 야망과 정열, 그리고 기쁨. 그는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며,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P328

 

🔖지금 이 남자를 보호하려는 건 미친 짓이지만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폭행하는 군인들의 이상한 열기와 흥분을 이해할 것 같았고, 자신에게도 그런 흥분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지고 있는 사냥칼로 잔인한 짓을 하면 백 명이 넘는 군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그는 남자를 에워싼 군인들 중 자기보다 더 크거나 강해 보이는 사람들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짜 위험은 군중 자체와 나름대로 정당해 보이는 군중심리에 있었다. 그것이 주는 쾌락 또한 부인할 수 없을 터였다.  P364

 

🔖유죄인 사람이 무죄가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요즘 같은 때에 죄란 과연 무엇인가?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다 죄가 있고, 누구나 다 죄가 없기도 했다. 증언을 번복하는 것만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증인들의 진술을 받아 적고 증거를 모으기에는 인력도, 종이와 펜도, 그리고 인내심과 평화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인들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었나? 이곳 지하실에서 우리는 그런 질문에 대해서 계속 침묵할 것이다. P377

 

#속죄 #이언매큐언 #한정아 #문학동네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독파챌린지 #세계문학 #세계문학을읽는물결 #서평 #책스타그램 #내돈내산

이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십억 개의 목소리와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는 이십억 개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특별할 수 없었다. 모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하찮음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었다. - P61

감미로운 공상 뒤에는 현실 복귀라는 쓰라린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공상을 통해 피해왔던 현실을, 더 나빠진 것만 같은 현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세부 하나하나까지 그럴듯하게 보이던 공상의 순간들은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찰나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 P117

지금 이 남자를 보호하려는 건 미친 짓이지만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폭행하는 군인들의 이상한 열기와 흥분을 이해할 것 같았고, 자신에게도 그런 흥분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지고 있는 사냥칼로 잔인한 짓을 하면 백 명이 넘는 군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그는 남자를 에워싼 군인들 중 자기보다 더 크거나 강해 보이는 사람들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짜 위험은 군중 자체와 나름대로 정당해 보이는 군중심리에 있었다. 그것이 주는 쾌락 또한 부인할 수 없을 터였다. - P364

유죄인 사람이 무죄가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요즘 같은 때에 죄란 과연 무엇인가?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다 죄가 있고, 누구나 다 죄가 없기도 했다. 증언을 번복하는 것만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증인들의 진술을 받아 적고 증거를 모으기에는 인력도, 종이와 펜도, 그리고 인내심과 평화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인들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었나? 이곳 지하실에서 우리는 그런 질문에 대해서 계속 침묵할 것이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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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
유래혁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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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

 

유래혁 지음

북로망스 출판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는 포스터샵 유래혁이 데뷔 8년 만에 선보이는 첫 번째 산문집으로 사랑하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의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켰다. 감성 사진 50여 장과 사랑이 담긴 글 60여 편을 읽으면 작가가 주변 모두를 사랑하는 시선으로 보고 메시지를 책 속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사는 곳으로 초대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사는 삶을 그려보기도 한다.

 

포토그래퍼가 아니더라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그 사진을 담는지 안다. 눈으로 보이는 것 모두를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 다시 보고 싶은 욕구를, 그 열정을 쏟아낸다. 물론 구도, 빛, 색채 등의 조화로움이 멋진 사진에 필요할 수도 있지만 감성은 눈으로 보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마음으로 남기는 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글만으로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지만 포스터샵인 유래혁 작가는 아름다운 글 위에 풍경같은 감성 사진을 살포시 얹어 글의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왠지 모르게 글에서 그리움이 자꾸 느껴졌다. 헤어진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먼저 떠난 가족이나 강아지일 수도 있지만 다시 만나고 싶고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을 써내려 간 것 같았다. 문득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의 누군가도 아니고 전혀 다른 장소와 시간이지만 마음 속 저편에 꾹꾹 눌러 다시는 못보겠다고 했던 사람이 생각나는 것 같은 느낌.

 

바닷물이 떠나가고 세상을 빙 둘러 다시 제자리로 오기 위해서는 이천 년쯤의 시간이 필요하다 합니다. 이 긴 시간 사이 한 번을 마주치지 못할까요.

자, 가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 사이에 우연은 없고

오직 당신에게 가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P104)

 

3부의 <작은 묘비>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관한 글이 나왔다. 지금 막 나도 <마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괜히 반가웠다. 과거 연인와 나쓰메, 소세키로 부르자고 했지만 헤어졌다고 했다. 아직도 <마음> 책을 가지고 다니는데 누군가 물으면 멋진 묘비라고 말한다는 글을 읽으니 어떤 마음이길래, 그 책 속에 누구를 묻었기에 두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마음>을 읽어본다면 그 잊지못하는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사진이 다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진들이 멋있다. 잔잔한 호수, 푸르른 숲,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는 여행지에서 아침에 일어나 책 읽는 듯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동안의 휴식을 한 듯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 책 속 밑줄긋기

 

🔖뻔뻔한 젊음이 되어, 더 자주 사랑할 겁니다.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

얇디얇은 모순에 가로막혀

아무 말도 못하다 헤어지는 건 싫습니다. P40

 


 

점점 발길이 끊긴 곳에 가시가 돋으면 장미라도 피는 게 보통이겠지만, 나에게 그런 예쁜 꽃 하나 없었는데 넌 어떻게 온 걸까. 내가 위험하다고 적어놓은 것들 다 무시하고 어떻게. 하얀 얼굴에 흉지는게 신경도 안 쓰이는 사람처럼.P63

 

있잖아, 오늘 같은 날이면 나는 이런 상상도 해. 세상 사람들 다 우리처럼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전부 둥글게 되는 상상. P63

 

 

그 사이 몇 개의 향수를 다 써버린 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같은 향수였습니다.

이름은 해와 흙입니다.

 

처음 이 향을 맡았을 때엔 향수를 모두 쏟아 온몸을 적시고 당신을

꼭 껴안으면 그 뿌리를 내게도 조금은 내려주지는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했던 게 떠오릅니다.

종려나무를 닮은 당신이 내 곁에 머물기를 바랐나 봅니다. P95

 

긴 밤도 망설임 없이 찢어내는 새벽 어스름 빛마저

이제 나를 피해갈지 몰라도

당신 하나만큼은 나를 향해 곧장 내려오세요.

어서 하얗게 뒤덮어주세요.

처음부터 나 여기 없었던 것처럼. P101

 


 

 

🔖예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인물이 했던 대사가 이제야 이해가 돼.

소설에서 그는 뾰족한 절벽을 보며 굉장히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이가 그의 표정을 보곤 절벽이 그렇게도 무섭냐고 물었어.

그러자 나온 대답이 바로 ‘절벽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내 자유가 무섭다’였어. P112



 

 

나라는 존재가 뭐든 될 수 있다면, 동시에 뭐든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나만 사랑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몇 년이나 내뱉질 않았던 것이다. 숨이 턱끝까지 차면 고통을 잊기 위해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이 즐거움에 한동안 빠져버렸던 것 같다. P133

 

사랑은 아무런 무게가 없다지만 아주 단단한 것에도 깊은 발자국을 낸다. 그래. 부서지는 것은 사랑과 부딪히는 것들뿐이다. 닳는 것은 미움 뿐이다. P139

 

🔖괜찮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초대하고 싶습니다. 당신께 서랍 속에 숨겨둔 못난 마음 들킨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안 괜찮은 날일수록 더 보고 싶었으니까요. P149

 

🔖 쥔 것을 놓고 손을 넓게 펼쳐야 내 마음 알 수 있다는 건 왜 몰랐을까요. 새하얀 손으로 가장 먼저 쥐어봐야 하는 건 심장이어야 해요. 무엇 가까이서 요동치는지 알 수 있도록. P193

 

 

 

#당신과아침에싸우면밤에는입맞출겁니다 #유래혁 #포스터샵 #북로망스 #책읽어주는남자 #에세이 #시 #포토북 #산문집 #러브레터 #신간도서 #서평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닷물이 떠나가고 세상을 빙 둘러 다시 제자리로 오기 위해서는 이천 년쯤의 시간이 필요하다 합니다. 이 긴 시간 사이 한 번을 마주치지 못할까요.

자, 가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 사이에 우연은 없고

오직 당신에게 가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 P104

뻔뻔한 젊음이 되어, 더 자주 사랑할 겁니다.

당신과 아침에 싸우면, 밤에는 입맞출 겁니다.

얇디얇은 모순에 가로막혀

아무 말도 못하다 헤어지는 건 싫습니다 - P40

예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인물이 했던 대사가 이제야 이해가 돼.

소설에서 그는 뾰족한 절벽을 보며 굉장히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이가 그의 표정을 보곤 절벽이 그렇게도 무섭냐고 물었어.

그러자 나온 대답이 바로 ‘절벽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내 자유가 무섭다’였어. - P112

괜찮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초대하고 싶습니다. 당신께 서랍 속에 숨겨둔 못난 마음 들킨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안 괜찮은 날일수록 더 보고 싶었으니까요. - P149

쥔 것을 놓고 손을 넓게 펼쳐야 내 마음 알 수 있다는 건 왜 몰랐을까요. 새하얀 손으로 가장 먼저 쥐어봐야 하는 건 심장이어야 해요. 무엇 가까이서 요동치는지 알 수 있도록.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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