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특별판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절판


『고래』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첫 장부터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 설화소설이라고 할 만큼 초인적 인물이 등장하는데,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 불리는 벙어리 여자 벽돌공 ‘춘희’이다. 춘희는 평대 마을에 팔백 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교도소 수감되었다가 오랜 교도소 생활 후 벽돌공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평대 마을로 돌아오는 과정도 더위에 옷을 벗어던지거나 허기짐에 뱀을 익히지 않고 생으로 뜯어먹는 모습은 인류의 초기모습처럼 야만적이다.

 

고래 소설은 금복, 금복의 딸 춘희, 국밥집 노파, 노파 딸 애꾸, 금복의 남자들(생선장수, 걱정, 칼자국, 文 등), 쌍둥이자매, 코끼리 점보, 고래, 엿장수, 약장수, 벽돌공장, 영화관, 감옥, 다방 등 강렬하고 다채로운 캐릭터와 장소가 나온다.

 

시작은 거대한 몸집의 벙어리 춘희이야기였지만, 소설은 금복의 휘황찬란한 삶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전설같은 이야기들이다. 책을 덮고나서 얼마나 금복이 남자들을 만났는지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기억밖에 없었다;; 첫 번째 남자인 나이많은 생선장수에게 재산을 불리게 해주고(금복이 생선을 10월에는 말리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안듣고 태풍을 만나 재산을 다 날린다), 춘희 아빠일 것 같은 임꺽정처럼 힘세고 거구인 걱정, 걱정이 다친 후 영화관의 서부영화를 보여주는 칼자국을 만나는데 이 칼자국이라는 인물은 이름 한번 길다 ㅋㅋ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

게이샤를 사랑해서 손가락 6개를 자르며 오야붕이 되어야 했던 칼자국이란 인물을 죽이면서 금복은 거리의 부랑자 생활을 하게 된다.

 

춘희를 낳은 금복은 (생물학적으로 죽어 부랑자 중 누구일테지만) 죽은 걱정과 똑닮은 것을 보고 자식이지만 자신이 저지른 과오때문인지 멀리한다. 그 때문에 춘희는 항상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보고 듣지만 말할 수 없는 벙어리의 신체적으로 제한된 상황 때문에 더 삶이 외롭게 느껴졌다.

 

박색으로 인한 자격지심으로 세상의 원망만큼 돈을 많이 모은 국밥집 노파가 있다. 건달들이 찾아오고 자신이 눈을 찔러 애꾸가 된 딸도 찾아오지만 노파의 돈은 찾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금복이 그 국밥집을 사게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추한 노파의 국밥집 지붕에서 쏟아져 나온 돈으로 남발안에 넓은 땅을 사서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는데 노파의 딸 애꾸가 벌을 뒤집어 쓴채 기이한 모습으로 나타나 금복에게 자신의 것이라며 돌려 달라 말한다. 노파는 귀신인지 실제 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평생 모은 돈으로 사업 성공한 듯 보이는 금복에게 복수하는 듯 모든 것을 빼앗는다.

 

소설에서 자본주의의 법칙, 사랑의 법칙 등 법칙은 40번도 넘게 나오는데 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일까. 벗어날 수 없는 운명같은 느낌으로 그놈의 법칙들은 계속 된다.

 

개망초는 일제강점기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한 번식력으로 농사를 망칠만큼 많이 피어 개망초라 불리었다고 하는데 춘희가 가는 곳마다 개망초가 있었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의미로 춘희가 죽음을 깨닫고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차를 타고 평대 도착해서부터 친근한 개망초를 글 모르는 춘희는 서명란에도 개망초로 사인을 했는데 이상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춘희가 벽돌을 굽고 죽음과 가까워지는 페이지에서도 텅빈 페이지에 개망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어 춘희의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작가는 중간 중간 “독자여,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라고 말하여 이야기꾼이 되어 읽는 재미를 더 돋우어주고, 화법은 아주 능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 속 인물들의 개성들을 화려하게 표현해주었다. 소설 전반적으로 금복의 특이한 향과 풍만함같은 전설적인 표현을 위해 쓰여야 했겠지만, 금복을 향한 남자들의 색정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외설스런 느낌이 많았다.

 

교양있는 지식인, 일반적이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기 급급했던 밑바닥 인생들의 모습이 많았던 『고래』 속 여성들은 소설의 주인공이었고 남자들을 이용하고 죽이면서 욕망을 채워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기억되었다.

 

 

📖 책 속 밑줄긋기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天刑)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며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P19

 

그녀가 진정 사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 단순한 세계였다. 그녀는 그의 육체를 신뢰했으며 그 거대한 존재 안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서 행복했다.

P72

 

그가 원하는 것은 그녀의 투정이었고 그녀의 눈웃음이었으며 그녀의 포옹과 눈물, 그녀의 숨소리, 그녀의 사랑만이 그가 진정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이 궁극은 나오꼬, 금복의 모든 것이었으며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P107

 

🔖❁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P150

 

춘희는 비로소 생전의 점보가 말하던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거였다. 파리가 눈에 앉아도 눈을 깜빡여 쫓지 못하는 거였고 차가운 비가 내려도 피하지 못하는 거였으며 다리가 아파도 앉아서 쉴 수 없는 거였다. 춘희에게 있어서 박제된 점보는 더이상 점보가 아니었다.

P218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P220

 

🔖그녀가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P271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P271

 

그날 춘희가 종이 위에 정성스럽게 그려넣은 것은 바로 공장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개망초였다. 춘희가 서명란에 왜 개망초를 그려넣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기차를 타고 평대에 처음 도착할 때부터 단숨에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후, 개망초는 언제나 그녀에게 가장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터라 그녀가 조서에 개망초를 그려넣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P309



 

 

 

마당엔 다른 잡초는 눈에 띄지 않고 오로지 개망초만이 하얗게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당 한쪽엔 짐승의 뼈로 보이는 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며 벌통으로 보이는 썩은 나무통이 몇 개 나뒹굴었다. 살림집으로 쓰인 듯한 건물은 이미 폭삭 주저앉아 그 위에도 개망초가 무성했다.

P402

 

 

그녀는 우리와 달랐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고독 속에서 살았다.

P415 에필로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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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그것은 춘희가 금복의 손을 잡고 평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역 주변에 무성하게 피어 있던, 슬픈 듯 날렵하고, 처연한 듯 소박한 꽃의 이름이었다. 이후, 그 꽃은 가는 곳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녀 훗날 그녀가 머물 벽돌공장의 마당 한쪽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낼 교도소 담장 밑에도, 그녀가 공장으로 돌아오는 기찻길 옆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을 참이었다. - P150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 P220

그녀가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 P271

그날 춘희가 종이 위에 정성스럽게 그려넣은 것은 바로 공장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개망초였다. 춘희가 서명란에 왜 개망초를 그려넣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기차를 타고 평대에 처음 도착할 때부터 단숨에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후, 개망초는 언제나 그녀에게 가장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던 터라 그녀가 조서에 개망초를 그려넣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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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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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사실 책 대부분의 이야기는 언뜻보면 선자이모의 첫사랑 K.H 찾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꼬리표처럼 사고로 언니를 잃었다는 말 때문에 자신은 행복해 하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에 자신으로 인해 슬프면 안될 것 같아 독일에서 외톨이가 아니라는 거짓말이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했다. 벽을 치고 자신을 방어하며 살았던 시간 속에서도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주는 이모, 레나, 한수가 있었다.

 

특히, 이모는 해미의 드러내지 않는 외로움을 알아봐주고 자신이 만든 벽 안에 거리두며 사는 마음을 이제는 가까이 해도 된다고 말해주며, 찬란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데 이런 이모를 곁에 둔다면 돌보지 않고 방치해둔 상처받은 마음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벚꽃잎 날리는 풍경을 보며 ‘왜 선자이모는 독일 파독간호사로 가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장면이 있었다.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는 문장을 읽는데 기억이 나는 순간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구나 생각들었다. 그만큼 이모와 함께 풍경을 보던 기억이 좋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어디선가 꽃향기가 날려오는 표현이라 참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독일로 갔던 파독간호사들은 타지에서 외롭지만, 한국에 돌아와도 이방인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내려가도 며칠이 지나면 불편해서 집 생각이 난다. 언제까지나 고향의 사람들과 지역의 문화는 변화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들도 그 장소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기에 내가 기억하고 내가 만나고픈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장소가 어찌되었든 나는 이방인처럼 살아야겠지만 서글프기보다 세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아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독파에서 소설의 첫 단어 ‘야자수’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는 미션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독일에서 생활하는 자신이 이방인 같다는 생각으로 야자수 단어를 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마지막 제주도에서 “그런 야자수들이 살아남아 이젠 제주의 일부가 되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일이지?”라는 문장을 읽고는 야자수가 다른 의미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독간호사 이모들은 독일에서 이방인이었지만 그곳의 일부가 되어 아우러져 살아갔으니.

 

한수를 위해 찾기 시작한 선자이모의 첫사랑 찾기는 결국엔 언니를 잃은 해미가 언니를 되찾고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인물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아픈 시간이고 지나고 나서야 깨닫겠지만 해미는 KH를 찾고 나서야 자신이 상처를 줄까봐 멀리한 우재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낸다.

이런 해미를 보면서 내가 지나온 불안했던 시절 속에서 눈부신 안부를 전할만한 사람은 있었는지 떠올리게 했고, 그 포기하지 않은 시간들처럼 앞으로 또 그런 회복이 필요한 날들이 지나고 찬란한 삶과 눈부신 인생이 다가오길 바래본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그런 마음이 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그 시절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벚꽃이 만개한 텅 빈 캠퍼스를,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에 부는 한강 둔치를 달아오른 얼굴로 함께 걷던 밤들이 있었으니까. P8

 

우리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무언가, 이를테면 오랫동안 방치해두어 먼짓더미에 뒤덮인 어떤 책의 한 페이지가 비밀스럽게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갈피에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는 책, 눈을 감자 그 사진이 보일 것만 같았다. P17

 


 

“쟤가 걔래. 그 사고로 언니를 잃은 애.” 그런 말을 떠올리면 나는 해나와 <뾰로롱 꼬마 마녀> 나 <바람돌이 소닉> 같은 만화영화를 보며 하하하, 웃다가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누구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어떻게 언니를 잃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냐고 다그칠 것 같았으니까. 너는 언니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나에게 그렇게 비난하듯 말할 것만 같았으니까. P29

 

그곳에서 나는 그저 온전한 나였고, 레나는 온전한 레나였으며, 우리는 온전한 우리였다. 그런 시간은 이모가 시장에서 떨이로 사온 무른 산딸기나 살구로 만들어주던 잼처럼 은은하고 달콤해서, 나는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는 걸 배웠다. P40

 

🔖하지만 나는 신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을 거라고 은밀히 생각하고 있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잔혹한 방식으로 언니가 죽을 수는 없었다. P47

 


 

나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빛에는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었고, 그 눈빛 앞에서는 아직 언니가 살아 있고 막내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처럼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지곤 했다. P64

 

🔖이따금씩 청신한 바람이 휘어진 나뭇가지들을 건드리며 지나가면 바람결을 따라 꽃잎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대부분은 나무 근처로 떨어져 내렸지만 어떤 꽃잎들은 조금 더 가벼운 듯 두둥실 날아가기도 했다. 멀리, 먼 곳으로. 그렇게 봄 풍경의 한가운데 서서, 어디론가 멀어지는 벚꽃잎들을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 P73

 


 

🔖그건 언니가 떠오르면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의 행복이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찌를 때마다 속으로 언니에게 말을 했을 만큼의 행복.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P109

 

🔖내 삶을 돌아보며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P303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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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청신한 바람이 휘어진 나뭇가지들을 건드리며 지나가면 바람결을 따라 꽃잎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이며 흩날렸다. 대부분은 나무 근처로 떨어져 내렸지만 어떤 꽃잎들은 조금 더 가벼운 듯 두둥실 날아가기도 했다. 멀리, 먼 곳으로. 그렇게 봄 풍경의 한가운데 서서, 어디론가 멀어지는 벚꽃잎들을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 - P73

내 삶을 돌아보며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 P303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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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작가

문학동네 출판




 

북클럽문학동네 6기만 참여할 수 있는 <네덜란드판 출간 기념 문장투표 이벤트>에 선정되어 『1차원이 되고 싶어』한국판과 네덜란드판을 받았는데요. 작가님 친필 사인까지 ❤ 주셨답니다~(^^**)

 


 


내가 두고 온 한 여름밤의 청춘 이야기를 보는 듯 했다.

 

대구 수성못의 떠오른 시체 한구가 발견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인 대구가 배경이라 첫 장부터 궁금증 가득안고 시작이었는데, 지역 토박이만이 알 수 있고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장소와 디테일들은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교동시장, 대구의 강남 수성구, 동성로 시내 카페, 로데오 옷가게 예쁜 언니들, 파르페와 무한리필 토스트까지.

 

봉인된 기억이 떠오르는 것으로 소설은 본격적인 시작이다. 수성못 시체가 발견된 뉴스와 익명의 DM 글을 확인하면서.

사실 나는 동성간의 연애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터질듯한 육체적욕망으로 확 나가버리는게 아니라 사춘기 소년의 ‘그래도 될까, 정말 내가 그럴까’ 하는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사랑에 대한 순수함이 나타나 장면들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예쁘장하지만 약해서 괴롭힘을 받는 타겟이 된 태리를 보면서 나는 태리와 다르다며 선을 긋고 우등생으로 태리처럼 되지 않기 위해 멀리하는 비겁함이 내 안에서도 있었기 때문일까. 그 비겁함이 결국에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아야할 비밀이었고 비밀을 덮고 감추기위해 추악해져가는 모습과 모른척한다고 달라지지 않는 사실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오래방에서 윤도가 목캔디를 입에 넣어주는 장면은 남녀가 아닌 상황이지만 달달함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 지으며 보게 되었다.(남자 동성간의 미묘한 기류에 읽는 나는 왜 떨리는 건데. ㅎㅎ) 컨테이너에서만큼은 동성이지만 마음을 키워가는 것에 대해 허락될 것만 같고, 그 공간에서는 누구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고 윤도와 나만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같았다.

 

인물들이 매력적이라기보다 ‘나’의 덤덤하게 꺼내 놓는 속내들이 어쩌면 나도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했던 행동들이 별 것 아니라고 그러면 안된다고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있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들에게 상처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어린 시절을 일기장 속에 몰래 남겨둔 마음을 꺼내 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나’의 일상에 스며든 것처럼 좋기도 하면서 부끄럽기도 했다.

 

윤도를 두고 돌아나오는 나의 모습에서 둘만의 비밀관계는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청춘이었기에 뜨거웠고 아름다웠지만 말 못할 비밀을 갖고 있기에 그 세계 속에 인물들을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박상영작가님 장편소설 계속 써주세요. ❤





🔖이렇게 갑자기 눈이 떠지는 밤이면 이 방에, 이 삶에 영영 갇혀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때면 천장이, 하늘이, 온 세상이 통째로 날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천장과 나의 세계. 점점 더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시작했다. P91

 

🔖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 무게에 짓눌려 남들도 자신 몫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P125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 P130



 

🔖 인생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좀더 쉽고 간단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저 앞을 보며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십여 년 동안 끝없이 질주한 끝에 내가 다다른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P131

 

🔖 윤도의 마음은 분명 나와는 다른 것 같았다. 함께 있을 때 우리 사이의 거리가 0에 가까운 것과는 달리,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윤도는 내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 간극이 나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조차 내 과잉된 자의식이 빚어낸 오해일 수도 있지만. P187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이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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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 - P130

인생이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좀더 쉽고 간단했다. 나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저 앞을 보며 힘껏 달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십여 년 동안 끝없이 질주한 끝에 내가 다다른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

때때로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기억들도 있다. - P131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의 눈 속이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 그 순간들이, 그때 우리의 마음이 다 진짜였다는 것.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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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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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들의 미래, 집없는 자들의 설움, 꿈은 멀지만 현실은 인정하기 싫고, 하지만 그 속에서 또 우리, 함께라는 동지들 친구들의 위로와 술한잔 기울이며 실수도 서로를 위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 같다.

제목처럼 근희의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도전들에 비난과 손가락질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는 것에 응원을 해줘야하는 것!
내 이야기. 또는 내 주변의 이야기. 인생에 정답은 없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들이 모여 결국엔 원하는 삶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 <미조의 시대>
미조야, 너도 오늘 면접 본 회사에 들어가면 알게 될 텐데, 성인 웹툰은 오너의 최후의 방패 같은 거야. 매출 100억 정도 올리는 건 쉽거든. 그러므로 어느 회사를 가든 어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돼. 어딜 가나 똑같다는 거야. 다 마찬가지야. P17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5천만 원은 아버지가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이었다. 우리는 그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절대로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아버지의 유산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느새 아버지는 6평 남짓한 반지하방의 전세금만 남겨준 사람이 되어 있었다. P31

내일은 멀고, 우리의 집은 더 멀고, 민들레 꽃씨가 날아와 우리
머리 위에 내려앉는 꿈은 가까운 그런 밤이었다. P48


각자의 삶. 한정된 돈에서 집을 구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에 치여 꾸역 꾸역 사는 듯하다. 시를 쓰는 엄마가 하는 ‘떡집에서 못 팔고 버린 떡 같은 하루’ 라는 문장은 어째 지금 미조가 마주하는 현실같아서 짠했다. 반지하방이라도 구해야하는 미조에게 부동산은 장물아비처럼 팔지 말아야 할 것을 파는 것 마냥 입주자들의 주거환경은 신경도 쓰지 않고 눈가리고 아웅 그자체다. 돈없는 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


📖 <엉킨 소매>

내가 원하는 건 폭력 없는 세상인데, 가끔은 폭력과 폭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어. 그때마다 또 분열을 느껴. 내가 둘로 쪼개지는 기분이야. P73

🔖우리는 서로 연결된 촉수를 갖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 촉수의 탐지 기관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상대의 마음인 줄 알았던 것이 자기 마음이 되기도 하고, 자기 마음인 줄 알았던 것이 상대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뒤섞여버린다. P77

나는 모르겠어.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마음도 생각해봐. P79

하지만 자꾸 울고 싶은 일이 생기는 걸 어쩌나. 어떻게 막을 수가 있나.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건이 우리 가슴에 유성처럼 떨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 소매가 엉킨 채로 함께 걸어갈 것이다. P83


이 여자 셋 참 좋다.
그냥 무심한 듯 하면서 가까이 있고 자신이 그런 상황이었던 것처럼 도와준다.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지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즐기는 것이었고 자신의 일상에 갑자기 초대 하거나 가식적으로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츤데레 같은 사람들.


📖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도대체 우리는 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없나. 꿈과 돈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언니도 알았다. 꿈을 제대로 이루거나 완전히 버려야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P98

핸드폰 메모장을 쓰면 되니까 메모지는 필요 없어. 그렇게 몇 번이나 나를 설득했다. 3천만 원짜리 아파트를 발견했을 땐 사고 싶다는 마음이 치솟았는데, 3천 원짜리 메모지 앞에선 비싸다는 생각만 들었다. P99

나는 불 꺼진 극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람인 정도가 아니라, 영화가 시작되기 전 통로에 자리잡고 앉아 공짜 영화를 보려는 뻔뻔한 사람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없는 자리를 만들어 내 자리라고 우기고 있다는 생각. 공짜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생각. 공짜를 좋아하면 돈을 아낄 수 있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언젠가 3천만 원짜리 아파트를 사고 싶었다. 그건 서울의 집값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이고,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런 꿈이라도 있어야 버티고 살지. 3천만 원짜리 아파트가 이 나라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아야. P108

언제쯤 어디에 발을 내릴지 모른다는 것은. 일단 발을 내려야 그다음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P121


나(심가진), 수미언니, 사영 세 여자의 ‘우리’라는 단어가 좋다.
마오쩌둥 중국 이야기 중 참새가 농사를 망친다고 참새를 못 앉게 해서 쉬지 않게 날아 지쳐 죽게 만든 이야기를 하며 그 참새들 이 자신 같다며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열심히 살고, 내가 잘하는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매일 먹고 살기 바쁜데 집은 어떻게 마련할지..아끼고 아끼며 살다보면 내 집마련이 될 거라는 거주의 불안감이 일상의 모든 소비에 영향을 주어 메모지 하나 사는 것조차 스트레스이다.


📖 <젊은 근희의 행진>

그러니까 언니,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야.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 탓이야. 사소한 나를 구독해주는
구독자 탓이야.
언니, 관종이 되려면 관종으로 불리는 걸 참고 견뎌야 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니는 모르지? 한 가지 더 언니가 모르는 게 있어.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모를까. 왜겠어. 언니가 꼰대라서 그런 거지. P158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동생 근희와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는 언니 문희 서로 생각이 다르다. 사기꾼에게 속은 것은 아닐까 동생을 걱정하는 문희는 결국엔 근희의 고집스런 행진을 응원한다. 가슴이 깊에 파인 옷을 입고 북튜버를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를 쓰며 실은 동생을 내심 생각하고 걱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자신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단칸방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동생을 위해.


📖 <연희동의 밤>

차장은 여직원이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입어야 회사가 번듯해 보인다는 이상한 말을 자주 했다. 처음부터 그런 말을 했더라면 진즉에 회사를 때려치웠을 텐데, 내일채움공제를 의식했는지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했다. 그만두기엔 반년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치마를 입어주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지만, 차장과 타협한 것인지 나 자신과 타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P169

🔖한동안 술잔만 비워내던 언니가 말했다. 선생님, 청춘이 아름다운 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세상을 시시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시기가 지나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공포로 다가와요. 제가 지금 그래요. 모든 게 공포예요. P174


입바른 소리하는 은단씨. 경희 언니가 8년간 쓴 글에 재능이 있다 말해서 8년을 허비했다 생각한다.

아그리파, 술의 집
푸대접 포차. 목마와 미나리아재비
촛불 끄는 사람들.

세 군데 술집을 들러 귀가하는 언니의 책 속 주인공들처럼 경희 언니와 술집을 다니며 이런 저런 이야기가 꼭 우리 회사의 꼰대들과 내가 하는 일이 맞게 가는지 고민들에 대해 쏟아낸다. 자신감결여일지 진짜 잘못된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지나면서 젊을 때와는 다르게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 <나의 방광 나의 지구>

고작 방광 때문에 집 사는 걸 포기할 수는 없어.
그는 20년 동안 카페인 중독자로 살았지만 단박에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화가 나서였다. 집을 사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 절박뇨로 나타나는 현실에 화가 났다. 이런 일도 제대로 못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걸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P212


부동산 스트레스로 건강까지 헤치면서 꼭 집을 장만해야하는지 의문을 갖다 결국엔 안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더 크게 바라보며
지구를 소유하면 된다며 마음을 먹기로 한다. 하지만 여전히 80세 노인에게는 고독사 할 수 있으니 세를 주지 않는다는 뉴스를 떠올린다. 자신의 보금자리만을 원했을 뿐이지만 식단에 초록 식단으로 채우고 지구 환경 사랑의 마음으로는 그 비어버린 보금자리의 텅 빈 자리를 채울 수는 없다.
현실이다. 은행 저축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과거 교육은 잘못되었고 새로운 부동산과 재산을 불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한데 그들은 어떻게 집을 사야하는지 몰라서 더 답답하다.


📖 <재활하고 사랑하는>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늦은 오후 무렵 기정에게 톡을 보냈다. 크로스 체크를 다시 해보자규. 이번엔 반지가 이니라 말로써 해보자고. P250

무엇때문에 업무에 모든 것을 헌신한다는 듯 다 태워버릴
듯 집중하고 쥐어짜지만 그만큼 내가 소진되고 있다는 것은 늘 무언가 잘못되고 건강이 이상이 생겨야만 깨닫지.


📖<그는 매미를 먹었다>

어쩌면 그의 가게에만 투명 망토가 씌워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환히 빛나는 가게를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다. P270

소상공인의 슬픔. 권리금을 주고 가도 가게 장사가 되지 않으면 날리는 것. 한 여름의 발악하는 매미를 삼켜서라도 여름의 비수기가 사라졌음 했을까. 남자는 날개를 떼어 입속에 매미를 먹으면서까지 매미 울음소리에만 갇힌 듯하다.


📖<현서의 그림자>

놀라지 말고 들어. 너는……외계인이야. P290

외계인은 그림자가 무지개색인 것으로 구분한다. 어딘가 존재할 것 같지만 뜬금없는 외계인 이야기이지만 재미있다. 누구보다 삶에 충실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선 신께 기도하기도 하는데 어려움을 딛고 이겨내게 되면 독실한 신자가 되는 것처럼 현서 아빠에게는 외계인이라는 존재가 현서를 살려냈을 것이라 믿으며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보냈던 것같다. 그런 아빠의 자신을 향한 사랑이 믿음을 함께한다고 현서도 믿으며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사는 것이겠지.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

젊음.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K는 이미 타임캡슐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적은 단어를 그는 정확히 기억했다. 하지만 그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K와 같은 나이였으므로 그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줄 수 없었다. 우리에게 그 단어는 가장 불가해한 것이었다. P317


왜 하는지 모르고 친구와 우르르 몰려다니며 젊다는 그 기운을 발산하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가장 이해가 잘 안되는 소설이었지만 아마도 젊음 그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그 가장 좋은 시절에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 의미없이 행한 행동들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 자동차 가속페달처럼 그냥 달려가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는 기억밖엔.

#이서수 #젊은근희의행진 #서수터즈 #소설추천 #신간추천 #은행나무

❤︎ ‘은행나무’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없나. 꿈과 돈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언니도 알았다. 꿈을 제대로 이루거나 완전히 버려야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 P98

그러니까 언니,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야.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 탓이야. 사소한 나를 구독해주는
구독자 탓이야.
언니, 관종이 되려면 관종으로 불리는 걸 참고 견뎌야 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언니는 모르지? 한 가지 더 언니가 모르는 게 있어. 관종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걸 왜 모를까. 왜겠어. 언니가 꼰대라서 그런 거지 - P158

한동안 술잔만 비워내던 언니가 말했다. 선생님, 청춘이 아름다운 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세상을 시시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시기가 지나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공포로 다가와요. 제가 지금 그래요. 모든 게 공포예요.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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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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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장편소설

김선형 옮김

살림 출판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원에 온 듯 묘사가 생생했다. 가본 적 없는 습지의 풍경을 내 머릿속에서 스케치되느라 바빴다. 때로는 초록으로 때로는 회색빛으로 카멜레온처럼 카야의 바라보는 시점들이 영사기로 화면을 비춘 듯 기분마저 그곳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카야의 거대한 자연 속 습지 생활들은 멋진 풍경들과는 대비된다. 가정폭력이 난무하고 고아나 다름없는 아동방임 수준으로 성장하는데,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가출로 조디와 카야만 남았지만 결국 조디도 아버지 폭력을 견디지 못해 카야만 남겨두고 떠난다. 하지만 카야는 일곱 살 연약한 여자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홀로 습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홍합을 캐서 팔며 생활했고, 본능에 끌려 믿고 버림받고 또 기대하고 배반당하지만 자연을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밀리언셀러, 페이지터너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가난, 인종과 계급차별, 여성의 독립에 대해서 카야의 삶을 통해 이야기 한다. 습지에 고립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새와 바다를 친구삼아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은 희망적이면서도 외로움을 품어주는 한결같은 자연에 의지하는 쓸쓸함을 보여주었다.

 

카야는 너무 세상을 모르는 순수한 어린 여자 아이이기에 매혹적인 것 같다. 물욕과 인위적인 향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욕심없이 자신 주변의 자연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어여쁜 타잔과도 같은 삶. 우리가 가져보지 못했고 알 수 없는 세계이기에 체이스와 테이트가 카야에게 끌리듯 같은 마음이었지 않을까.

 

어긋나기만 하는 테이트와의 러브스토리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라기도 하고, 욕정대상으로만 삼은 체이스가 죽으면서 속 시원하기도 했다. 우리와 다르다고 편견을 가지고 소외시켜버리고 돌보지 않은, 살인죄로 법정에 서야하는 카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배심원들과 판사에게 닿아 카야가 원래 있어야 할 습지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카야가 세상으로 나와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기는 커녕 습지 소녀로 단정 지어 바라보았기 때문에 무죄로 풀려나면서 경계 밖에서 가십거리 소녀로만 보았던 옹졸했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지기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 밑줄 긋기

 

몇 마리가 발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빵을 쪼아 먹는 바람에 카야는 간지러워 웃음을 터뜨렸지만, 잠시 후엔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급기야 목구멍 너머 딱딱한 명치에서 꺽꺽 흐느낌이 비어져 나오고 말았다. 우유갑이 비자 카야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갈매기들마저 그녀를 버리고 떠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 도저히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P45

 

마음 깊은 곳에서, 카야는 자기 역시 체이스에게 해변의 예술작품 같은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모래밭에 휙 던져버릴 신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존재. 그러나 카야는 계속 걸었다. 사랑에는 이미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지금은 그저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을 뿐이었다. 심장에 울타리를 쌓되 외로움을 덜고 싶었다. P200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P264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P267



 

 

어떤 이들은 마시 걸은 반인 반늑대라고 속삭였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사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안광을 발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저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유기되어 혼자 늪에서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며 살아남은 어린 소녀를, 우리는 돕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하나뿐인 친구 점핑을 제외하면 우리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 어떤 집단도 그녀에게 음식이나 옷가지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녀에게 늪지 쓰레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거부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우리가 일원으로 받아주었다면, 지금 그녀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P420-421

 

 

 

#가재가노래하는곳 #델리아오언스 #장편소설 #살림 #김선형 #성장소설 #러브스토리 #살인미스터리 #법정스릴러 #페이지터너 #밀리언셀러 #책추천 #읽을만한책 #책스타그램 #서평 #내돈내산

몇 마리가 발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빵을 쪼아 먹는 바람에 카야는 간지러워 웃음을 터뜨렸지만, 잠시 후엔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고, 급기야 목구멍 너머 딱딱한 명치에서 꺽꺽 흐느낌이 비어져 나오고 말았다. 우유갑이 비자 카야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갈매기들마저 그녀를 버리고 떠날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 도저히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P45

마음 깊은 곳에서, 카야는 자기 역시 체이스에게 해변의 예술작품 같은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모래밭에 휙 던져버릴 신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존재. 그러나 카야는 계속 걸었다. 사랑에는 이미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지금은 그저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을 뿐이었다. 심장에 울타리를 쌓되 외로움을 덜고 싶었다. - P200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 P264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 P267

어떤 이들은 마시 걸은 반인 반늑대라고 속삭였고,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사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안광을 발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저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유기되어 혼자 늪에서 배고픔과 추위와 싸우며 살아남은 어린 소녀를, 우리는 돕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하나뿐인 친구 점핑을 제외하면 우리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 어떤 집단도 그녀에게 음식이나 옷가지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녀에게 늪지 쓰레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거부했습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우리가 일원으로 받아주었다면, 지금 그녀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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