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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연작소설집
래빗홀 출판
「저주토끼」로 22년 부커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가 살고 있는 포항바다 도시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가족과 이웃들의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해양생물체들을 주제로 한 첫 SF연작소설이다. 힘들고 지치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사랑이 베이스에 깔려있다. 고통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감정을 귀하게 느끼게 해주는 소설♥
시간강사의 불안정한 고용과 교수가 되기위한 을의 눈물겨운 노력들.
외국계회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 해고.
적의 수중 무기 탐지용이 되버린 벨루가흰고래.
북한이 바다에 쏘는 미사일로 이유없이 죽는 해양 생물들.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로 생태계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
분명 SF이지만 장애, 노동, 기후, 생태 등 의 엮인 상황들은 현실이었기 때문에 마냥 웃을 수 없다.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 이야기에서 작가는 함께 어우르며 항복하지말고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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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전쟁의 기본은 피아 구분이고 그런 관점에서 위원장님은 완전한 나의 아군이었다. 학교 측이 나를 몰상식하게 대하거나 강사로서 일하다가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하소연하면 위원장님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현실적인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했다. P21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이 제정되면서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났고 노조가 형성되어 농성을 벌이는 중 위원장님(이제 남편이 된)은 말하는 대형문어를 보고, 먹었다는 이유로 검은 정장을 입은 자들은 해양정보과라는 건물 밀실로 납치하다시피 위원장님과 나를 차에 태워 끌고 가서 질문을 쏟아낸다.
예전 저주 토끼에서도 머리카락이 물을 내려도 나오고 나오고 나와 같은 형체가 되는 모습이 기괴하다 느꼈는데 일반 문어가 아닌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생물체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의 등장은 시작부터 독특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학생들의 온라인 강의와 동영상 컨텐츠가 준비가 되지 않았던 학교에 비싼등록금을 내고 제대로 된 수업을 듣지 못한다며 등록금반환 요구를 하던 그 사건들. 짤린 강사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들을 봉고차에 태워간 이유가 일반 해양생물이 아닌 문어의 출연 때문이 아니라 불합리한 고용과 사각지대 놓인 강사들의 농성때문에 괜한 시끄러움이 싫은 정부에서 잡혀간 것 같았을까.
🦀대게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질 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끌려 나가 사라지더라도 어쨌든 끝까지 고개를 높이 들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인간을 위해서든, 난데없이 등장한 대게를 위해서든 말이다. P69
죽도시장에서 러시아에서 온 대게가 말을 건다. 도와달라고. 집에 데리고 왔더니 얼씨구 대게가 사람이 먹으려고 사온 새우, 생선, 홍게, 꽃게 도 먹어치운다. 대게는 러시아연방정부에서 일본을 잇는 동해 깊은 바다 속 가스관 건설을 하는데 자신들이 그 일을 하다 동료의 죽음, 자신은 납치되어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며 토로한다. (대게한테 술 한잔을 권하는 어머님도 참 ㅋㅋ)
남편은 대게에게 조직화를 조언하고,, (1인 시위를 해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권력들에게 조직으로 뜻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대응을 할 수 있는 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기에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인간들은 생물도 인간도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버려진다. 다리 속 칩을 위해 다리를 떼주는 것으로 결말은 되었지만.
🦈상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잠을 자는 모습은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그런 남편을 살리고자 신약개발회사의 명함을 받고 포항죽도시장 망한 돔배기 가게로 찾아간다. 가게 수족관 안에는 상어, 대게, 문어 등이 실험대상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해양생물들은 이들이 사기꾼들이라 말한다. 검정양복사람들이 찾아와 사기꾼들을 쫓으면서 다행히 사기는 당하지 않지만 정치계 인물들이 투자한 신약개발 사기극이라는 것이 드러나며 국민을 대상으로, 그것도 진짜 아픈 사람을 상대로 한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들은 죄가 없다는 듯 당당하다. 이번에도 자신들을 해하려한 인간들임에도 해양생물들은 돕는다.
경상도에서는 제사상에 돔배기 고기, 상어 고기를 올린다. 시대가 변하고 제사를 지내는 집도, 상어 고기를 올리는 집도 줄어들니 비싼 상어 고기를 취급하는 돔배기 가게도 장사가 안되어 망했던 것 아닐까. 이렇게 먹이사슬의 최종단계인 상어를 보호하기는커녕 신약개발이 성공했다면 인간의 욕심을 위해 해양생물들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개복치
잠수함을 타고 내려간 곳에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등장한다. 아빠도 알고 있었던 걸까. 선우는 잠수함의 또 다른 비밀공간을 통해 아주 특별한 바닷속 체험을 한다. 개복치를 가까이에서 보기도 하고 돌고래가 개복치를 장난으로 치면 뒤집어지는데 덩치가 큰 개복치는 싸우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한다. 크니까 싸우지 않는다는 아빠 말에 어떤 방식이 싸우지 않는 건지 선우는 생각한다.
🪼해파리
🔖8년 복직 투쟁의 구심점을 몰래 따돌리고 동지애를 정규직과 맞바꾸라는 제안을 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우 원색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작가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고려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 답변을 순화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치아라 마”로 요약할 수 있다. P186
구미는 국가산업단지가 있어 더 다른 지역보다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협과 생계의 무계 앞에 근심과 두려움에 잠겨야 했는데 외국계회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 해고로 싸우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하늘을 날아가던 거대한 해파리 꿈을 꾸고난 후, 해파리에 쏘인듯 발이 퉁퉁 부었다. 이제 지긋지긋하다못해 익숙해진 검은정장은 또 심문한다. 귀신이 된 해파리가 꿈에서 촉수를 쏘면 실제로 아픈가에 대한 수수께끼.
적의 수중 무기 탐지용이 되버린 벨루가흰고래. 북한이 바다에 쏘는 미사일.
🔖그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머리 위로 느닷없이 떨어지는 미사일과 포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P207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자신들의 삶을 빼앗기고 위기에 처한 해양 생물들. 그런 고민을 이어가기 무섭게 일본이 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진짜 킹 받는 소식이다.
🔖죽음과 삶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인간의 소멸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P208
🐳고래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구룡포에 간다. P217
작가는 글을 쓰는게 아닌 (순화된 말인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말고) ‘원전 폐수 해양 투기 반대’ 행진을 하고 있었다. 시간강사, 노동자, 환경운동. 싸움 꾼 들 같지만 무력시위따위가 아니라 처절하게 삶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분개하며 자동반사처럼 그들과 한편이 되어 운동을 하는.
작가의 지구에 대한 마음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위한 몸부림이. 사랑하며 사는 삶이. 멋있다.
SF소설이지만 현실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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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빗홀’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전쟁의 기본은 피아 구분이고 그런 관점에서 위원장님은 완전한 나의 아군이었다. 학교 측이 나를 몰상식하게 대하거나 강사로서 일하다가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하소연하면 위원장님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현실적인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했다. P21 문어 - P21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질 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끌려 나가 사라지더라도 어쨌든 끝까지 고개를 높이 들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인간을 위해서든, 난데없이 등장한 대게를 위해서든 말이다. P69 대게 - P69
8년 복직 투쟁의 구심점을 몰래 따돌리고 동지애를 정규직과 맞바꾸라는 제안을 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우 원색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작가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고려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 답변을 순화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치아라 마"로 요약할 수 있다. P186 해파리 - P186
그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머리 위로 느닷없이 떨어지는 미사일과 포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P207 해파리 - P207
죽음과 삶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인간의 소멸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에게는 진정 자유로운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P208 해파리 - P208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구룡포에 간다. P217 고래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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