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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개정판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4월
평점 :
<경제성장이 멈추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이반 옮김, 녹색평론사, 2008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는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온실가스 농도는 더욱
증가했다. 지구온난화는 기후위기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존과 같은 성장 담론으로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존과 같은 성장 담론에 ‘그린’을 담으려
한다.
<경제성장이
멈추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일본 쓰다 대학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가 2000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책으로, 국내에는 2002년 녹색평론사에서 번역 출간했다. 20여년 전 노교수는 인간활동에
의해 초래된 기후변화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타닉호와 같다고 지적했다.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갇혀 빙산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고 있으니 엔진을 멈추고 방향을 전환해야 침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타닉호 안에서는 바다도 빙산도 보이지 않으니, 목적지를 향해
계속 가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타이타닉호가 떠있는 바다에는 엄연히 빙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저 타이타닉호(…) 오늘날 이 지구라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선내방송에서 몇번이나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어왔습니다. 그 말이 진부할 정도로, 더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마침내 빙산에 부딪힐 거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 빙산은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현실적인 얘기라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귀에는
들어와도 그것은 아직 볼 수는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은 타이타닉호라는 배뿐입니다.(…)
타이타닉호의 바깥에는 바다가 있고, 빙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경제의 바깥에는 자연환경이 있습니다.(16~18쪽)
‘타이타닉
현실주의’, 타이타닉호 안에서 보이는 것만을 ‘현실’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타이타닉호도 바다에 떠 있다는 ‘현실’을 일깨워 준다. 경제발전이라는 ‘현실’도 결국은 자연생태계 안에 존재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일깨워 준다.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주의자, 꿈을 꾸고 있는 사람, 낭만주의자,
상아탑 속의 사람이라고 불려지고, 현상을 그대로 계속할 것을 말하는 사람이 ‘현실주의자가’됩니다.(16쪽)
21세기를 위한 ‘진정한 현실주의자’가 이 책의
중심적 테마입니다.(19~20쪽)
타이타닉 현실주의와 같은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었다”는 것을 정치학에서는 “패권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현실처럼 보입니다.(…) 패권을 잡고 ‘상식’이 된다는 것과 그 상식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20세기, 특히 20세기 후반에는(…) 정치경제론이 세계적인 패권을 잡고, ‘상식’이 됐습니다.(…)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경제시스템이 세계 구석구석까지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1945년까지는 ‘제국주의’라
불렀고, 1946년경부터는 ‘경제발전’이라 불렀고, 현재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즉 세계화라 부르고 있습니다.(159~160쪽)
최근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는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이미 1도씨
상승했다고 밝혔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1.5도씨까지 불과
0.5도씨 남았고,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2040년에 1.5도씨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존 5차 보고서에 비해 10년
앞당겨진 것으로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해서 딜레마는 현재의
지구기온 상승은 선진국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발전에서 기인하지만, 피해는 인류가 공동으로 함께 입는다. 후진국의 빈곤 탈출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필수적이고 친환경 기술이 없으니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발전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진국이 보유한 친환경 기술을 활용하거나 이전함으로써 온실가스 흡수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권적 측면에서 지속가능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업은
지속가능경영이, 투자자는 재무 성과 뿐만 아니라 환경,사회를
고려한 ESG 투자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발전으로 빈곤은 해소되지 않는다’(90쪽)이라 이야기한다. ‘경제발전은 이데올로기’이며 ‘착취하기 쉬운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경제발전의 정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을 생산수단인 노동자로 만들고, 인간을 소비수단인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 경제발전이라 이야기한다.
경제발전으로 빈곤은 해소되지 않는다.(90쪽)
나는 경제발전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60쪽)
예로부터 전해져온 한 문화가 눈앞에서 파괴되고, 조상으로부터 전해져온 기술이 없어지고, 음악이 없어지고, 말이 없어집니다. 그것을 보고 ‘발전’이라 부릅니다.(77쪽)
착취하기 쉬운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경제발전의 정체입니다.(…) 인간을 노동자로 만드는 것,(…) 인간을 소비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노동자나 소비자가 되게 하는 게 경제발전입니다.(90~91쪽)
사물을 보는 사고방식에서 우리는 과거의 경제발전에서 크게 두가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간을 ‘인재(人才)’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재가 된다는 것은 인간을 생산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하나는
소비자, 즉 사람을 소비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106~107쪽)
‘스모키 마운틴’은 마닐라의 모든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최근까지 수천명이 거기서 살고 있었습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다른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 것인데, 이것은 수십년 전에는
없었던 첨단기술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우 근대적으로 ‘발전돼서’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분명히 그들은 가난하지만 발전이 안돼
있기 때문에 가난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제3세계 또는 ‘남’의 국가는 ‘발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발전되어’ 그렇게 됐습니다.(81쪽)
저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아닌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를
추진하자고 이야기한다. 지속가능발전이 이제까지 그대로의 발전이라면 대항발전은 기존의 경제성장을 줄이고, 문화 등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
‘지속가능한 발전’(은)(…) 무엇을 지속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냐 하면 물론 이제까지 그대로의 발전입니다. (…) ‘대항발전’이란 말에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의 ‘발전’의 의미, 곧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 대항발전의 첫째 목표는 곧 ‘줄이는 발전’입니다.(…) 두번째 목표는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는 겁니다.(100쪽)
사람이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문화’를 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화를 창조한다.(111쪽)
경제성장에 기반한 ‘지속가능발전’ 담론이 여전히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거주불능 지구에서는 경제성장이 더 이상 상식을 수 없다. ‘지속거주
지구’를 위해서는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면한 문제다. 빙산을 향해 계속 달려갈 이유가 없다. 방향을 돌리기 어렵다면 엔진을
끄고 멈춰서기라도 해야한다. ‘경제성장이 안되도 우리는 풍요로울 수 있다’, ‘경제성장을 지속하면 우리는 절멸하게 된다’.
이제 경제성장을 계속할 것인가 말것인가. 자연환경을
파괴하더라도 어쨌든 경제성장을 계속할 것인가, 혹은 제로성장으로 경제성장을 멈추고 이제부터는 자연환경을
지키거나 자연을 돌보는 정책을 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 그것은 미리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선택하는 것입니다.(143쪽)
오늘의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오늘의
상식은 비상식이 되는, 그런 전환이 반드시 일어납니다.(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