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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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창비, 2021


6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하나뿐인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공동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한 1972‘UN 인간환경회의개막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이후로 환경 보호라는 외침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반응은 시큰둥했다.


40여 년의 외침 끝에 기후위기는 인간에 의해 발생한 것이 명백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국제사회는 파리기후변화 협약을 체결했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있고, 바다에 부유하는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의 먹이사슬을 따라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경고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코로나19 펜데믹은 고도의 문명을 발달시킨 인류도 자연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을 일깨웠다.


최근 이러한 일련의 변화로 이제는 반드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필환경 시대라 이야기한다. 필환경 시대라는 외침이 환경 보호가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의 외침이 아님을 일깨우고 있고, 기후위기 대응, 탈플라스틱 등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구호와 다짐은 넘쳐나지만 유의미한 변화와 실천은 보이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자연 방식으로 돼지를 기른 귀촌인의 귀촌 에세이이자, 공장식 축산의 민낯을 깨닫고 시도한 자연양돈 도전기이다. 1부 공장과 농장 사이는 저자가 귀촌을 하고 자연돼지 농장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이제 도시든 농촌이든 돼지를 기르는 집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돼지를 키우는 이야기는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자연양돈을 위한 저자의 눈물나는노력은 감히돼지를 키우고자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여 줄 안내서 같이 느껴졌다. 돼지들의 마음을 독심술로 파악해 전달하는 문제와 상황을 묘사한 삽화는 마치 웹툰을 읽는 것과 같았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한 것과 같이 돼지 키우기를 책장 넘어로 보고 있는 나에겐 희극으로 느껴졌다. 때로는 낭만적으로도 느껴졌다. 2장 생명과 고기 사이는 상품화된 고기 이전에 생명이었음을 일깨우고 있어 더 이상 희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가 직접 도축해야만 돼지를 먹을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고기의 이면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3분 요리처럼 띵동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186)


대량의 고기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명분은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지구 환경과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민낯을 일깨운다. ‘윤리적 도축’, ‘동물복지라는 말들이 정작 동물의 기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인간 중심의 생색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프레이밍에 갇힌 사고의 틀을 깨준다.


윤리적 도축이라는 말이 있다. 도축에 윤리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윤리적으로 죽인다니, 대체 무슨 말이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죽는 마당에 예의가 무슨 소용인가. ‘동물복지도 결국 사람 중심의 생색은 아닐까?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자기위안 말이다. 그렇다고 산업식이 아닌 방법으로, 예컨대 망치로 돼지를 잡는다고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게 아니었다. 성스러운 행위도 아니며, 천사들이 내려와 죄를 사해주지도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책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139)


기술 발전이 상황을 해결해줄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업계는 발전하는 기술을 가축을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는 쪽으로 써왔다. 정책을 통해 식품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행정 당국은 물가 안정경제 활성화라는 구호 뒤로 숨는다. 잦은 전염병 발생과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항생제 내상 박테리아. 이 불길한 만남을 막을 수 있을까. 그로 인한 재앙은 자연스러운 순서인지도 모른다.(171)


저자는 돼지를 기르면서 결국 채식주의자가 되었지만, 고기를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식 축산의 본모습을 제대로 인식하고, 선호 부위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공장식 축산을 줄이고 자연식 축산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식 축산이 늘면 사료용 곡물 생산도 줄일 수 있고, 사료용 곡물 재배를 위한 열대우림 훼손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먹을 수 없는 것과 먹지 않는 부산물을 활용해 가축을 길러왔다. 생태계가 감당하는 만큼 가축을 길렀다. 지금은 더 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 자연이 스스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자원을 쓰고, 그만큼의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161)


사람들은 완전한 변화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은 선택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자연 양돈 방식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돼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마블링 없는 3등급 소고기를 먹는다면 옥수수 생산을 줄일 수 있다. 옥수수가 줄면 죽음의 해역을 좁힐 수 있고,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을 지킬 수 있다. 고기 섭취량을 줄인다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으로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다.(163)


자연양돈계에 문제가 있다면, 가격보다는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소비자가 최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한때 고기를 열심히 사 먹던 나와 주변 친구들도 결국에는 채식을 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181)


필환경 시대인 만큼 누구나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다만 에코 파시즘은 경계해야 한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쫓거나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희생양 삼아선 안된다. 공장식 축산이 문제의 근원이기에 육식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배척하는 것은 본인 감정은 달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축과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은 육식 자체를 죄악시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죄책감은 대체로 반감을 불렀고, 현실을 더 외면하게 만들기도 했다. 죄의식은 나쁜 상황을 존치하는 효능이 있었다. 이분법은 중간 없는 평생선을 만들었다. 축사에 사는 가축의 환경, 축사 주변에 사는 인간의 환경에 대한 논의는 육식주의자들이 고기를 먹기 위한 변명처럼 여겨졌다.(155~156)


생명을 거두는 일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식탁 위에서는 고기지만, 그 전 단계인 사체를 손질하는 과정이 유쾌하지는 않다.() 내 손으로 직접 동물을 잡아보니 생명을 죽이는 꺼림칙함도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을 위한 게 아니라 신성한 존재를 위해 죽인다는 위안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써 말이다.(151)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읽기 전과 읽은 후, 식탁 위의 고기가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육식을 끊고 채식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로로 왔을지 짚어보게 되고, 먹는 양도 줄이게 됐다. 환경을 위한 실천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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