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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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다산책방, 2021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시간이 지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곤 한다. 짬뽕을 먹느냐, 짜장면을 먹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탕수육이냐 깐풍기냐도 선택이다. 하지만 배 고픈 상황에서 눈 앞에 주어진 밥을 먹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지가 없는 선택, 강요된 선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지가 없음에도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의 문제다.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기는 쉽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바보같이 어려운 일인지 잊어버린 사람이 아닌 이상, 남들을 바보로 단정하지는 못한다(15)


<불안한 사람들>의 은행강도가 인질범이 되기까지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15)


은행강도는 스키마스크를 쓰고 한 손에 권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간다. 직원에게 총을 겨누고 6500크로네(120만원)을 요구한다. 직원은 요구 금액도 어의 없지만, ‘현금 없는 은행을 털러 온 은행강도도 어이 없어 한다. 당황하긴 은행강도도 마찬가지다.


은행강도는 경찰이 출동하자 겁에 질려 길을 건넜고 맨 처음 눈에 들어온 문을 열고 도망쳤다. 출구라고는 없는 계단과 연결된 문이라 계단을 올라가는 것 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었다. 꼭대기 층에 다다르고 보니 한 아파트 문이 열려 있기에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구경하러 온 잠재 고객들로 버글거린다. 그 중 누군가가 은행강도를 발견하고 강도야라고 외쳤다. 그렇게 은행강도는 인질범이 되었다.


그럼, 은행강도가 되기 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남편이 직장상사와 바람난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아이들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이혼하기로 하고 집을 나온다.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이혼 소송 중 집이 없으면 두 딸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월세 6500크로네(120만원)을 구하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월급은 다음 달에 준다고 한다. 은행에 가서 대출 신청을 한다. 임시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임시로 거처하던 곳에서 장난감 권총을 발견한다. 그걸 들고 근처 은행을 간다. 6500크로네를 얻어 월세를 내고, 아이들을 지키고, 다음 달에 월급을 받으면 이자까지 쳐서 갚으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은행강도가 되었다.


은행 강도, 인질극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순순히 소중한 것을 빼앗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돈이 필요한 사연을 귀담아 듣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강요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이건 은행 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151)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진실을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리와 바보들과 인질극과 오픈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여러 편의 사랑 이야기다.(309)


<불안한 사람들>은 은행강도 이야기, 인질극 이야기가 다는 아니다. 집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오픈 하우스이야기이고, 인질범들이 간직한 사랑 이야기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바보들의 이야기이다. 은행강도, 인질, 경찰, 상담심리사 등 등장인물 모두는 불안한 사람들이다. 불안한 이들을 보며 나는 불안하지 않다고 안도하고, 이들의 바보스런 말과 행동에 미소 짓지만, 정작 불안한 사람은 나이고, ‘바보도 나임을 깨닫게 된다.


어깨가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어렸을 때는 그 위에 앉아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나이를 먹으면 그걸 밟고 서서 구름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그리고 가끔 휘청거리고 불안해지면 거기에 기댈 수 있게. (46)


아들들은 절대 알아차릴 수 없고 아버지들은 부끄러워서 절대 실토하지 못하는 것이 이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기의 꿈을 좇거나 우리와 나란히 걸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아이들과 나란히 걷고 아이들은 우리의 꿈을 좇아주길 바란다.(57)


어쩌다은행강도와 어쩌다인질범들이 털어놓는 가족과 연인, 이웃과 직장 동료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도록 한다. <불안한 사람들>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세상에서 사람 만큼 소중한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심지어 사람조차 바꿀 수 없을 때도 많지. 조금씩 천천히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 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292~293)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정박하려고 만든게 아니잘 모르겠다는 데서 출발‘‘꼬끼리도 천천히 먹으면 다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꽤 멋지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항구에 머무는 배는 안전하지만 배가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잖니.”(301)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그럼 앞으로 뭘 하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도 좋죠.”
(456
)


꼬끼리를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조금씩 천천히요.”
(292
)


<불안한 사람들>'은행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 이야기이며, 목적지가 불확실한 미래의 바다로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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