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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것들
사과집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4월
평점 :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사과집 지음, 상상출판, 2021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는
제목과 달리 저자만의 방식으로 갑자기 떠난 아빠를 위한 애도서이자, 읽는 독자에게도 떠난 이를 애도하도록
이끄는 안내서이다. 20여년 전 떠난 아버지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는데,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를 통해 다시금 아버지와 함께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갑자기 곁을 떠난 가족을 애도하고 슬픔을 추스리기에는 3일의
장례식은 너무 짧다. 예고 없이 떠난 가족을 3일의 장례로
애도하며 보낸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빈소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장례절차와 장례방법을 정하고, 문상객을 맞이한다. 대부분은 준비 안된 이별이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장례식장에서 권하는 데로, 주변에서 권하는 데로 따른다.
여태껏 궁금해한 적도 없던 질문이
아빠가 떠나고서야 치솟는다. 죽은 사람의 방을 정리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사용기한이 만료된 질문과 수없이 마주하는 일.(63쪽)
장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애도하게 된다. 일상의 순간마다 빈자리를 마주하고, 가족이 함께 있을 때에도 빈자리가
느껴진다. 좋은 기억으로 추억될 때, 나쁜 기억마저 좋은
추억으로 회상될 때,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더 많이 떠오를 때, 함께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해서 이제 영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각자 망자에
대한 회한이 있어 내 슬픔을 꺼내 이야기하면 다른 가족에게 상처가 될까봐 꺼내 놓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아빠’의
애도에만 국한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빠’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돌아보고, 장례절차와 장례식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우리의 죽음을 돌아보게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삶을 준비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죽음을 준비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음을 일깨운다.
결혼식과 장례식, 자녀의 결혼식은 부모를 위해 필요하고, 부모의 장례식은 자식에게나
유의미하다. 의례에 참석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관습에 대해,
그럼에도 수없이 진행되는 허례허식에 대해, 만나고 살고 죽는 삶의 굴레에 대해 무의미함을
느낀다.(123쪽)
오늘날, 사후 가난의 불평등은 더 복잡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심화되고 있다 .가난한
자의 존엄은 과거에는 ‘몸’의 형태로, 미래에는 ‘데이터’의
형태로 저당 잡힌 셈이다. 빈자는 죽어서도 손쉽게 삶이 부검된다. 가난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이유다.(160~161쪽)
운이 좋아서, 회사가 선심을 써줘서, ‘어쩌다가’
해결된 문제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주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그게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당사자들의 ‘자기 탓’이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회사와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사람들. 쉽게 내 무능력을 탓하고, 죄책감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근로자들. 이곳마저 다니지 못하게 될까 봐, 나의 일상을
무사히 지켜내지 못하게 될까 봐, 그 불안 때문이었다.(73~74쪽)
내가 바라는 것은 유머러스한 태도의
삶이다. 삶의 패러독스를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는 삶에 대한 애정, 혼자서만 잘 먹고 잘살지 않겠다는 다짐, 같이 웃고 떠드는 연대, 가볍게 보일지라도 누구보다 삶을 진지하게 숙고하는 태도. 그런 태도라면
죽음도 얼마든지 즐거운 유머의 소재가 될 수 있다.(180쪽)
지금까지의 삶이 마지막 순간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맹신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회한이 남지 않도록 준비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할까 말까 망설이며 하지 못한 일들도 새롭게 시도하고, 나 스스로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자고 다짐한다.
가족이나 지인을 떠나 보내고 아직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를 꺼내 읽기를 권한다. 나와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를 읽으며 애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