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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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사무사책방, 2021


 

문과생이라 죄송하다며 문송하다고 이야기한다. 겸손함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로 죄송해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개인의 겸손을 집단의 겸손으로 대치함으로써 한 집단 전체를 폄훼하는 것이다. 특정 집단이라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읊조리는 본인의 이과에 대한 무지를 집단의 무지에 은폐하는 기만행위다. 겸손이 아닌 비겁하고 비굴한 행위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우위의 시대에 인간이 기계에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시금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킬 것이기 때문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창의력을 개발해야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건강식품, 보험, 교육 산업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포 마케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두려움을 자양분 삼고 있다.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인문학일 뿐, 인간 존재 자체의 이해는 물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결여되어 있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이해와 행복한 삶을 위한 인문학을 추구할 수 없을까?


 

<만인의 인문학>은 제목 그대로 인문학이 모두의 인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만인의 인문학은 학문으로써 거창한 질문보다는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 목적을 생각하고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문학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에 삶의 인문학이자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이라 강조한다.


 

인문학은 삶의 의미, 가치, 목적을 생각하기, 표현하기, 실천하기이다. 인간은 밥을 먹고 살면서 동시에 자기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만들고 지탱하는 동물이다.(186)


 

근원적 질문을 잊어버린 개인과 사회는 근원적으로 불행하다.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한 의미의 틀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철학적 반성의 순간을 놓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125)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생각대로 산다고 믿고 있다. 지구에서 숨쉬는 우리가 매 순간 공기를 느끼지 못하듯, 현실에 집중할수록 주어진 상황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본 적은 없지만, 지구의 존재를 인식하고, 공기를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처럼, 현실의 상황논리 넘어에 더 큰 가치와 신념이 있음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인문학이 인간의 이야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의 이야기이자,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인문학이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닌, 내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쓰고,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대화라고 느껴진다.


 

이야기 쓰듯 인생을 살기로 할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물과 이야기로 연결되고 대화하고 정을 통하고 서로 대접하며 살 수 있게 된다.() 소통의 확장, 존재의 확장은 사랑의 확장이기도 하다.(33)


 

연결의 능력이 기술을 선행한 것이라면, 그 연결시키기의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인간 특유의 재주이고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인 실로 모든 것을 연결시켜 생각하고, 그 연결로부터 생존의 기술을 발전시켜온 동물이다.(27)


 

글을 잘 쓰는 사람이건 아니건 그의 삶은 근본적으로 이야기의 차원에 있다는 점이다. 영화작가들은 문자 아닌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만화작가들은 그림으로, 조형예술가들은 형태와 색깔로 이야기한다. 또 굳이 이런 표현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꾼이다. 삶은 이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29~30)


 

개인은 집단신화 속에 태어나 그 집단의 이야기에 맞추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임무를 부여받으며 그 이야기 속의 한 주인공이 되어서 산다.() 사회가 이야기의 우주라면, 좋은 사회를 만들고 지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떤이야기로 지탱되는 사회인가를 읽어내는 일이다.() 시간을 초월해서 현대인에게도 인간 이해에 필수적인 이런 통찰의 깊이에 도달하는 것이 신화 읽기의 세 번째 방법이다.(92~93)

 

 

인간에 대한 이해는 나에 대한 이해이자,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라는 점에서 인문학은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내가 잃어버린 가치와 신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기후변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당면한 문제임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은 나 하나의 노력으로 변하지 않음을 주장하거나, 나 하나쯤이야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래 세대를 인식하지 못하고 눈앞에 당면한 현실논리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인류멸종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 하나의 노력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나 하나는 변한다는 것을 안다.


 

인식의 부패의식의 부패를 청산할 필요가 있다. “사람 밑에 사람 있고, 돈 밑에 사람 있고, 권력 밑에 사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식의 부패다. 그리고 그 부패를 당연지사로 여기는 것이 의식의 부패다.(147)


 

프란치스코 교황, <찬미받으소서>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경제가 기술의 효율성 위주 퍠패러다임의 명령에 종속되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정치와 경제는 인류의 공동선이라는 관점에서 지상의 모든 생명을 위해, 특히 인간의 삶과 생명을 위해 솔직한 대화에 돌입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 앞에 놓여 있다.”(239~240)


 

우리는 지금 자라고 있는 세대, 우리 다음에 올 세대에 대체 어떤 세계를 남겨주고자 하는가?”
인간은 왜 이 지구에 있는가? 이 지상에서의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지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목표는 무엇이며 우리가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지구에 인간이 필요한다?”
(240
)


 

<만인의 인문학>을 통해 내 삶의 이야기를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최소한 내 삶의 이야기 주제는 다채로울 것이다.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색깔도 다채로워질 것이라 믿는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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