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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집행관들>, 조완선,
다산책방, 2021
1988년 이 땅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사람이 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극복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하루 노역에 5억원을 인정한 ‘황제
노역’이나 허위과장 진단서로 합법적 탈옥이 가능한 ‘병 보석’,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3.5법’ 등은 30여 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어느 정치인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명에게 평등하다’며 법이 공정하지 않음을 비꼬았다.
‘법치주의’를
부르짖으며 ‘엄벌’을 강조하던 정권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국회에서 ‘빠루’를
들고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고도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법치’는 가진 자에게는 관대하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하다.
나라를 거덜낸 종자들이 제 잇속만 채워도, 그들이
특별사면을 통해 면죄부를 받아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자신에게는 인간쓰레기를 단죄할 권한이, 그들을 응징할 수단이 없었다. 기껏해야 좀 더 자극적인 어휘를 골라
칼럼을 끼적대는 게 전부였다. 그것이 자신만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167쪽)
<집행관들>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 위에서 군림하고, 법이 특별히 보호하는 ‘만명’에게
사적제제를 가하는 ‘집행관들’의 이갸기이다. 첫 번째 타겟은 친일 경찰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해방 이후에도
처벌 받지 않고 경찰로 근무하며, 아흔이 넘는 여생을 편안히 살아온 ‘노창룡’이다. 그는 가명으로 ‘김덕술’을 썼다. ‘노창룡’과
‘김덕술’은 소설 속 인물이지만, 대표적 친일파 ‘노덕술’과
‘김창룡’이라는 실존 인물을 떠 올리게 한다.
집행관들은 CCTV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노창룡’을 납치해 독립운동가에게 자행한 고문 방법으로 살해한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살던 폐가에서.
두 번째 타겟은 검찰 출신 3선 국회의원으로 ‘숱한 범죄 혐의를 받았지만 기름장어처럼 법망을 빠져나간’ 비리 정치인
‘정영곤’이다. 조선시대에
탐관오리에게는 형벌의 수위가 높았고, 형벌 도구를 관아 앞에 전시해 탐관오리에게 본보기로 삼았다고 한다. 이에 집행관들은 정영곤을 조선시대 형벌로 처형하고 형벌 도구들과 함께 전시한다.
“그래도 살인은 정당화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
전쟁 중에 벌이는 살인 행위는 모두 정당하지 않은가? (…)
"그자들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거야… 꼭 총칼을 들어야 전쟁인가?”
(235쪽)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었다면 범인들과 같은 과격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겠지요.”(…)
"그들을 과격하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검찰,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 법원, 그리고 이들 위에 군림하는 통치권자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241쪽)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지만, 현실의 인물과 정확히 겹쳐 보인다. 1988년의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외침도 들려온다. 각종 부조리한 사건과 ‘법치’를 흔드는 권력 사건들을 보며 분통을 터트리고, 술안주 삼아 씹어대곤
했다. 나 하나의 외침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면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집행관들>은 그 ‘분노’를 다르게 표출하고 있는데, 때로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보다는 ‘공권력’이
단죄하지 못한 공백을 메워준 느낌이다.
“명분 같은 건 필요 없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심장이 주문하는 대로 하면 되지.”
(381쪽)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불의와 맞서다.’
(422쪽)
물론 소설 한 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법치주의’의 근간과 법관의 권위는 높이 솟은 법대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주권자로부터의
신뢰를 잃은 ‘법치주의’는 ‘파쇼’일 뿐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파쇼’ 정권은 오래 유지될 수 없음을 안다. ‘파쇼’는 한 발의 총성으로도 무너질 수 있음을 안다.
‘책장 속에 담긴 분노’는
밖으로 표출되지 않을 것이다. 집행관들의 사적제제에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나 하나가 아닐 것이다. 집행관들의 사적제제에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우리 사회의 법은 공정한지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집행관들>의
사적제제를 멈출 수 있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