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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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은선 지음, arte, 2021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서로에게 애써 맞출 필요가 없다. 아내와 나는 영화 보기와 보드게임을 취미로 즐기는데 서로에게 이 두가지 중 한가지를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지금처럼 극장에 가는 일이 어렵기 전에는 극장 데이트도 많이 했었다. 신작을 보러 극장에 가는 즐거움이 줄어 아쉽지만 대신 요즘엔 '방구석 1'이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즐겨 보며 구작을 찾아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여가 시간의 많은 부분을 영화 감상에 할애하고 있어 영화 전문기자 이은선 작가가 작정하고영화이야기를 풀어낸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_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을 접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영화 속 음식에도 등장하는 이유와 인물의 마음이 존재한다.
이 책에 실은 글들은 영화 속에서 슥 지나쳐간,
혹은 인상적으로 기억되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혹은 음식을 매개로
영화와 내가 속한 세계의 연결을 탐지하려는 시도다.
어떤 글에서는 영화가,
또 다른 글에서는 음식이 중심에 놓인다.
심지어는 나의 개인적 사연이 주가 되어
영화나 음식에 대한 언급은 눈곱만치 등장하는 글도 있다.
급기야 그 모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나라는 인간의 시선과 취향을 통과해야만 했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빼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듯 쓴 글들임은 분명하다. (9~10)


작가가 서문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책을 채운 글들은 작가가 옆에서 말을 걸듯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책에 언급된 영화 대부분을 보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했고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잠깐 책장을 덮고 영화 정보를 찾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셰릴의 여정은 단순히 절망을 더 큰 절망으로
이기려는 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평온함에 취해,
고통으로 점철되어버린 생을 지탱하기 위한
의지를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셰릴은 견뎌낸다.
차가운 죽을 질겅질겅 씹어 목으로 넘기고,
배낭의 무게라는 무뎌지지 않는 고통을 견디며 걷는다.
반복은 지속하게 하는 힘을 만든다.
셰릴은 아마도 그 힘을 믿었을 테고,
덕분에 스스로를 이겨내는 극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셰릴이 먹던 차가운 죽이 생각난다.
동시에 내가 마주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
누리게 될 따뜻하고 간편하고
즉각적인 안락 역시 떠올린다. (54)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와일드'는 주인공 셰릴의 트레킹 여정을 담았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셰릴은 유일한 희망이었던 엄마를 잃고 그녀를 지탱하던 세계가 무너져 버린다.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버티던 그녀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받아들이고 상처를 대면하기 위해 집채 만한 짐을 짊어지고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트레킹을 떠난다. 이은선 작가는 셰릴의 힘겨운 트레킹 여정을 함께하며 그녀가 길 위에서 먹던 차가운 죽을 무언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생각한다고 한다.


영화 이야기와 버무려진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읽으며, 소박하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차린 한상을 비워낸 듯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랬다.책을 다 읽고 나니 나에게 속내를 드러내고 한결 편안하고 가까워진 친구 한 명을 얻는 기분마져 들었다. 영화 또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 보기를 권한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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