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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에픽 #02>, 다산북스,
2021
대학 때 축구를 하다가 오른 손 검지와 중지 사이의 살갗이 찢어져 응급실에 갔다. 처음에는 피가 나더니 시간이 조금 흐르자 피는 멈췄지만, 찢어진
살 사이로 손가락 뼈가 보였다. 빨리 꿰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나는 응급실 침대가 아닌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배정받아 앉아있었다. 제 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응급환자가 아닌 듯 했다. 내 앞을 지나는 의사나 간호사는 어디를 다쳤나며 물었고, 상처 부위를
보여주면 어떻게 여기가 찢어지냐고 신기해하며 그냥 갔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응급실 한 켠에
앉아서 응급실의 무대 위를 관찰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 #02>에 실린 <응급실의 노동자들>은 응급실의 무대 뒤까지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응급실의
노동자들>은 응급실의 분주함에 가려져 눈길이 잘 머물지 않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응급실 의사로 근무하는 작가가 하루 동안 진료한 이야기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간호사, 이송 업무 담당자, 응급실 야간 원무과 직원, 간호조무사, 응급실 청소 노동자의 이야기를 통해 응급실이라는 무대는 물론, 무대
뒤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고,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의 주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가려진 노동에 대한 폄하로
상처 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노동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많은 귀감을 주었다.
자기 정해진 일만 하면 서로 보기가 별로잖아요.
냉정하게 살면 속상해요.
사람 사는 곳인데 서로 옷도 정리해주고 보기 좋게 해줘야죠.
아들이나 손주 같은 선생님들이라 챙겨주고 싶어서
그런 곳들까지 다 청소해요.
그래서 아침에 출근해서 치울 것들이 쌓여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다 이런 일이 있으니까 저 같은 사람도 먹고사는 거 아니겠어요.
- 남궁인 <응급실의 노동자들> (121쪽)
<에픽 #02>는 논픽션 파트와 픽션 파트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지만 읽다 보면 논픽션인지 픽션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픽션과 논픽션은 긍정과 부정과 같이 서로 경계가 명확히 나뉘는 단어인데, 문학작품으로서
픽션과 논픽션은 경계가 명확해 보이지 않아, 이를 구분할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에픽 #02>를 통해 문예지는 어렵다. 비평지는 더 어렵다는 편견을 깰 수 있었다. 독자를 위한 문예지를
만난 듯 하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