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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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강화길 지음, arte, 2020


목차에 <다정한 유전> 하나만 기재되어 있어 장편 소설이라 생각했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집과 밭, 산과 나무, 그러니까 터전이라 부르던 곳. 아들이 아들에게 물려주고, 딸이 딸에게 전해 받은 것을 간직한 해인 마을에서 처음으로 마을을 떠난 한 명과 교통사고를 당하는 나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실종된 지 3년이 지난 김지우의 유작 소설 <옹주>1년 전 발표되며, 김지우의 소설인지 아닌지 논란에 휩싸이고, 나는 병문안을 와준 아이들이 고마운 한편 내가 모르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짜증이 난다.


이제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외로운지, 위로가 필요한지
투덜거릴 수 있게 된 것 같았는데,
영문을 할 수 없는 글 하나를 던져주고 자기들끼리 떠들기만 하다니.(21)


해인 마을을 떠나고 싶어하는 민영은 서울의 대학 진학을 위해 백일장 대회에 나가길 희망하나, 기회는 진영에게 주어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기심으로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에 서툰 민영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진영도 마을을 떠나기 위해 백일장에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영은 민영에게 각자가 글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자고 제안을 한다. 그런데 학교 아이들 모두 글을 쓰겠다고 한다. 모두가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한 것이다.


민영은 요령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걸 요구할 때,
타인을 짜증 나지 않게 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
)
무엇을 얼마나 바라는지, 얼마나 간절한지,
그래서 얼마나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지 전혀 숨기지 못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짜증 나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24)


는 재수술을 위해 병원에 다시 입원했는데, 전날 밤 병원 정원 분수대에서 한 여자가 고개를 처박은 채발견된다. 혹시 지난 달에 같이 입원한 김지우가 아닐까 싶어 직원 출입 구역인 병원 16층에 오른다. 그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그곳에서 마주한 호수.


. 이야기가 이상했다. 화자인 는 해인 마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열아홉살 소녀였는데, 병원에서 만난 스물 여덟의 김지우는 에게 언니라 부른다. 김지우는 몸에 통증이 심할 때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나아진다고 했는데, ‘16층 호수에 몸을 담그니 고통이 사그라진다. ‘는 누구일까 싶었다. ‘는 김지우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 강화길은 작가 노트에서 짧은 소설들이 느슨하게 연결되길 바랐다고 한다. <다정한 유전>은 예닐곱 편의 단편 모음이면서, “느슨하게 연결된 소설이다. 짧은 소설들은 성장 소설,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한 편 한 편 읽어 나갈수록 느슨한 연결로 벌어진 공백을 메우려고 하는데, 읽는 내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공백만 커져간다.


작가 노트를 읽고서야 등장인물의 이름이 같아도 다른 이야기이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달라도 같은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조금은 다른 시대적 배경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다르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김지우’, ‘이선아’, ‘김진영’, ‘김민영이라는 이름이 희소한 이름이 아니라 전국에 몇 십명은 있을 것이고, 이들 중 실제 친구인 사람들도 최소 한두쌍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이는 동시대를 사는 다른 사람의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삶에는 어떤 영향도 없을 거야.
그렇지? 그리고 반대로,
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역시 그 세계에서는 의미가 없겠지.(70)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도,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조금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름과 시공간이 다를 뿐 다른 듯 비슷하게 살아가고, 비슷한 듯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 속에도 담기지 않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다시 허구의 세계를 상상하며 연결하려 애쓴 경험은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제 주관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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