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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 ㅣ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신라 공주 해적전>, 곽재식 지음, 창비, 2020
장보고 사후 15년이 지난 861년. 장보고 무리에서 심부름꾼으로 재물을 모은 주인공 장희는 밑천이 떨어지자 시장에 나가 ‘행해만사’, 무슨 문제든지 말만 하면 다 풀어준다는 뜻’의 깃발을 내걸고 객점을 연다. 이곳에서 한수생을 만난다.
대여섯 집이 모여 사는 산 속 마을에서 살고 있던 한수생은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인도 천국국과
서라벌 구경에 빠져 농사를 게을리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다 한수생을 제외한 모든 마을 사람이 가뭄에
들자, 이들은 한수생의 재물을 탐하고 죽이고자 봉기한다. 이들을
피해 도망가던 중 ‘행해만사’ 깃발을 내건 장희를 만난다.
한수생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와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개미와 베짱이>는 열심히 일하는 다수의 개미와 풍류를 즐기는
베짱이 하나라면, 한수생의 마을은 열심히 농사짓는 한수생과 풍류를 즐기는 다수의 마을 사람이라는 구조가
다르고, 해피앤딩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 한 구절, 성현의 말 한마디를 모르면서 먹을 거리 걱정이나 한다’고 한수생을
타박하던 마을사람들이 흉작으로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반성은 커녕 되려 구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한수생의
재물을 빼앗고, 죽이기로 한다. 어려움에 처해서도 제 잇속만
챙기려는 기득권 세력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 한 구절을 모르고, 옛 성현의
지혜 한마디를 몰라서,
그저 재물만 탐하는 벌레 같은 자에게,
우리가 배고프다는 이유로 쌀을 달라고 빌며 구걸하듯 해야 한단 말이오?(23쪽)
본시 사나운 기세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어서게 되면,
중간에 그게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도
그냥 그 기세에 눌려 일을 저지르게 되는 수가 많은 법이오.
더군다나 자신은 현명하여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데
주위에는 멍청한 자들뿐이라고 믿고 함부로 말 떠들기 좋아하는 놈이
한둘만 섞여 있으면 일이 험악해지는 것은 더 쉬워지기 마련이오.(25쪽)
장희의 ‘행해만사’는
사람들을 꾀어 내기 위한 문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한수생은 철석같이 믿었고, 이들은 한주지역에서 배를 타고 서해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서 이들은
서해의 악명 높은 해적 ‘대포고래’를 만나고, 백제의 재건을 꿈꾸는 무리들도 만나게 된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장희와 한수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해적들을 제압할 만큼의 힘은 없으나,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솜씨를
가진 장희는 어느덧 ‘공주 해적’으로 불리우게 되지만 이들은
여전히 생과 사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백제의 재건을 꿈꾸는 무리와 함께 백제의 마지막 태자가 남긴 보물을 찾기 위한 이들의 여정은 신라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연상시킨다. ‘블랙 펄’과 같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해적 무리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공주 해적’이라 부리는 장희의 말솜씨와 협상력은 ‘잭 스패로우 선장’에 뒤지지 않는다.
“행해만사”라
했으니, 장희의 해적전이 계속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