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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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다산초당, 2020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독일어로 피해나 손상을 의미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나 즐거움을 뜻하는 프로이데(Preude)’를 합한 단어로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남의 고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남을 고통스럽게 만들면 훨씬 더 기분이 좋다.
냉정한 말이지만, 강력하고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원칙이다.(9)


저자 티파니 와트 스미스는 감정의 역사를 연구하는 문화 역사가로 왜 우리가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지,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어’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에 대해 연구하고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인정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짜증날 정도로 잘나가는 친구들과 친척들의 나쁜 소식을 듣자마자
체기가 쑥 내려가듯 후련해지는 기분.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이런 당혹스러운 기쁨과 함께 수치심도 찾아든다.(14)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은 다섯가지 패턴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직접 초래하지 않은 남의 불행을 우연히 발견하고 재미있게 구경할 때 느끼는 기회주의적인 기쁨이며, 겉으로 드러냈다가는 못된 인간으로 찍히는 은밀한 감정이고, 잘난 척하거나 위선적이거나 법을 어긴 사람이 마땅한 벌을 받으면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도 정당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또한 샤덴프로이데를 일시적인 해방구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아주 심각한 비극이나 죽음보다는 사소한 불운이나 실수를 고소해하는 심리라고 한다.


나는 남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가늠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일시적인 위안과 쾌감은 줄지 언정, 그리 오래가지도 않고, 현상을 바꾸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행복으로 내가 불행해질 수도 있고,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어지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비열한 듯하고, 때로는 내 안의 열등감이 표출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경계한다.


이런 감정을 샤덴프로이데라고 하고, 꼭 남의 불행으로 행복해하는 것 외에도 악한 사람이 응당 처벌을 받을 때, 잘난 체하는 사람의 코가 납작해졌을 때, 스포츠에서 상대팀이 실수했을 때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라고 한다.


샤덴프로이데를 비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탄받아온 이 감정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면은 없는지,
우리가 자신이나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30)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에게 강하게 공감하는 반면,
타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고통에는
그리 절실한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의 잘못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분에 떤다.(98)


남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때 통쾌한 기분이 드는 이유에는
범법자와 위선자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자기방어도 있다.
그들의 나쁜 행실이 미래에 내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강제로라도 교훈을 얻어
실수를 바로잡기를 바라며
인과응보의 광경을 만끽하는 것이다.(98)


인간은 재미있게도 자기 인식 능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우리는 외집단에게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면서
그들의 샤덴프로이데를 탓하기도 한다.
샤덴프로이데를 하나의 결점,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쉽게 동요한다는 증거, 진정한 힘이 없어
남의 실패에 킬킬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약자를 위한 유일한 보상으로 보는 습관 때문이다.(208)


저자는 샤덴프로이데가 꼭 나쁜 감정만은 아니라고 한다. ‘본능적으로 옹절하고 음흉한 감정, 뒤가 켕기는 감정으로 생각하는데 샤덴프이데는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가끔 문제를 일으키지만 대개는 무해한 즐거움을 주는 유익함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우리 시대에 샤덴프로이데를
과거보다 많이 경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더 노골적으로 변한 것은 확실한 듯하다.
예전에는 은밀히 숨기거나 정수기 근처에 모여
잠깐 웃음을 흘리며 주고받았던 감정이
지금은 디지털 세상에서 좋아요공유하기를 통해
영원히 박제되기 때문이다.(25)


여전히 남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가늠하지 않겠지만,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에 대해 조금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비열하고 옹졸하다고 스스로를 비난하기 보다는 때로는 므흣한 마음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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