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어딘가 블랙홀 - 감춰져 있던 존재의 ‘빛남’에 대하여
이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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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 블랙홀>, 이지유 지음, 한겨레출판, 2020


<저기 어딘가 블랙홀>은 과학 지식을 인생 경험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일을 즐기며, 전 지구인을 독자로 삼고 싶은 과학 논픽션 작가 이지유의 과학에세이다.


비유와 예시를 통해 과학 지식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원리를 꿰뚫어야 한다. 그리고 그 원리가 내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만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여행은 그런 경험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천문학과 관계없이 하와이는 명물인 낙조를 보기 위해
마우나케아산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 대부분이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4,200미터 높이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처럼 바보 같은 짓이 없다.
오히려 반대쪽을 봐야 한다.
해가 지면서 생기는 마우나케아산의 거대한 그림자가
구름위를 꾸물꾸물 기어가다 해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사라지는 장관이 펼쳐지는데,
어떻게 그걸 놓칠 수 있는가!
하와이를 휴양지로만 알았지 천문학의 성지인 줄은 모랐다손 치더라도,
최고의 해넘이를 보러 마우나케아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바다에 빠지는 해만 보고 오면 정말 곤란하다.
하지만 이곳에 해넘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해만 쳐다보다 간다.
역시 인간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34~35)


과학 지식에 기반한 작가의 인문학적 소양은 동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더욱 공감된다. 비록 당장 쓸모 있는 지식이 아닐지라도. 하와이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마우나케아산의 거대한 그림자가 사라지는 광경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해본다.


비가 계속 오지 않으면 지하수로도 오래 버티지 못해
수면이 내려가고 결국 흉년이 드는데,
이를 농업적 가뭄이라고 한다.
농작물의 양이 줄어 채소나 곡식의 값이 오를 때쯤 되면
댐에 저장했던 물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수문학적 가뭄이 시작된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 수위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방류하는 물의 양이 줄어 전기 생산량이 줄어든다.
그러면 수력 발전보다 원가가 많이 드는 화력이나 원자력발전 방식으로
전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사용자들에게 돌아간다.
이 단계를 사회적 가뭄이라고 한다.
사랃람들은 기상학적, 농업적, 수문학적 가문일 때는
가뭄이 왔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다가
사회적 가뭄이 와서야 비로소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생물에게 필요한 담수가 줄어들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피해를 입게 된다.
물을 아끼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다 같이 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아남지 못한다. (144~146)


사회적 가뭄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뭄을 체감하기 이전에 기상학적 가뭄’, ‘농업적 가뭄’, ‘수문학적 가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도시에서의 안락한 생활에 가려진 안락하지 않은 생활의 단면을 떠올려본다. ‘()환경 시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내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사람이 하는 말과 지구의 지진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물질을 진동시켜 에너지를 전달하는
파동의 한 형태라는 점이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몸에서 아주 복잡한 일이 벌어진다.
허파에서 기도로 공기를 내보낼 때 성대에 있는 근육이 공기의 양을 조절하는데,
이때 공기 분자들이 앞뒤로 일렁이며 사방으로 전진한다.
그러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귀로 들어가 고막을 흔들면
고막 안쪽에 있는 뼈들이 진동을 하고,
뇌가 그 진동을 분석해 상대방이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해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리는 곧 진동이다.
지진파도 진동이다.
지진은 지구가 한 말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외국어를 알아들으려면 번역을 해야 하 듯
지구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면 지진파를 번역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주장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을까?
어쩌면 지구를 이해하기에 인간이 가진 그릇은
너무 작은지도 모르겠다. (170~173)


책에는 금속판을 부식시켜 만드는 에칭과 아크릴판을 긇긇긁어 만드는 드라이 포인트로 만든 오목판화 그림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이 그림은 글과 그림을 조합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의 작품이다. 과학적 지식, 그림, 철학적 사유, 그리고 그에 따른 현실적인 고뇌들이 담겨 있는 책 한권에 많은 독자들이 동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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