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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평점 :
<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이봄, 2020.
우리의 삶이 정해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 행복할까? 반대로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행할까? <키르케>를 읽는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 질문이다.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인 키르케는 신으로 태어났으나, 이렇다할
신의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와 친척, 형제자매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 한 번도 부모의 뜻을 거스른 적 없고, 특별히 가진 능력이 없어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는 키르케. 이 또한 신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는 이유가 된다.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명확히 구분되고 각자의 운명이 정해진 세상에서 키르케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허문다. 인간에게 불을 전달해 독수리에게 평생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키르케는 인간의 운명을 거스른다. 악의적 장난을 하더라도 크게 처벌받지 않는 다른 신들에 비해 키르케는 이 한 번의 실수로 아이아이네 섬에 영원히
유배를 당한다.
“제가 사악한 파르마콘을 써서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만들고
스킬라를 변신시켰어요.
글라우코스가 그녀를 사랑하는 데 질투가 나서
흉측한 몰골로 바꾸어버리고 싶었어요.
억울한 마음에 이기적인 것을 저질렀으니
결과에 책임을 지겠습니다.”(82쪽)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키르케.
나는 아버지에게 마법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얘기하고,
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 척하고,
제우스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 척하고,
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지.
실토한 누나가 잘못했어.
왜 그랬는지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거야.”(101쪽)
운명을 거스른 것이 죄라는 듯이 키르케의 삶은 불행의 연속으로 빠져든다.
키르케가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운명을 거스르지 않았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에 이르렀을까? 죽지도 않는 몸으로 다른 신들로부터 영원히
조롱과 멸시를 받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키르케는 운명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조롱과 멸시, 불행이 연속된 삶에서도 키르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또한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주어져 있지 않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녀가 되고, 최고의 마녀 반열에 오르지만, 이를
악용해 다른 신을 괴롭히거나, 인간을 핍박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해하지 않으면 먼저 해를 입히지 않는다. 도리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의 마법으로
기꺼이 도움을 준다. 키르케는 마녀이지만, 가장 인간미 넘치는
사랑스러운 마녀다.
정해진 운명을 믿지 않기 때문에 “원래 그렇다”는 말도 잘 믿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대개 현재에 직면한 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논리로 삼고, 오랜 관습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속박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원래 그렇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지점이 타공점이란 생각이 들어 구멍을 뚫고 싶어진다.
인간의 삶에 반드시란 없다, 죽음
말고는.(362쪽)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너 하나의 노력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들도 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된다. 하지만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 하나의 노력이 당장 세상을 바꾸지 않을지
언정 최소한 나는 바꿀 수 있고, 이렇게 바뀐 ‘나’가 늘어나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수 없다고 믿는다.
자유의지를 갖는 삶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한다. 자유의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키르케처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저는 당신에게 맡길 겁니다.”(4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