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사람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9
양승광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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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양승광 지음, 씽크스마트, 2020.


세슘 원자(133-55Cs)에서 방출하는 특정한 파장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1. 모두에게 주어진 똑같은 시간. 시간의 양은 모두 같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 즉 가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지만, 시간이 있고, 없고는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없어 못하던 일도 거금을 들여 시작하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다른 시간을 미뤄서라도 하게 되니까.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기까지 였다. 시간이 정말 공평하게 주어진 것인지, 나는 정말 시간을 소유한 것인지,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는 시간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일깨워줬다. 저자는우리가 누리는시간이 정말 공평한지 의문을 던지고, 시간이란 무엇인지, 시간을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래서 공평하게 누리고 있는지 풀어내고 있다.


삶을 한 덩어리로 본다면, 시간은 확실히 욕구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삶이 종료되는 순간 시간 역시 마침표를 찍습니다.
나의 시간뿐일까요.
개별적 삶이 끝나는 순간 이 세상의 시간도 멈춰버립니다.
세상은 내가 있기에 존재합니다.(31~32)


시간이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나 됨을 확인할 수 있음입니다.(45)


하루 스룰 네 시간,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
그 시간들 속에 우리 개개인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자유로운 시간만이 인간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49)


자유는 내게 주어진생존의 시간을 내가 누리는시간으로 전환합니다.
자유인으로 존재하는 시간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누리는 시간입니다.(50)


그리고 우리가 직업 등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소득자와 노동소득자의 시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시간, 취업 준비생의 시간 등을 통해 인간이 누리는 시간이 공평하다는 명제는 거짓이라고 이야기한다.


자본소득자와 노동소득자 모두 생존에 복무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죠.()
하지만 생존에 복무하는 시간의 길이는 그 차이가 너무나도 큽니다.()
문제는 모든 이가 자신이 자본소득자가 될지,
노동소득자가 될지를 결정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본소득자가 되 수 있는 사람들만 이 결정을 할 수 있거든요.(54~55)


인간이 누리는 시간은 공평하다라는 명제는 거짓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본소득자와 노동소득자에게 생존을 위해 복무하는 시간,
그리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선택지에 자본소득자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55)


노동 조건의 격차는 고용 신분에 따라
노동자가 누리는 시간의 질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소비를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소득은 소비를,
소비의 질은 곧 시간의 질을 결정하니까요.(82)


정규직이 아닌 직종 혹은 직군을 의미하는 비정규직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개념(비정규직)이 다른 개념(정규직)을 배제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한,
그 개념은 독자적으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주변부에 머물게 되니까요.(91)


우리 법이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에 대해 여러 차원의 규제를 행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양식이 비정상적이라는,
올바르지 않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노동이 상품일 수 없다는,
즉 노동에는 인간이라는, 그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존재와 가치가 녹아 들어가 있다는 인식의 구현이기도 합니다.(93)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는 말에는 가치 평가가 배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라는 표현보다는
임금이 불공평하다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106)


인류의 역사에서 시간은 지배자만이 해석할 수 있었다. 시간이 곧 권력이었다. 지금은 자본을 가진 사람이 시간을 누리고 있다.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살아도 유리천장을 뚫기 힘들어 시간을 누릴 수 없는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는 것에 대해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군가를 시간의 노예,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사회는 어디든 지옥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끼니 걱정이나 불안한 치안 때문이 아닙니다.
나의 욕망을 나의 수고로 달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며
나의 자유를 나의 노력으로 확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다운 생활이란 자신의 노력으로
자유를 확장할 수 있는 생활을 의미합니다.(200~201)


사회 구조에서 야기된 결과를
개인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183)


시간 주권(time sovereignty)’
노동 시간을 포함하여 삶의 시간을 노동자가 결정하는 것
(control by an employee of the use of his or her time, involving flexibility of working hours)”
-
콜린스 영어사전 (206)


개인의 생활세계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여가, leisure)에 만들어진다.”
-
한동우 교수 (208)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게으름에 대한 찬양>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211)


편암한과 안전한 삶 가운데서 선한 본성을 갖기 위해 시간 주권을 갖는 것이 인간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코로나19로 집콕을 해야만 하는 요즘,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속으로 나의 자유를 위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건 지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지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하거든요.(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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