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지 않는다 - 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 11명의 이야기
박희정.유해정.이호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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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지 않는다, 박희정/유해정/이호연 지음, 한겨레출판, 2020.


인권의 역사는 예외적 존재로 여겨져 보이지 않았던 존재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새로 쓰였다.(219)


<나는 숨지 않는다>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지만 소수라는 이유로 가려진 이들, 한부모 여성’, 장애 여성’, 북한이탈 여성’, 홈리스 여성’, 탈학교 여성’, 조현병 장애 여성’, 스쿨미투 여성들이 온몸으로 겪은 차별에 맞선 이야기이다. ‘세상에 가려지기보다 세상을 바꾸기로 선택한이들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향해 끈임 없이 외쳤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우리 사회 소수자의 이야기를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자각과 함께 이들의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생겼다. 무반응의 사회로부터 무지의 나를 분리했지만, 결국은 무반응의 사회안에 나의 무관심과 무지도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11명의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가정 폭력, 성폭력과 차별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하지만 물 속에 잠긴 빙산처럼 시스템의 문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개인의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니 선명해 보인다. 눈에 보이는 개인의 문제에 주목할수록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이 책의 구술자들은 자기를 둘러싼 일상을 바꾸려 투쟁한다.
학교, , 직장, 친구 관계, 마을
…….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바꾸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두렵고 힘든 일이다.(
)
세상의 변화를 택한 사람이 가장 크게 바꾸는 건, ‘자기 자신이다.(9)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삶에서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힘은 개인에게 달린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20)


애 아빠가 바람이 나서 갈라선 건데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조차
나를 더는 모임에 안 부르는 거야.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고.
지인들이 나를 그렇게 쳐내니까 너무 상처가 되는 거야.
이혼한 게 내 죄야?(27)


마을 사람들이 열악하니까 근처에 한의원 원장님하고 이비인후과 원장님이
번갈아 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의료지원을 해줬어.(
)
가면 원장님들이 진찰하고 처방해주고. 근데 엄청 친절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짜라고 하면 남는 거, 나쁜 거 준다고 생각하는데,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동기들에게 후원받아서 질 좋은 약으로만 챙겨줬어.(33)


힘든 일 많이 겪어오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 생기면 어설픈 말 한 마디보다
그냥 밥 한 끼 사주고, 손 잡아주고 다독거려주는 게 좋구나.
가족이라도 어설프게 말을 모태면 상처가 되고 힘들구나하는 거.
사람은 힘들 때 가족도 필요하지만 친구도 필요하고
지원해주는 기관도 필요하구나하는 거야.(49)


한국사회에서 북한 이슈를 다룰 때 보면,
과연 진짜 다루고 싶어서 다루는지
아니면 서로 당파 싸움에 이용을 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한국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만 세뇌됐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들도 남북문제에 관해서는 세뇌됐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미디어를 통해서
정부가 원하는 대로 이미 받아들여버린 거예요.(92~93)


중요한 건 부모의 장애가 아니구나.
부모가 장애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아이를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도 달라지는구나.’(127)


쓸쓸하고 서운하고 한편으로 내 신세가 처량하다 생각도 하다가,
그래도 이렇게 구루마 끌고 지나가면 먹을 것도 주고 점심 사 잡수라며
몇 천 원씩 돈도 주고 그러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러니까 지금가지 이렇게 버티고 살아왔나 봐.(169)


나보다 못사는 사람도 내가 이렇게 내려다보고 아휴……’,
이렇게 생각해본 역사가 없어요.
내 몸땡이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지나가다가 깡통 놓고 앉아 있는 사람 보면은
내 수중에 돈 있으면 주고.(170)


홈리스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온 사람들은
이 법안의 노숙인 등으로 표기된 개념을 홈리스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홈리스는 단지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상태 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거빈곤 상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쪽방, 고시원, PC, 만화방, 찜질방, 무허가 건물 등
안정적인 주거의 형태로 보기 어려운 곳을 전전하거나
친구의 집을 전전하는 이들의 현실을 드러내기에는
노숙인이라는 개념은 충분치 않다.(176)


청소년들은 그런 걸 귀신같이 잘 안다고 하거든요.
나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쉼터에서 우리를 관리 대상으로 대하는 거랑
한 명 한 명 품어주고 마음을 위로하면서 다가오는 건 달라요.
쉼터를 운영하는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잘 보이거든요.(194)


저는 그런 경험이 별로 없었거든요.
저를 호의적으로 대해주고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제 곁에 가까이 있는 거에요.
제가 이빨을 드러낼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날카롭고 경계심도 많았는데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거죠.
낯선 경험이었이요.
주거가 안정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수면 아래에 깔려 있던 말랑말랑한 감정이 새살 돋듯 나오기 시작했어요.(201)


조미경에 따르면 시설화는 지배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회와 분리해 권리와 자원을 차단함으로써
무능화/무력화된 존재로 만들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이다.(
)
시설화라고 하면 시설만을 상상하지만 시설화된 집도 있을 수 있다.(217)


정신장애의 원인에 관한 대표적 오해로 마음이 약해서라는 게 있다.
한 개인에게 가해진 스트레스가 커서가 아니라,
그걸 견디는 마음이 약해서라는 인식은 아직 굳건하다.
그런 식으로 병원 원인을 아픈 사람에게 몰고
낙인화하는 힘이 거세기 때문에 반대로
이것이 뇌의 질환이라고 강조하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정신장애가 사회구조적 문제와 무관한 것 같은 인식이 생기기 쉽다.(251)


태어날 때부터 여자애들은 순종적이고 단정해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을 받고 자라면서 자기를 계속 검열하는구나.
남자애들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구나.
저렇게 맘 편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성별 권력이구나.(281)


인류가 전제 군주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선택한 건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모두가 다수가 되고자 할 때 인간은 짐승보다 무섭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 경험했다. 소수는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프레임에는 다수의 아량을 전제한다. 개개인은 모두 소수일 수밖에 없으니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각자 존중받아야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제품과 서비스를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듯이, 사회 서비스도 각 개개인에 맞춤화되어야 한다.


소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조금 더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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