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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태도 - ‘사상의 패배’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20년 2월
평점 :
『철학의 태도』,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북노마드, 2020.
<철학의 태도>는
2013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잡지 <겐론>을 발행하는 출판사 ‘겐론’의
대표인 아즈마 히로키의 ‘철학’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해설하고
있다.
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은 대학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기자 회견이나, 서명, 데모 등과 같은 안전한 방식으로 ‘말로만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평소에는 접할 일이 없는 정보와 접촉하는 “오배”, 즉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우리 사회와 정치를 보다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관광” 중에 마주한 우연한 상황들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듯이 ‘우리
사회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어설픈 지식이라도 무책임하게 이런 저런 제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105쪽)고 이야기한다.
아즈마는 실천은 하지 않고 말로만 주장하는 철학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아즈마는 그동안 말로만 무성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 철학의 의무라고 강조한다.(6쪽)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기자 회견, 서명, 데모 등
안전한 방식을 택하고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을 때,
그들이 ‘하위문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운동가들을
해커 커뮤니티, 인터넷 크라우드 펀딩, 오타쿠
커뮤니티를 통해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고(6~7쪽)
“의사소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의견을
몇 가지 대립축으로 환원해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을 억압하고 만다.
소통 없는 의견의 집약이 가능해지면
원래의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민의 일반의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집단 지성’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의사소통을 경유해서 단순화를 거친 판단에 비해
보다 정확한 판단을 이끌어낼 것이다.(21쪽)
지금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숙의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숙의나 대화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담합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좁은 밀실 안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숙의와 담합은 닮아 있습니다.(37쪽)
<일반의지 2.0>은 ‘대중의 무의식에
따르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시화된 대중의 무의식에 숙의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논한 책입니다.(…)
정치인이나 전문가만 밀실에 모여서 정치적인 문제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선거철에만 대중이 정치에 참여하는 시대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고 있습니다.(38쪽)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결정에 참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시간, 경제, 능력 등의 이유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서
정치적인 결정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의 한계를 타파해야 합니다.(41쪽)
인터넷이라는 정보환경이 주어져도
어떤 식으로 의견을 표명하면 되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 자민당 등 기존의 당 조직은
각각 특정 산업이나 조직과 연계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어,
일반 시민의 의견은 정당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반대편인 시민운동 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 시민운동으로 전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 안에서 특수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43쪽)
관광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려면 정처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
현지에서 비어 있는 시간을 갖고, 우연히 만난 사람의 안내를 받는 등
우발적인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진실을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취재의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나는 ‘관광객적’이라고 부른다.(105쪽)
‘쓸모없은’은 오배의 다른 이름이다.
‘목적에 도달하지 않는 것’이다.
오배는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개념 이전에, 극히 일상적인 경험에 붙인 이름이다.(106쪽)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실천’을 하느냐다.(…)
그런데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이 차이에 너무 둔감하다.
자기 사상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놓고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스트가 갖는 최대 약점이다.
급진적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을 하는 곳은 ‘대학’이라는 보호막 안이다.(111쪽)
인문학 콘텐츠를 파악하고자 할 때에도 텍스트
자체에 갇히지 말고, 콘텐츠와 연결된 현상(네트워크)과 함께 파악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유튜브가
놀라운 것은 동영상 자체가 아니라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혁신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실천과 괴리되어 자기만의 성에 갇힌 철학보다
일상에서 철학적 실천 방법론을 찾는 여정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아즈마의 철학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변화는 말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실천 없이는 변화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구축해온 방법론이 콘텐츠 독해를 목적으로 한 것이어서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간과하는 경향이(…)
특히 정보기술과 관련된 현상은 콘텐츠가 갖는 의미가 별로 없다.
유튜브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올라온 동영상이 놀라워서가 아니다.
플랫폼의 혁신,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혁신이 핵심이다.(129쪽)
철학은 본래 동시대 현실에 직접 대응하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과 거리를 둔다.
그 거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