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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온도 -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매혹적인 일침
이덕무 지음, 한정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시의 온도』, 이덕무 지음, 한정주 옮김, 다산초당, 2020.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한시는 어렵다’는 생각에 근처에도가지 않았다. 한자에 담긴 함축적인 내용들도 난해했지만, 중국 사서삼경 등에서
인용된 단어들로 인해 스스로 읽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해석하는 데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일 뿐이었으니, 더더욱 한시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시의 온도>는 이덕무의 시를
엮고, 그의 시 세계를 해석한 책이다. 2년 전 <문장의 온도>를 통해 이덕무의 산문을 소개한 역사평론가
한정주가 이번엔 이덕무의 시를 소개하고자 펴낸 책이다.
이덕무는 박지원, 서상수, 유금,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과 함께
백탑시사라는 시문학 동인을 맺어 시작활동을 했다.
백탑시사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이들이 백탑이라고 불린
원각사지10층석탑(현재 탑골공원 소재) 주변에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39쪽)
이덕무는
조선 영정조 시대를 살았던 북학파 실학자로 시와 산문에 능했으며, 당시 중국의 시를 모방하는 것에 반대하고
조선의 시와 산문을 쓰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의 풍속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로 표현하기도
하고, 청계천의 풍경 등을 담고, 담장에 앉은 잠자리의 그림자를
보고 떠오른 생각과 느낌을 시로 짓기도 하는 등 일상을 소재로 시를 지었다고 한다.
가식이나 인위가 아닌 진정과 진심을
글쓰기의 동력이자 원천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자신의 감정, 마음, 뜻, 기운, 생각을 가식적으로 꾸미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진실하고 솔직하게 드러내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이덕무가 추구한 시의 미학이다.(75쪽)
이덕무의 시와 산문은 모두 ‘진솔한
글쓰기’라는 한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였다.
진솔한 글쓰기는 “오직 감정, 생각, 기운, 뜻, 정신을 드러낼
뿐
형식과 문체에 얽매이거나 구속당하지 않는다”는 이덕무의 메시지에 잘 담겨 있다.(101쪽)
이덕무는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굶주린 삶이었지만
그의 시에서는 이러한 가난과 굶주림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친구 유득공과 오랫동안 굶주린 끝에 <맹자>와 <춘추좌씨전>을 팔아 밥과 술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애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가난한 삶을 비관하지 않고 “맹자가 손수 밥을 지어서 내게 먹이고, 좌구명(춘추좌씨전 저자)이
친히 술을 따라서 권해주었다’라고 이야기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팔아 한때나마 굶주림과 술 허기를 달래는 것이 더 솔직하고 거짓 없는 행동임을 깨달았다’(117쪽)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가난한 삶 속에서 쓴 글들에 가난함이 묻어 있지 않고, 때로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이 느껴져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자신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가식없이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이덕무의 글쓰기 원칙이 더욱 돋보였다.
재물을 얻기 위해서든, 권력을 얻기
위해서든,
명예를 얻기 위해서든, 출세를 하기 위해서든
혹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든 목적이 있게 되면
인위와 가식이 섞이게 마련이다.(37쪽)
‘야인’이란 곧 꾸밈없고 순박하며 가식이나 거짓이 없는 자연인이다.
‘뇌인’은 굶주림이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세속적인 기준이나 세상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인이다.
야인과 뇌인 곧 ‘자연인’과 ‘자유인’이야말로 이덕무와 백동수가 추구한
참된 삶과 진짜 글의 기준이었다.(234쪽)
주변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는 신념을 지키며 사는 삶이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꿀벌이 꿀을 모을 때, 꽃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일침으로
다가왔다. 200여 년이 지난 문장들이지만 여전히 울림이 크다.
큰 계책 억지로 이루기 어려워
차라리 철저히 진실 닦으려네
깨끗한 이름 예전 그대로 나인데
헐뜯고 욕하는 사람 누구인가
비방과 조롱 경박한 습관이니
담박한 정신 괴롭힐 뿐이네
세상 풍문 두 귀에 스치지만
갈수록 고고한 하늘만 믿을 뿐.
(98쪽)
“꿀벌은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리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꿀벌이 꽃을 가린다면 꿀을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시를 짓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