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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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아르테, 2020.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의 동요가 앞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감정이 쉽게 이입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야기의 주인공과 일치되어 나의 기분이나 감정이 소용돌이 치기도 한다. 소설 <여름의 /겨울>을 읽으며 문득문득 주인공과 동화되어 잠들어 있던 감정이 깨어나곤 했다.


벨기에 출신의 아들린 디외도네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여름의 / 겨울>은 처절하게 아름다운 한 사람의 성장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 받았고 영화화 또한 예정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는 저물어 가는 하루의 마지막 순간을 빛으로 어루만지며
달콤하게 졸인 꿀 냄새 같은 향기를 풍겼다. (27)


동생과 함께 집 앞 정원에서 아름다운 해질녘 풍경을 맞이하는 소설의 주인공 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민한 지능을 지닌 10대 소녀이다. 하지만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이 잠재된 소녀의 가정은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무한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폭력 아래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소녀와 동생에게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 남매가 좋아하던 아이스크림 할아버지가 크림을 만드는 기계의 폭발로 인해 눈 앞에서 얼굴의 반쪽이 사라지며 순식간에 고깃덩어리가 된 것이다.


이 사건 이 후로 동생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숨죽여 있던 잔인함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녀는 가족 중 유일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동생을 사건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학과 물리학에 심취한다. 동네의 고양이와 개, 그리고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던 염소까지 서슴지 않고 죽이는 등 동생의 잔인함이 극에 달할수록 소녀의 허망해 보이는 소망은 더욱 커져간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인간 세상의 빛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별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수천 관중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역할도, 다른 사람들의 역할도 몰랐지만
내가 그 연극 무대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193)


사냥을 즐기던 아버지는 한 밤중에 소녀와 동생을 숲 속으로 데리고 가 소녀를 먹잇감으로하여 동생과 동료들이 소녀를 사냥하도록 시킨다. 극심한 공포와 함께 심신에 가해진 상처는 소녀의 마음속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깨우게 되는데


어쨌든 할아버지의 부재는 셔츠 바로 아래 숨겨진
아버지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 놓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채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구멍은 접근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부숴 버렸다.
바로 그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절대 안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67)


부모에게 사랑을 기대할 수 없었던 소녀를 보며 내 가슴에도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녀가 숲 속에서 만난 순수한 친구 모니카, 아무런 대가 없이 강아지를 찾아준 이웃집 부부, 소녀의 지적 호기심을 무한히 채워준 물리학 교수 등 소녀 주변에는 가족이 아니지만 호의적으로 친절과 사랑을 베푼 사람들이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들로 인해 내 마음에 생긴 구멍도 조금 메워진 기분이다.


예상할 수 없는 순간 찾아오는 슬픔과 인간의 잔인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속에 수많은 아름다운 어휘를 품고 있는 이 소설을 마음이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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