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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바침 - 결코 소멸되지 않을 자명한 사물에 바치는 헌사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책에 바침 』,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리네
호벤 그림, 김인순 옮김, 쌤앤파커스, 2020.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 조사인 2015년과 비교하여 종이책은 65.3%에서 59.9%로 떨어졌고,
전자책은 10.2%에서 14.1%로 증가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1년에 4권을
구입하고, 1년에 1권 이상 읽는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1년에 약 7권을 구매한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결과를 인용하며 ‘책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줄어드는 독서량을 지적하며
‘지식의 위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줄어드는 구매량으로 ‘출판 산업의 위기’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책에 바침>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종이책을 ‘애착’하는 독일 작가 부르크하르트 슈피넨이 종이 책에 바치는 헌사이다. 자동차가 마차를 거리에서 완전히 몰아냈듯이 언젠가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날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책에 애착하고 있는 작가가 쓴 책에 대한 에세이이다.
나는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다.
글을 깨친 뒤로 내게 세상을 열어준 것은 파일이 아니라 책이었다.
책은 내 동반자이자 내 동거인이었고 조력자이면서 친구였다.(21쪽)
우리가 책이라 할 때 책에 담긴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책의 외형이나 책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데, <책에
바침>은 이렇게 간과된 책의 외형과 특성 그리고 책을 매개로 한 관계 등 다양한 시각으로 종이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부적절한 책, 비싼책과 싼책,
발견된 책, 선물받은 책, 좋아하는 책, 알맞은 책, 사인된 책, 독점된
책, 빌린 책, 분실된 책,
훔친 책, 두고 간 책, 버린 책, 금지된 책, 학대당한 책, 불살라진
책. 여기까지 쓴 작가는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며 독자에게 추가할 부분이 있다면 추가해도 된다고 제안한다. 또 어떤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게 담아냈다.
부적절한 책은 사실 책의 탓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부적절한 시간, 부적절한 장소에 있었을 뿐이다.(62쪽)
어쩌면 책 주인은 표지에 이름과 날짜를 기입하는 행위를 통해
독자로서 책에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책’이라는 의사소통 행위를 성공적으로
종결짓는 것이다.(85쪽)
그 일은 전혀 쉽지 않았다.
물에 젖어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책일지라도
버리는 건 고통스러웠다.
나는 책들이 그런 상태여서 솔직히 고마웠다.
그런 상태는 내 행위를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반면에 훼손되지 않은 책을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신성 모독처럼 느껴졌다.(104~105쪽)
최근 책공예 작품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버려지는 책을 새활용(Upcycling)하는 북폴딩도 유행하고 있고, 책을 이용한 북아트도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책공예 작품이 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와 같이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북폴딩이
맴돌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책공예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중에는 무엇보다도 솜씨 있게 잘 만든 독창적인 사례들도 있다.(…)
책이 공예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야 하고,
또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부 파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134쪽)
빈 책장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책을 사서 읽고, 책장이 꽉 차면
또다시 책장을 사던 때에는 ‘책을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책장을 사서 놓을 곳도 없고, 빈
공간이 없을 만큼 빼곡한 책장을 보면 이제는 몇몇은 떠나 보내야 할 때 임을 느낀다. 아직은 아니라고
미루고 있었는데, ‘북폴딩’이 뇌리에 박히는 순간 해결책을
찾은 듯하여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에 반발심이라도 생긴 것인지, 난 북폴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려는
편이다. 새로운 앱이 나오면 써봐야 하고,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보면 먼저 써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전자책 만큼은 왠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자동차가 마차를 도로에서 몰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30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전자책이 나왔고, 이용의 편리성, 간편한 휴대성, 저렴한 가격 등으로 전자책으로의 전환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죽어 없어졌다(?)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심정으로 ‘이 시대의 마지막 종이책 독서가’로 남고 싶은 아집은 버려지지 않는다. <책에 바침>은 이런 나의 아집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읽힌 책은 그것을 읽은 독자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아주 중요한 장의 특별한 한 단락이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여행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따금씩 그 여행을 회상하기 위해서라도
읽힌 책은 여행 기록처럼 보관될 필요가 있다.(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