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 정우성이 만난 난민 이야기
정우성 지음 / 원더박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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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정우성 지음. 원더박스, 2019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우성이 그동안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방문한 난민캠프에서 직접 눈으로 본 것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희망을 전하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난민에 대한 무지를 일깨우고 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고 하는데,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고, 그러한 두려움은 결국 난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민을 만나며 한 가지 확인한 게 있다면,
그들 누구도 스스로 난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던 난민이 되었다.(44)


 

난민들이 어떤 이유로 탄압을 받는지,
또 어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국경을 넘는지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45)


 

20186월 제주도에 도착한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들로 인해 우리 사회가 난민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궈졌었다. 범죄 우려 등으로 반대 여론이 더 높았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저자에게도 많은 비난과 비판의 글들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인권이라는 당위성에만 기대지 않고, 의견을 청취하고 비난과 비판의 원인을 읽으려는 저자의 노력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일단 댓글을 하나하나 모두 읽어 보았다.
스타 정우성에 대한 댓글은 잘 읽지도 않고,
어쩌다 읽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거기에 달려 있는 칭찬이라 할지라도 그것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여론이 많은 난민들과 유엔난민기구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내가 괜찮다고 그냥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이 왜 이런 목소리를 내는지를
알아야겠기에 댓글을 읽어 가며 이면에 있는 그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164)

 

우리도 일제침략기 나라를 빼앗기고, 한국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었던 역사가 있다. 우리에게도 언제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현재 우리는 인색하면서 우리가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참 염치없는 듯하다. 일제침략기 임시정부를 돕고, 한국전쟁에 많은 희생을 치른 국가에게만 보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와 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가의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가 받은 도움에 보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난민은 남이 아니다.
생판 모르고 언어도 풍습도 다르다고 해도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또 우리도 얼마든지 난민이 될 수 있다.
비단 전쟁이나 내전이 아니더라도
천재지변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205)


 

난민 캠프를 방문하고 온 내게 많은 분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도 불우한 사람들 많은데, 왜 굳이 외국 사람만 돕는 거죠?”
나는 난민만 돕거나 난민을 우선하여 돕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힘들게 살고 계신 분들을 외면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분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여유가 된다면 눈을 들어 더 먼 곳을 바라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115)


 

이제까지 만나 온 다른 난민의 고통 뒤에도
많은 경우 종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종교 간의 다툼도, 종교 내부의 다툼도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을 달래고자 만들어졌을 종교가,
서로 사랑하고 생명을 죽이지 말라고 부르짖는 종교가
왜 이렇게 인간을 더한 고통으로 내모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우리가 추구하는 종교가 과연 신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인가
하는 의심도 들곤 한다.(136~137)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는 공식적으로 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한 적이 없으며
수십 년 간 계속해서 관대하게 로힝야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해 왔다.
그는 이러한 관대함의 근간은 정부가 아닌 국민이라고 했다.
난민을 관대하게 수용하는 국가의 일원이라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자긍심은
방글라데시 지역 사회와 로힝야 난민을 보다 가깝게 묶어 주었다.(155)


 

인구 97만의 작은 나라 지부티.
그 안에서도 인구 8,000의 작은 도시 오복.
정부가 오복에 있는 마르카지 난민 캠프를 이전하려 하자
이 지역에 있는 것을 나눠서 살 수 있다.”
캠프 이전에 반대한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경제적 풍요만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194)


 

 

우선은 난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난민에 대해, 난민의 상황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은 난민에 대한 이해를 통해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홍세화 작가의 글을 통해, 나 역시 ‘GDP 인종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보다 GDP가 높은 나라 사람이 나를 깔보는 것도 당연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세상은 인종주의적 언행으로 가득 차 있다.(
)
한국 사회엔 ‘GDP 인종주의가 관철된다.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패밀리이고,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 가정이다.
물신주의와 인종주의가 교묘히 결합되어 나타난 게 ‘GDP 인종주의,
우리보다 GDP가 높은 나라 사람은 받는 것 없이 올려다보고,
우리보다 GDP가 낮은 나라 사람은 주는 것 없이 깔보는 경향이 있다.
-
홍세화 (212)


 

타자의 생명을 존중하고 타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야
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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