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사 김도언 반올림 45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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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 김도언, 김하은 지음, 바람의아이들, 2019


<변사 김도언>은 초기 무성영화 시대에 관객들에게 영화를 해설해주는 변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김도언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다. 한 편의 짧은 소설이지만 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다. 일본제국주의 식민 지배 시절을 관통하는 이야기로, 변사라는 직업을 통해 태동기의 한국영화 산업을 들여다볼 수 있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정신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여성 차별, 여성 배제가 당연시되던 시절의 여성으로써, 여성직업인으로써, 여성독립운동가로서 삶도 들여다볼 수 있는 묵직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김도언은 역관의 딸로 태어나 글 공부를 위해 남장을 하고, 아버지의 중국인 지인의 딸 쩡루이쩐에게 장사와 중국어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보게 된 활동사진(영화)를 통해 변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김도언은 여성 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최초의 여성 변사가 된다. 독립운동을 하는 오빠를 찾아 떠난 상해에서도 김도언은 변사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고, 상해에서 만난 오빠가 활동하고 있는 은성단이라는 비밀결사 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무장투쟁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지만,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거나, 독립운동가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연락책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변사 김도언>3.1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일제치하를 다루고 있는 만큼 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 왕조 복위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기도 하고, 왕이 아닌 민중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도 있다.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무장투쟁과 요인암살을 하기도 하고, 집을 팔고, 패물도 팔아 독립운동의 자금을 마련한 사람들, 독립운동가들에게 정보를 주고 받으며 연락을 전달한 사람들 등 방식은 다르지만 일제로부터 독립된 나라를 세우겠다는 같은 목표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야기는 함축적이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이 뒤섞여 있지만, 가상 인물이라 하여 완전 허구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기록되지 않고 그림자처럼 가려져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소설인 <변사 김도언>의 이야기는 해방과 함께 끝이 나지만, 친일의 역사는 해방과 함께청산되지 못하고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둔갑하고, 친일로 축적한 유무형의 자산을 기반으로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그 후손은 여전히 잘 살고 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그에 반해 맨 몸으로 해방을 맞은 독립운동가는 해방 공간에서 홀대 받고, 그 후손은 여전히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변절의 대가는 지금까지 후했고, 모진 독립운동의 대가는 이후의 삶도 모질게 만들었다.


20191118, 독일에서 93세의 노인이 법정에 섰다. 그의 죄목은 살인 방조죄. 무려 5,230건의 살인을 방조한 혐의다. 그는 70여년 전 나치 치하의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유대인 학살을 방조한 혐의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사람은 그가 고령일지라도, 말단의 공무원으로 단순가담한 것이라 주장할지라도 처벌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나치를 옹호하거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여도 처벌을 받는다. 나치 옹호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가 국가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공공연히 친일의 역사를 미화하는 주장이 여전하다. 한번도 제대로 된 단죄조차 하지 못했는데, 단죄하려 하면 국론분열이라며 국민화합, 국민통합을 이야기한다. 사죄와 반성도 없는데 용서와 화해를 먼저 이야기하는 모순은 여전하다. 과거는 묻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역사를 잊어서도 안되고, 그 역사의 과오를 덮어서도 안된다.


독립운동가들이 염원한 평범한 일상이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기에, <변사 김도언>의 짧은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온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이 모두에게 오기를!”(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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