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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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살림, 2019


흔히 셰어하우스라고 하면, 개인공간과 공용공간이 구분된 주택을 일컫는다. 각자의 방이 개인공간으로 따로 있고, 주방, 거실, 세탁실 등이 공용공간으로 함께 이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는 이러한 일반적 상식을 과감히 깨트린다. 방 하나에 침대 하나의 공간을 낮과 밤이라는 시간으로 나눠 공유하는 개념이다. 공간과 그 공간에 채워진 모든 살림살이는 함께 사용하되, 시간으로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스톡웰의 햇빛 잘 드는 아파트, 넓은 침실에 침대 하나.
공과금 포함. 한 달 350파운드. 즉시 입주 가능. 최소 6개월.
스물일곱 살의 호스피스 병원 간호사와 아파트(방과 침대) 셰어.
야간 근무하며 주말에는 집에 없음.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에서 6시까지만 집에 있음.
나머지 시간은 전부 당신 차지!
9
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완벽한 조건.(11)


집주인은 왜 이런 광고를 냈을까? 하나의 방에 하나의 침대를 공유한다는 것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다. 소파, TV, 냉장고라면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데,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대를 함께 쓴다는 것은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집주인 리언은 억울한 누명으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동생 리치의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야 했고, 변호사를 만나거나, 연인과의 데이트 등으로 낮 시간동안 추가로 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부득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야간 근무하는 시간동안 비어있는 집을 이용할 동거인을 구함으로써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 셰어하우스의 세입자 티피는 남자친구의 새 여자친구로 인해 동거하던 집에서 당장 나와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가진 돈으로는 주방 벽에 형형색색 곰팡이가 핀집이나 셰어하우스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냥 해치워버리자. 달리 도리가 없다.
눈 딱 감고 해치워버리자. 그 길이 최선이다.
반창고를 확 떼어내듯, 아니면 찬물에 들어가거나,
집안 물건을 부쉬버린 걸 엄마한테 실토할 때처럼.(8)


그렇게 시작된 동거 생활. 이들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마주치지 않는 것. 이들은 집을 교대로 사용하다 보니, 업무 인수인계 하듯, 포스트잇 메모노트를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전 남자친구의 약혼 소식에 충격을 받은 티피는 우연히 마주치기는 어려운 출장지에서 마주치는 전 남자친구로 인해 매우 심란하고, 과거 연애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괴로워하고 있는 가운데 심리상담 치료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전 남자친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스리이팅(gaslighting)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정신적 학대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로써, <가스등>(1938)이라는 연극에서 남편이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하고, 이에 아내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시사상식사전)


남자친구로부터 차이고, 쫓겨나다시피 하여 정신적 충격을 받은 티피는 셰어하우스에서의 생활을 통해 점점 안정을 찾아갈 즈음, 우연히 마주친 전 남자친구를 보며, 연애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새로운 상황에 주저하게 되고, 자신의 잘못으로 헤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자책하는 등 괴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로 인해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거나,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생긴 오해들과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버리는 사건들을 보면서 티피의 자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한편, 우유부단함이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자업자득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이 모든 것이 가스라이팅의 피해결과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정신적 학대를 극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고, 스스로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들이 지켜온 일상의 규칙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재빨리, 한꺼번에 해치워야 한다고 조언하겠어요.
피해갈 도리가 없게 말이야.”(160)


무슨 일을 터무니없이 즉흥적으로 할 때의 복받치는 기쁨,
계획에 없던 일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문득 느끼는 것,
지각 있는 생각에 대해 훈계하는 뇌의 온갖 목소리를 차단해 버리는 것(269)


구원은 남이 대신해줄 수 없다.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신뿐임을 상기한다.
남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당사자가 준비가 되었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것뿐이다.(426)


당신이 하나의 침실, 하나의 침대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면 <셰어하우스>를 펼쳐서는 안된다. 공유된 공간에서 각자의 소지품을 통해 서로의 습관과 기호를 알게 되고, 포스트잇 메모노트를 주고받으며, 셰어하우스 생활에 필요한 전달사항 뿐아니라,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조금씩 도움을 주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마주하게 된다.


<셰어하우스>는 사랑으로 포장된 정신적 학대(가스라이팅)가 한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피폐하게 하는지도 그리고 있어 현재의 연인 관계에서 혹 이러한 정신적 학대 상황, 심리적 조작상황에 놓인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주변 사람들과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음을,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사랑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셰어하우스>를 덮는 순간, 집이라는 공간에 함께 하고 있는 내 가족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없는 집이라면 리언의 말처럼 이곳은 집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너무 많은 행복을 차지해버려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갈 행복이 모자라게 됐다는 듯이.(503)


당신은 집이야”()
당신이 오기 전까지, 그곳은 집이 아니었어, 티피”(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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