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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안에 살다 - 박경득 산문집 ㅣ 인문학과 삶 시리즈 1
박경득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19년 10월
평점 :
『문장 안에 살다』, 박경득 지음, 클북, 2019
<문장 안에 살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대학생 시절 한 선배가 조언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배는 내게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실천하려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의미는 주어진 상황논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좋아지고, 감정, 감성
등도 메말라간다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으니, 그간 잊고 살았는데,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과연 나는 생각하며 살았는지, 사는 대로 생각했는지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다.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느라, 혹은 가정에서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느라, 삶에 대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었다.
‘문장 안에 사는 삶’이란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생각거리를 가지고 산다는 의미로 들려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문장’과 함께 생각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렇게
‘문장 안에 살기’ 위해서는 생각거리와 함께 관찰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고, 마음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문장 안에 살다>는
교사로 30년간 재직한 저자가 퇴직 후에 인문학을 접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책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일상에서 마주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각들을 붙잡아 문장으로 완성한 것을 보면서, 저자의 일상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을 들을 땐 덩달아 나의 어린시절도 떠올라, 웃음지으며 추억여행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문장 안에 살다>는
글의 호흡이 짧다. 과장된 수사 같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간단명료해서 시를 읽는 것 같다. 생각이 깊지 않으면 말이 길어지고,
글에 멋을 부리면 과장된 수사가 많아질 것이니, 생각과 관찰에 대한 저자의 내공이 깊게
느껴진다.
내 삶의 여정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발견해서 다행이다.
정답처럼 친절하게 적혀 있는 책 속의 많은 사실을 발견하는 기쁨은 크다.(…)
가끔씩 쓰는 즐거움도 괜찮다.
쓰다 보면 내 속에 있던 묵혀져 있던 것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좋다.
내가 그들을 끄집어내고 새롭게 정리해서 좋다.(16쪽)
글쓰기 지도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냥 쓰라고.” 나는 이 말에 이의를 달지 않기로 했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을 품고
길을 나서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건 바보다.
하얀 바탕의 자판을 마주하는 두려움도,
여백에 볼펜 끝이 멈추어 있는 순간조차도
꼬마 병정처럼 또각또각 글이 굴러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167쪽)
책을 친구로 두면서 내 하루는 천천히 흘러간다.
이 친구들은 느긋하게 나를 마주하며,
내 미적거림도 잘 참아주는 편이다.
자기 생각을 슬며시 드러내지만 강요하지 않는 그들이 편하다.(199쪽)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글로 풀어서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모든 사실이 눈으로 볼 때보다 더 예쁘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덩이.’
나는 글로 기억할 때 하늘과 구름을 더 진하게 느낀다.
그래서 어떤 날은 내 한 줄 메모지에서 기억과 풍경을 그대로 건져낸다.(231쪽)
소설과 산문을 읽는 즐거움 중에는 평소의 일상생활 중에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마주할 때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몰랐던 단어들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어감이
좋은 순우리말을 만나게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문장 안에 살다>에서 만난 ‘음전’(58쪽)과 ‘동그나미’(160쪽)는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음전 : 말이나 행동이 곱고 우아함, 또는 얌전하고 점잖음.
동그마니 : 사람이나 사물이 외따로 오뚝하게 있는 모양
<문장 안에
살다>를 읽고 나니, 일상을 흘려 보내지 않고, 관찰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나를 보며 위로보다는 채찍을 사용하는 편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을 몰라서 잘 살펴보지도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속마음까지도 흩트리지 않는 것은 속마음을 늘 관찰하는 것이다.
나를 잘 보는 것이다.(85쪽)
“그래, 어차피 운명이라면, 내 운명이라면
이 운명조차
온전히 내 것으로 더 뜨겁게 감싸 안아보자.”(213쪽)
나는 충분히 세상이나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지나고보니 별 의미가 없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자신에게 먼저 당당한 사림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의 삶은 나를 위한 삶, 내 몸과 마음의 만족을 위한
가장 이기적 인간이 되고 싶다.(214쪽)
누군가를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내 마음조차도 나 자신과 공감의 조화를 이루기가 힘들었다.
마음 상태는 수면 아래 있는 모래와 같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을 때는
위에 있는 물이 어지간히 살랑거려도 움직이지 않는다.(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