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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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김태연 지음, , 2019


한 번쯤 낯선 이국에서의 생활도 꿈꿔봤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해를 기준으로, 별을 기준으로 시간을 가늠하며 오늘을 즐기는 삶을 그려보기도 했다. 물론 잠깐의 휴가만이라도 이렇게 즐긴다면 인생에 낭만으로 충만할 것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져,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직장으로 향하고 있다.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118)


<우리만 아는 농담>을 통해 저자와 우리만 아는 보라보라를 갖게 된 것은 묘한 착각에 빠졌다. 알고보면 저자만 아는 보라보라인데, 책 한권으로 보라보라를 다녀온 듯 하다. 저자는 보라보라섬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을 전하고 있다. 정전이 되면 냉동식품이 상하기전에 먹어야 하는 일들과 인터넷, 와이파이의 두절로 청소를 하고, 분갈이를 하는 일상을 들을 땐 일상의 수고로움이 느껴져 에메랄드빛 바다의 낭만이 깨지기고 했다.

가족의 소중함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고 했던가? 남태평양의 섬에서 지내는 저자와 한국의 가족 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소소한 일상에서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들이 묻어난다. 어머니께서 가게일을 하느라 제때 끼니를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멀리 보라보라섬에서 밥을 해 먹이려는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는 흔한 일상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결코 갖지 못한 경험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엄마는 숙소에 도착한 날부터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도 아니면 청소를 했다.(
)
이게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 너 밥해 먹이고 싶었어.
너 키울 때도 엄마가 가게에 있느라 잘 못해줬잖아.”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오면 늘 밤 열시가 넘었던 엄마는,
자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했다.(38~39)


행복은 복리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각박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일도 거창한 것만 일이라 생각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것도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같다. 역사는 엄청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을, 혹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일상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57)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260)


함께 추억할 사람이 있고, 그와 혹은 그들과 회상할 추억거리가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내 마음에 여유가 있고, 주변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다면 나의 행복도 다른 이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행복은 바이러스라고 전염력도 높다고 하는데, 내 마음이 각박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건 아닌가 싶다.


나의 호의에 고마워하지 않는 노숙인에게도 그의 배고픔에 공감하며 정성스레 피자를 제공할 수 있는 마음이 부럽고, 나는 내일이라도 그들의 배고픔에 공감하며 음식을 내어줄 수 있을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도 아닐텐데 고민하고 있는 나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비록 나는 육지에 살고 있지만, 오히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섬처럼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 올랑드는 정말 친절하지 않지.
그가 편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나도 화날 때가 있는 걸.
하지만 우리가 피자 하나 굽는데 그 사람의 성격이 필요해?
중요한 건 그가 하루 종일 굶었다는 거잖아.”(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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