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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이규연 지음 / 김영사 / 2019년 10월
평점 :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 이규연 지음, 김영사, 2019
탐사
저널리스트 이규연은 JTBC에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제작, 진행하고 있다.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은 저자가 30여
년간 탐사보도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부제 ‘지연된 정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한 36개의 스포트라이트’ 처럼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사라진 시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책이다.
로스트 타임은 축구 경기의 로스 타임처럼 정상적인 플레이 외의 상황으로 지체된 시간이 생기는 것과 같이
‘사법과 정치, 경제에도 출몰한다’고 하며, 탐사 저널리스트는 이 사라진 시간을 되돌려 주는 직업이라고
이야기 한다.
정상적인 플레이 외에 어떤 이유 때문에 지체된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사법과 정치, 경제에도 출몰한다.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누군가의 시간은 사라진다.
그때마다 그 누군가는 가슴을 친다. 그 목소리는 사라진다.
이런 면에서 로스트 타임은 지체된 시간이자 잊힌 시간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반드시 돌려주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탐사 저널리스트는 사라진 누군가의 시간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직업이기도 하다.(8~9쪽)
나는 30여 년간의 취재 사례를
들며 ‘로스트 타임’을 언급했다.
늘 늦게 만나고 분노하는 사이에 로스트 타임이 생겨났다.
기만과 폭력으로 말미암아 사라진 시간이나 기회다.
따라서 로스트 타임을 회복해주지 않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탐사는 긍정적 외부 효과를 위해 로스트 타임을 줄이고,
또한 역설적으로 로스트 타임을 돌려주는 활동이다.
힘들고, 위험하며, 때에 따라 거칠게 보일 수
있다.(430쪽)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사례는 다양한 분야의 사건 사고 36가지 사례를 다루고 있다. 해당 사건이 각종 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도 소개하지만 비하인드 뉴스처럼 뉴스에서 다루지 않은 피해자나 유가족의
인터뷰와 현재 근황 등도 실려있어 사건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뉴스는 우리가 궁금한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사실 뉴스는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어떤 대형사건이 일어났을 때,
뉴스를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사고 경과와 피해규모 등에 대해서 똑 같은 영상과 똑 같은 멘트만 반복해서 듣게 된다. 왜 발생한 것인지,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해당 사건이 개인의 과실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 것인지 등의 궁금한 점들은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건의 원인이 하루아침에 명명백백히 밝혀질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 사건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과실과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시청자의 관심, 시민들의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뉴스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청자의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다루지 않지만, 실상은 뉴스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뉴스의 이런 공백을 매워주는 탐사 보도 프로그램, 탐사
저널리즘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도
‘무지와 무관심, 기만과 폭력’으로 가려진 부분을 드러내고자 다방면으로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 사고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어 소중하다.
누군가 세상의 진실을 자세히 밝히려고 할 때,
이것을 방해하려는 자들이 들이대는 논리가 음모론이다.(126쪽)
우리 사회나 언론이 아직 선진이라고 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바로 ‘실패학’이 없다는 점이다. 너무 쉽게 잊는다.(…)
현재의 재난 위에 과거와 미래의 재난을 포개놓아야 한다.(132쪽)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는 블랙박스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은 어린아이에게도 안전한 성분만을 사용하여
살균제를 만들었다고 홍보했다.
정부는 ‘청부 연구’의 결과를 받아들여 안전성을
인정해주었다.
언론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했다.
가습기에 균이 번식하면 어린아이의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은 가습기를 ‘안정하게 살균해주는 마법의 물질’을
신뢰하고 사용했다.
이렇게 살균 과정과 성분의 정체는 블랙박스 안에 놓였다.
수많은 소비자, 수많은 부모가 그 ‘마법의 물질’에
치명적인 성분이 포함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살균제를 썼다.(159쪽)
시국 안정을 위한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사당과 헌법재판소에는 물론,
청와대와 촛불 집회가 이루어지는 광화문에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문건에는 내란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경비 차원의 출동 계획일까.(…)
기무사의 업무는 ‘방첩, 군사보안, 군 또는 군 관련 첩보 수집,
안보사범 수사’로 규정돼 있다. 계엄 문건의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국방부 산하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에서 작성해야 맞다.(252쪽~253쪽)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은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강력범죄 사건들(화성연쇄살인사건, 지존파
사건, 조두순 사건, 이영학 사건 등)과 과거 군부독재 정권에서부터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권까지의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12.12 군사반란 주동자들에 의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독재정권 뿐 아니라 문민의 정부까지 이어진
간첩조작 사건, 최악의 사법 살인 사건으로 기록된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의 무죄 판결과 그에 따른 피해보상
과정에서 불거진 이자 산정방법 변경으로 유가족에게 2차 피해를 발생시킨 사건도 다룬다.
또한 각종 선거에 동원된 정치적 사건들도 다루고 있다. 87년
대선을 앞둔 시점의 KAL기 폭파 사건과 부실한 사고 수습으로 인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2016년 총선 5일전 발표된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의 뉴스 뒤에 가려진 사건 기획자에 대한 이야기, 이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이들의 송환에 대한 본인들의 복잡한 심경까지 전하고 있다.
과거의 뉴스와 현재의 뉴스가 다루지 않는 가려진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어,
해당 사건, 사고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사건들도 있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고,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또한 사건의 가해자를 악인으로 몰아 세우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이야기에도 주목하고 피해자를
넘어 우리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부분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빈곤층 아이들이 좌절하는 건 꼭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서적 지지가 약해 바람에 잘 흔들립니다.
지금까지는 경제, 복지 지원에만 주력해왔는데
교육과 정서, 특히 정서적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데 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183쪽)
30여 년의 현장 경력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 저널리스트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될 것 같다. 또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독을 권한다.
다만,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에도 분명 한계는 있어 보인다. 우리 사회의 ‘로스트 타임’은 강력범죄 등 사회적 사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사법권력, 종교권력, 사학권력
등 각종 기득권이 벌이는 권력형 사건들에서 오히려 더 많은 ‘로스트 타임’이 발생한다.
<이규연의 로스트 타임>은
강력범죄,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각종기득권의
결탁에 의한 권력형 사건들, 재벌 등 경제권력에 의한 사건, 주류
언론이 연루된 사건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로스트 타임’이
있는 듯하다.
JTBC가 독립 언론도 아니고, 범삼성가로
분류되고 있어 삼성을 다루는 데 있어 조심스럽고, 주류 언론으로써 자기반성이 쉽지는 않겠지만, 탐사 저널리즘의 시각으로는 성역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역에서
‘잠든 척’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면 욕심일까?
법은 약육강식의 정글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법이 강자와 권력의 편에 설 때 정글은 더 참혹해진다.
탐사는 법을 존중해야 하지만
법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421쪽)
섵”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한 사람은 깨울 수 없다.
더 이상 잠든 척할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검찰이 이제 비로소 잠이 깬 척하면서 눈을 뜨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요.”
- 임은정 부장검사(44쪽)
‘법’을 ‘언론’으로 바꿔서 읽어도 유의미한 문장으로 보인다.
‘언론’은 약육강식의 정글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언론’이 강자와 권력의 편에 설 때
정글은 더 참혹해진다.
탐사는 ‘언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언론’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