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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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창비, 2019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은 영국에 살고 있는 작가가 2018427일 판문점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전협정일인 727일에 종전선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영국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준비하면서 마주한 한국전쟁 참전 영국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국은 유엔참전 16개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8만명 파병했다고 한다. 그들 중 ‘1,106명이 전사했고, 수천명이 부상당하고, 1,060명이 포로가 되는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전사자 884명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치열하고 참혹한 전쟁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영국군 용사들이 참전했으며,
예비군 및 젊은 의무징집병들도 합류했다.
그들은 수적으로 우세한 공산군을 맞아 험한 산악지대에서
혹독한 날씨를 무릅쓰고 싸워야 했다.
81,084
명의 영국군이 전장 전역에 투입되었으며,
그중 1,106명이 전사했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으며
1,060
명이 포로가 되는 고초를 겪었다.
-
런던 한국전참전기념비 (35)


영국에서는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한다 1,2차 대전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1111일을 추모일로 지정하여 추모하고 있지만 한국전쟁은 영국인들의 기억에 없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한다.


맞아요. 여기서는 잊힌 전쟁이에요.
한국 정부는 영국군 참전 군인을 한국으로 초대하고 기억해주는데,
정작 군인들을 전쟁터로 보낸 영국정부는 이들을 잊은 것 같아요.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내 손자도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싸웠다고 하면,
한국전쟁이 뭐냐고 물어요.
그거 제2차 세계대전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1, 2차대전에 대해서만 가르쳐요.”(112)


국가가 파병한 전쟁이므로,
그렇게 전쟁터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결국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우리가 토론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역사에서 사라지니까요.(113)


영국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묘지가 없다고 한다.

영국은 전사자를 본국으로 데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군 전사자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고,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도 사후에 전우들과 함께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이들은 무엇을 위해 먼 나라의 전쟁터에 왔을까하는 물음에서 영국내 영국참전 용사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부터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았고, 영국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를 통해 영국군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데이비드 마이클 호크리지.
1951
11월 소위 임관
1952
12월 한국전 참전, 로열 레스터셔 연대 제1대대 셔우드 포리스터즈 소속
1952
26일 경기도 연천에서 전사.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23구역 111679)


짐 그룬디

1949 10월 입대

19522월 한국전 참전, 시신수습팀 배치

19536월 귀국

1956년 제대


어차피 죽은 사람인데 시신을 수습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물어본다면()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기쁜 것 처럼,
우리에게 시신을 수습하는 게 빅토리였습니다.
그건 전쟁터에 시신을 버려둔 북한군에 대한 우리의 빅토리였고,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를 위한 빅토리였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한 것에 대한 빅토리였습니다.”
-
한국전쟁 영국군 참전용사 짐 그룬디(98)


데이비드 해먼드

1949년 입대

195010월 한국전쟁 참전, 29여단 작전참모 운전병

1953년 귀국

나는 리버풀항으로 들어왔어요. 헌병이 우리를 검열했습니다.
총기류를 다 반납했지요. 그가 내 소지품을 묻기에 담배 250개비가 있다고 했어요.
그때 담배 반입 한도는 개인당 200개비였습니다.
그는 내게 담배가 너무 많다고 반납하라고 했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쟁터에 2년 동안 있다가 지금 돌아오는 거예요.
얼마전까지도 전투 현장에 있었다고요!
그런데 담배 250개비도 못 가져간다고요?’
전쟁? 어느 전쟁? 어디에 있었다는 거야?’
한국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한국이 어디 있는데?’
그게 내가 받은 환영이었습니다.
친구와 둘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리버풀에서 노팅엄을 거쳐 런던으로 왔습니다.
빅토리아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기타를 타려고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헌병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헌병은 친구에게 복장이 불량하다며
야단치고 경고했습니다. 군복 단추를 맨 위까지 단정하게 잠그지 않았다고요.
그게 우리가 전쟁에서 돌아온 후 받은 환영이었습니다.”
-
한국전쟁 영국군 참전용사 데이비드 헤먼드 (112)


한국을 떠나 홍콩을 거쳐 다시 사우샘프턴에 도착했다.
우리는 전쟁영웅답게 가슴에 리본을 달고 있었다.
항구에 도착하자 담당 장교에게 무기를 반납했다.
그는 내게 하프크라운 동전 한 닢과 치즈샌드위치 한 개,
그리고 맨체스터로 돌아가는 기차표 한장을 주었다.
그게 전부였다. 세관원이 신고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그럼 가라고 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했다.
맨체스터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술집에서 그 동전으로 맥주를 마셨다.
맨체스터에 돌아왔을 때 역에는 아무도 없었따.
우리 가족은 내가 며칠 후에 오는 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시간에 집에서 환영깃발을 만들고 계셨다.
내가 좀 더 늦게 왔다면 집 앞에서 환영깃발을 보고 뛰어 들어갔을 텐데,
어쨌든 그렇게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동전 한닢, 치즈샌드위치 한 개, 기차표 한장을 받고.”
-
한국전쟁 영국군 참전용사 브라이언 호프(53~54)


한국전쟁이 우리에게도 잊혀져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평화협정을 통해 반드시 전쟁이 종식되길 기대해본다. 12월 부산을 방문할 계획인데, 유엔기념공원에도 들러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참전용사의 묘에 참배해야겠다.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참전용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국내에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영국군 장병들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With Gratitude for the sacrifices made
by the British Armed Forces
in defence of freedom and democracy
in the Republic of Korea.
- 
런던 한국전참전기념비(36)

하느님은 알고 있는
영국군 병사
SOLDIER OF THE BRITISH ARMY
KNOWN UNTO GOD
-
부산 유엔기념공원 영국군 무명용사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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