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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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숨을 참던 나날,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2019


인생에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

인생의 진리 혹은 신념처럼 여기며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 사람에게 주어진 지랄은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어느 시기에는 반드시 지랄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 격한 질풍 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면 이후에는 무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주문과도 같다. 또한 어릴 시절을 모범적으로 보냈다면 언젠간 일탈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괜한 걱정도 들어 있는 말이다. 물론 자기 합리화를 위한 궤변일 뿐이다.


<숨을 참던 나날>에도 지랄 총량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택한 수영. 그러나 대학에서는 수영 대신 마약과 섹스에 취해 3학년 때 낙제를 하고, 첫 번째 결혼에서 아이를 사산하는 등 순탄하지 않고 자기 파괴적인 나날로 점철된 20살의 인생 전반기.


사실 나는 죽음 곁에 있을 때
가장 살아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154)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주변부로 가야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틀을 대체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다.
원래의 뿌리를 지우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새로운 뿌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다.(268)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흔한 오류를 범한다. ‘루저, 낙오자, 구제불능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방탕한 과거로 인해 미래에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한다. 그러나 지랄 총량의 법칙을 믿는 나로서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변곡점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너는 커서 뭐해 먹고 살래?”라는 말이었다. 이 질문에 딱히 명확한 답이 없어 글쎄요라며 그저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물론 이 말은 대답을 듣기 위해 건넨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또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물어보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훈육이라 이야기할지 모르나 조롱이다.


그런데 지금 커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무탈하게 잘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조롱 섞인 질문을 던진 선생님들을 찾아가 많이 늦었지만 그때의 대답을 해드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 부질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숨을 참던 나날>은 이런 지난 날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저자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느껴질 때 만난 문예창작 모임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하고, 그의 재능을 믿고 응원해준 동료들 덕분에 안정감을 찾게 되고,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문예창작 박사학위도 따고, 대학강사로 일하며 글쓰기를 가르치게 된다. 전반기에 비한다면 그야 말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0년 간의 결혼 생활 후 두 번째 이혼. 그리고 음주 교통사고. 이로 인해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직장도 잃게 된다. 다시 시련이 찾아왔지만, 이 때 세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되고 아들 마일스를 낳는다. 아들을 얻은 이후로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리디아 자신을 파괴하는 일들도 하지 않게 된다.


<숨을 참던 나날>은 리디아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의 성장기이기도하고, 우리들 대다수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진폭은 리디아를 넘어설 수 없지만.


<숨을 참던 나날>에서 리디아는 섣불리 이래라, 저래라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았지만 당신은 이렇게 살지말라는 훈계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과장없이 자신의 성장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리디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이를 통해 나의 어린시절과 마주하며 위로받기도 한다.



결혼 생활이 파탄 나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라.
성장기를 보낸 가족이 별로였다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라.
세상에 얼마나 사람이 많은가. 거기서 고르면된다.
지금 같이 사는 가족이 상처를 준다면, 짐을 챙겨 떠나라. 지금 당장.(408)


맞다, 나도 안다.
내가 엮어놓은 인생 이야기가 때로 얼마나 분노로 가득하고 자기 파괴적이고
지저분하고 심지어 망상같이 읽히는지.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들, 우아한 것들, 희망찬 것들은 때때로 어두운 곳에서 생겨난다.
게다가, 나 같은 여자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목적이니까.(410)


예술 안에서 나는 나의 동족을 만났다.
그들은 내 옆을 지켜주고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
이건 당신을 위한 책이다. 내가 길을 뚫어 흘려보낸 물이다.()
안으로 들어오기를, 이 물이 당신을 잡아줄 것이다.(411)


리디아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유일한 목격자는 오직 몸밖에 없다는 잔인하지만 엄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라는 정신의 강압적인 힘만을 고집하니까.(262)


우리가 원한다면 모든 것은 예술이 되었다.(266)


쌍둥이라는 말은 생물학적인 쌍둥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속한 곳에 쌍둥이가 없다면, 진지하게 말하건대
지금 하는 일을 당장 멈추고 쌍둥이를 찾아 떠나라.
쌍둥이와 동족을 찾아라, 진심이다.(268~269)


이것을 꼭 이해해야 한다.
망가진 사람들은 항상 네, 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바로 앞에 대단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고 사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좋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 부끄러움,
좋은 것을 느끼는 데에서 생겨난 부끄러움.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같은 공간에 서있을 만한 가치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생겨난 부끄러움.
우리 가슴 위에 커다란 주홍글자.(277~278)


도로시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어.
이런 고통, 저런 고통에 시달렸지.
적어도 이제는 평온할 거야.(297)


남자들 여럿이 모이면 그들만의 규칙이 작동한다.
손동작과 시선, 자세, 주고받는 말들과 말 속에 담긴 다중적 의미.
사소한 도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 그렇게 형성되는 위계.(308)


한 문장에 생명과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한 몸에 담아내는 것도.
사랑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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