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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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민음사, 2019


최근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생각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가지고 있는, 혹은 무의식에 주입되어 있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판타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많았고, 그러한 판타지를 걷어 내기 위한 생각들이 많았다.


<단순한 진심>도 그러한 내 안의 화목한 가족판타지를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한 진심>30년 전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인 문주가 철길에서 마주한 철도기관사와 그의 집에서 지낸 1년의 시간이라는 단편적 기억들의 퍼즐을 맞추고자 한국을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배우기도한 문주는 해외입양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아들여, 자신을 구해준, 그리고 입양을 보낸 철도기관사를 찾고자 한국을 방문한다. 뱃속의 아이, ‘우주와 함께.


기억이 너무 단편적이라 찾는 여정이 쉽지 않은 가운데, 숙소 건물 1층의 복희식당주인과의 일화를 통해 또다른 입양인의 사연을 접하게 되고, 과거 30년 전 한국사회에서의 입양 현실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기지촌이 정부에 의해 관리되면서도 그 종사자에 대한 폭력적인 차별은 그들의 2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한국을 떠나 입양되어야 하는 현실.


복희식당의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다.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닌 동거인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가족이었다. 혈연을 나눈 가족에게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들이 서로에게 드리운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고, 우산이 되어주는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도 우리사회의 차별의 벽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부족이었다고 해서 그들의 노력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차별의 벽은 결코 개인이, 그것도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이 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차별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그러한 차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차별을 인식하고 깨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진심>은 내가 가지고 있는 차별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차별에 대해 마주하게 해준다. 몰랐다고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나, 모른다는 것이 더 큰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죄를 모른다는 건, 그 순진함 때문에 언제라도
더 큰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49)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입양인들의 마음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모랐다고 변명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렵게 찾은 가족을 만났는데, 그들이 가난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증오의 마음을 토로했던 어느 입양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혈육을 만나다는 기쁨보다는 버림의 이유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게 작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고통만큼 원가족도 고통 속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두 번 버림받은 느낌일 들 것도 같다.


내가 그리던 가족이 아니에요.
실은 그들이 비참할 정도로 가난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그들에게는 집과 자동차가 있었었요.
언니들은 둘 다 대학 교육을 받았고,
심지어 엄마는 늙은 개까지 키우고 있더군요.
뻔뻔해. 낳아 달라고 애원한 적도 없는데 낳아 놓고는
내 동의나 허락도 없이 먼 나라로 보내 버렸죠.
그랬으면서 개를 키우고 있다니
.그들은 모를 거예요.
내가 하루에도 수 십번씩 그들을 칼로 찌르고 그 시신을 짓밟고
유기하는 상상을 한다는 걸 말이에요.(30)


<단순한 진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차별과 그 차별이 여전히 오늘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가려져 있어 존재하는지 몰랐던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판타지를 마주하고 걷어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테두리에 갇힌 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방향성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홀로 그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때 내 형상은 둥글고 단단한 씨앗 같았을까.
어쩌면 작은 반동에도 속절없이 무너지거나 흩어지는 가변의 물질이었는지도 모르고
아예 형상조차 없는 한 줌의 에너지였는지도 모른다.(7)


어떤 상황을 무대처럼 만들어 상상으로 빚어진 배우에게
내게 닥친 외로움을 전가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전가된 외로움은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었기에
깊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는 좋았다.(15)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 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본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43)


무력한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 신 앞에서는
공허한 협박이 되고 마는 고통의 몸짓들
(87)


50년쯤 되면 말이야, 내가 어떤 놈이랑 엮여 뭘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진탕 처마시고 물 좋고 바람 좋은 데서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세상이 날 보고 늙어 빠진 할망구라고 하대.
그러니 둘 중 하나지, 하나만 남지.
더 마셔서 꿈에서 깨든지, 아니면 다시는 깨지 않을 잠을 자든지.(150~151)


다 소모해 버린 몸을 버리고 이제 곧 무형의 암흑에 도착하게 될 연희는
씨앗이나 연기처럼, 혹은 한 줌의 물질이거나 에너지가 되어
영원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수 십억 년의 진화를 거슬러서, 이 세상에 오기 전
하나의 세포로도 존재하기 이전에 그녀가 그러햇듯이.(235)


나는 암흑에서 왔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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