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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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김경민 지음, 을유문화사, 2019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읽기 전에는 문화재란 당연히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으로써 정체성과도 연결된 가치를 담고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조선 말기, 일제 침략기에 반출된 문화재는 당연히 반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약탈된 문화재이니 당연히 돌려줘야 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니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돌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파렴치한 행동이라 생각했었다.


영국박물관을 우리 손안에 있는 세계(The Whole World in Our Hand)”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면서, 영국박물관의 존재를 자랑스러워 한다.
이는 과거 가장 광대한 제국이었던 영국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지만,
그 유물들의 원소유국 입장에서 보면 영국은
조상들의 유산을 훔쳐가 돌려주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적 성과로 자랑하는 파렴치한 국가일 뿐이다.(7)


저자 서문을 보며 이러한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 확신하며, 탈제국주의 시대에 아직도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궁금증을 풀고자 가벼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강대국의 파렴치함(?)만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편견도 깨져 나가며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문화재는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리와 민족의 연속성이 없는 문화재는 인류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크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야 한반도라는 지역에서 한민족으로 5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지리적으로 민족으로 복잡하지 않은 구조이다보니 당연히 민족주의 관점에서 한반도 문화재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현재의 국경이 고대 문명, 고대 국가의 국경이 아닌 상황에서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문화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또한 문화재라는 것이 근대 국가가 생기며 성립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문화재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한정할 수 있는 명확한 지리적 범위를 가진 국가
그 유물이 담고 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59)


사물을 분류하는 가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조각들이 상류층의 주요 수집품이었지만,
중세에는 기독교 성인들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뼛조각이
훨씬 더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69)


또한 문화재는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과시와 문명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으로 악용되고, 결국 제국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수집하여 제국의 수도에 전시하는 행위는()
과시의 효과를 넘어 식민지의 문명을 유럽의 문명과 비교하여
전 인류의 문화를 하나의 위계질서에 편입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233)


아시리아 사례는 근동지역에서의 문화재 소유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우위를 보여 주고자 했다.(
)
고대 아시리아의 예술과 유럽의 예술을 비교함으로써
서양 문명이 동양 문명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했다.(139)


아시아와 이집트, 중동 지역, 인도와 같이 열강이 눈독 들이는 지역에서
문화재를 수집하고 소유하고 전시하는 행위는
경쟁자를 향한 소유권 주장임과 동시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 국가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문화재가
초기 역사에서는 타국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과 상징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63)


19세기에 들어 산업화의 성공과 함께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서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고, 단순하게 물리적인 영토 소유를 넘어 식민지 지배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문화재 수집과 전시는 제국의 지배를 정당화함과 동시에 제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상징적 기재로 활용되었다.(233)


현재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은 문화민족주의문화국제주의시각이 있으며, 거의 평행을 이뤄 결코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화민족주의는
문화재를 특정 국가의 민족 정신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상징물로 보고,
부당하게 빼앗긴 유물들이 본래 있었던 원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284)


문화국제주의는 문화/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보호하고 향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284)


또한 탈제국주의 시대에 국제법을 통해 문화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협약 이전의일에 대해서는 소급되지 않고, 강제성을 띄지도 않아 여전히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1954<헤이그 협약>) 제국주의 시대가 종결된 후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화재 보호에 관한 법적 기준을
처음으로 성문화한 것으로, 문화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헤이그 협약>은 전시 문화재 보호법이기 때문에
평시의 문화재 보호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252)


<1970 유네스코 협약>은 문화재의 불법적 이동(혹은 매매)의 제재에 관한
국제적 기본 틀을 만든 국제법이다.(
)
80
개국이 넘는 국가가 참여했으나, 강제력이 없는 국제법의 특성상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게는 이 협약을 적용하여 제재를 가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253~254)


<1995 UNIDROIT 협약>은 이전 협약의 한계점인 국내법과 국제 협약의 사법 체계 간 조화를 추구하였을 뿐 아니라 문화재를 국가의 정체성과 연결 짓는 개념인 문화민족주의적 시각을 명문화하여 보다 진일보한 국제법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255)


영국에 문화재를 빼앗긴 국가들은 약탈의 불법성과 비도덕성을 비판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약탈은 불법이지만, 당시 관례에서 전리품 획득은 합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의 국제법 체계상 그것이 합법이었고 관습적으로 이루어진 거이라면, 시대별 법의 효력을 인정하는 시제법의 원칙에 따라 오늘날에 약탈 행위를 불법이라고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261)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는 과거 불법적으로 약탈한 국가에게는 도덕적 성찰과 원소유국과 그 국민에게 과거사에 대한 치유, 심리적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제법학자인 마이클 리파스는 문화재 반환은
원소유국과 그 국민에게 있어 불편한 과거사에 대한 심리적 승리라고 말한다.(
)
한 국가나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겨 있는 물건을 돌려받음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씻어 내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는 것(
)
문화재 시장국가들이 합법/불법의 구분을 떠나
과거사에 대한 성철과 반성이라는 윤리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266)


물론 반론으로 국가와 민족의 연속성이 없는 지역에서 이전 국가와 민족의 문화재를 파괴하는 행위는 이러한 원산국에 반환하여야 한다는 입장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한다.


2001년 이슬람 원리주의를 내세운 탈레반 정권이
아프가니스탄의 4~5세기 불교 유적지인 바미얀 석굴사원을
우상숭배라며 로켓으로 파괴한 사건 또한
이후 문화민족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작용하였다.(294)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는 문화재 원산국과 시장국의 입장이 문화민족주의와 문화국제주의로 팽팽히 맞서지만, 문화국제주의를 주장하는 시장국가들도 문화재를 민족주의 관점으로 활용하고 있고, 심지어는 여전히 제국주의 성과로서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문화재가 지는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와
그에 따른 반환 정당성에 대한 정교한 이론 구축 없이,
단순히 현재의 국경과 민족을 가르는 경계선에 근거한 반환 요청은
영국의 견고한 법적/이념적 방어막을 무너뜨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300)


문화재에 대한 민족주의적 관념에 대해서 영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국박물관은 이미 그 자체로 영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일종의 거대한 문화재가 되었다.(
)
영국박물관을 국가 혹은 민족 문화와 동일시하는()
이러한 동일시에는 영국의 문화우월주의가 깔려 있다.(301)


동일한 문화재(나이지리아 베닌 브론즈)에 대해 매각과 대여 거부라는 일련의 결정은
문화재를 대하는 영국의 태도가,
문화국제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오로지 학문적 목적에만 기반하지 않는
영국의 이중적 태도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311)


영국 스스로 문화국제주의를 구현하는 보편 박물관이라고 주장하는 영국박물관을
인류 문화가 아닌 유럽 문화의 통일성을 구현하는 장소로 표현한 것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와 제국주의적 사고를 반영한다(318)


문화재 반환 문제는 공식적인 절차와 법적 소유권의 개념이 아닌
상호 이해를 통한 양보와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335)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통해 깨진 두 번째 편견은 우리도 타국의, 타민족의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말기와 일제 침략기, 한국 전쟁이라는 혼란기에 문화재를 빼앗긴 국가로써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려주지 않은 문화재가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도 문화재를 반환해 줘야할 입장에서 예외일 수 없다(
)
실크로드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재는
1500여 점에 달하며, 그중 50여 점이 벽화다.
심지어 이 벽화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자랑한다.(
)
슽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른 일본()
중앙아시아 수집품을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부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컬렉션은 바로 이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로,
일본이 패전으로 조선에서 철수하면서 총독부 박물관에 남기고 간 것을
대한민국 정부가 인수한 것이다.(336)


우리의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소유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문화재부터 돌려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빼앗긴 다 돌려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걸 돌려주지 않는다는 건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를 한 번 읽었다고 해서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더 많이 남았고, 여전히 정리되지 못하고,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잘못된 편견을 깰 수 있어서 좋았고, 지속적으로 탐독을 한다면 문화재를 소유권이라는 좁은 분야를 넘어, 문화재를 확보하기 위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상황 등 당시의 시대상도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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