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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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공선옥 지음, 창비, 2019


유복하지 않지만 화목한 가정


요즘의 자기소개서에도 등장하는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이 말은 자기소개서에서 공식과 같은 말이었다. 어린 시절의 어렵고 힘든 가정사를 긍정적으로 포장해주는 혹은 사소한 것으로 바꿔주는 마술과도 같은 말이었다. 나 역시 화목한 가정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가족간에 큰 마찰이나 문제 없이 함께 모여 다정다감하게 사는 것이란 어림치의 이미지만 갖고 사용하였다.


때로는 정말로 화목한 가정이라 할 수 있을까 자기검열을 하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정을 이루면 유복하지 않지만 화목한 가정이라는 단어에 자괴감이나 자기검열이 들지 않도록 정말 화목한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많은 가족들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화목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고, ‘화목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는 대체로 비슷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보통 삼대의 가족이 함께 살거나 자주 왕래하며 살고, 서로가 큰 마찰 없이 서로 도우며 화기애애하게 살아가는 모습, 가족 간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양보와 절충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는 모습을 화목한 가정으로 그리고 있었다.


저마다의 개성이 다른 인간이 모인 집단으로 최소 단위인 가정도 저마다 다를 수 있음에도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아마도 TV 드라마 속에 비춰진 화목한 가정이라는 판타지가 작용한 건 아닐까 싶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은 절대악과 절대선으로 구분되고, 이로 인해 많은 갈등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갈등은 언제나 해결가능한 문제이다. 대체로 절대악이 절대선으로 전향하거나,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됨으로써 권선징악의 해피앤딩으로 귀결된다.



현실에서 가족 간의 갈등과 마찰은 쉬 봉합되거나 해피앤딩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친구나 동료와의 갈등보다 가족 간 갈등의 골이 더 깊다는 것을 안다. 이웃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평생 얼굴 마주하지 않고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는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혹은 어떠한 조건들로 인해 절대로 화목한 가정이라는 판타지적 이미지에 접근할 수 없는 가족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이미지화 된 화목한 가정을 기준으로 화목하지 않은 가정’, ‘불행한 가정으로 딱지를 붙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이라는 판타지를 깨고 다른 사람, 다른 가정에 대해 가치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은주의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은주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화목한 가정이라는 이미지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반드시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모두가 저마다의 어려움 속에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연에 가슴 아파지고, 이들을 통해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는 한편 나는 <은주의 영화>에 소개된 8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화목과 불행이라는 엉터리 이분법으로 이들을 불행한 가정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각인된 판타지는 쉽게 깨지지 않음을 절감했다.



현실의 어려움 일상이 늘 우울하거나 암울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은주의 영화>에 소개된 8편의 소설 속 주인공 들은 저마다 아픔이 있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결코 가볍게 웃을 수 없었다.


행사 작가 K<대낮의 매운탕>이라는 작품을 아주 오래전 발표한 후 소설은 쓰지 못하고 잡문만 쓰면서 살고있을 즈음 <대낮의 매운탕>이라는 소설 제목으로 인해 식도락가의 전국 맛집 탐방행사에 매운탕 전문 작가로 섭외된다. 그리고 회는 매운탕 다음에 나오니 매운탕 전문 작가는 회도 잘 알 것 아니냐며 회 투어 행사에도 섭외된다.


섭외 당시 작가 K<대낮의 매운탕>은 매운탕과 관계 없이 암울한 시절을 극복하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이기에 행사 섭외를 미덥지 않게 생각했지만, 행사비를 받은 이후 회 투어에서는 책도 찾아보고, 직접 전어회도 먹으며 전문 작가이미지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부탁을 받았으니, 지난번 매운탕 행사에 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공부를 미리 해둬야 할 것 같았다.(
)
전어 횟집 순례객들 앞에서 매운탕 전문 작가는
회 전문 작가로 변신해야 할 것이다.(
)
회 전문 작가가 그들과 같은 양의,
같은 깊이의 정보만을 나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명색이 전문작가가 아니냔 말이다. (17)


그러나 전어 회는 매운탕이 나오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실소가 나오면서도 마음껏 미소지을 수도 없었다.


K는 부지런히 전어회를 씹는다.
부지런히도 씹어보고 천천히도 씹어본다.
이리저리 살펴도 본다.
이번에 뛰는 횟집 탐방 행사는
지난번 매운탕 때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씹는다.
이제 곧 매운탕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어회는 매운탕이 안나온다는 것을
회를 먹고 나서야 알았다. (19~20)


<은주의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 만화 속 노래가 들려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멜로디가 들리는 듯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어려운 상황과 오버랩되며 씁쓸해지기도 했다.


, 그러면 내가 노래해줄까?
개구리 소년 빰빠바 개구리 소년 빰빠바
니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빰빠바 피리를 불어라 빰빠바
……계속 운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음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빙하 타고 내려와 음음 친구를 만났지만
일억년 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픈 엄마 찾아 모두 함께 나가자
아아아아 외로운 둘리는
……계속 운다(121)


8편중 <은주의 영화>는 일종을 씻김굿같기도 했다. 카메라로 찍은 화면에 빨려들어 영상 속 화자가 내가 되고, 현실에서의 내가 영상 속 화자가 되는 체험. 이모 상희와 이웃집 친구 철규가 되어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일들을 쏟아내면서 아파하고, 묻어둔 말을 꺼냄으로써 위로받고 위안 삼는 씻김굿과 같다고 느꼈다.


이모가 웃었다. 분명히 카메라 속에서 이모가 웃었는데
현실에서의 나도 웃고 있었다.(
)
카메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숨을 쉰다.
카메라가 큰 숨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카메라 속에서 카메라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카메라 속에서는 카메라가 필요 없다는 것을.
카메라 속에서는 내가 카메라이고 카메라가 이모다.
나는 이제 이모가 되었다.(82~83)


그놈들이 바지를 추켜 입으면서 그래.
죽이기에는 애가 둘이나 있다고. 애들 봐서 죽이지는 못하겠다고.
철규가 나를 살렸어.
내가 숲에서 나왔을 때 철규가 은주를 업고 기다리고 있더라고.
철규는 울지 않았고 은주도 울지 않았다고.
나도 울지 않았지. 다만 갈매기만 울드만, 파도만 울드만,
우리는 결코 울지 않았다고, 철규도 나도 아무 소리 안했어.
그냥 가만히 있었어, 울지도 않고, 그것이 다여.
자네 안 들어오는 동안 우리한테 그런 일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암것도 아니라고, 살았으면 된 거라고.(125)


쇠고랑을 차는 한이 있어도, 내가 이 말을 해놓고
죽는 한이 있어도 말을 해야겠지, 말을.
철규야, 이 엄마를 용서해라. 그리고 이 엄마를 잊어버려라.
나도 인자부터 너를 잊어버릴 테다,
잊어버리고 새 인생을 살아갈 거다.
너도 다 털어놓고 훨훨 날아가라, 니 가고 싶은 데로 날아가라.
우리 인생에는 그런 시기가 있단다. 막 미쳐 돌아가는 시기가 말이여이.
남한테 절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한 시기가
있는 모냥이여, 우리 인생이.(122~123)


나도 말해야겠네. 진짜 말 못했는데,
울 아부지 제삿날 우리 은주한테도 못한 말을 철규한테 할라네,
우리 아들 철규 앞에서는 할라네.(123)


 화목한 가정이라는 내 안의 판타지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된 <은주의 영화>를 다 읽고 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아픔을 쉽게 동정하거나, 용기랍시고 이겨내라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동정이나 위로는 나의 가치판단이 개입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 가치판단이 들려 할 때마다 꺼내봐야 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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