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았다, 그치 -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 시드앤피드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좋았다, 그치,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시드앤피드, 2019

 


오늘의 삶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건 삶에 끝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다. 태어나고 죽는 것 사이에 우리의 삶이 있기에 삶은 살아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나간 시간이 되돌아 오지 않고, 다가올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이 순간을 살아내는 일상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삶이 영원하지 않듯, 한 사람에 대한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별로 향하는 과정이다. 매 순간 이별을 염두하고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오늘의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싶다.


 

너무 끓이면 까맣게 타 쓴맛만 남고
다 식고 나면 쉽게 깨져 조심해야 하는,
그렇지만 깨진 파편까지도 달콤한 그거.(
)
달고나 말고, 사랑.(23)



물론 고통 없는 이별은 없다. 이별 후에 찾아오는 고통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고,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도 든다. 그렇지만 이별의 고통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또 다시 사랑하고 있다. 물론 또 이별이 찾아오겠지만


 

<참 좋았다, 그치>는 상대의 사랑이 변해 이별을 직감한 순간부터 이별과 함께 찾아온 고통의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지난 사랑을 떠올리며 이별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았다. 에피소드가 시간적 연속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에 대한 사실적 표현으로 인해 마치 한 권의 일기장을 보는 듯했다.


 

사실 그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어제 우연히 발견한 카페의 기막힌 라떼라든가,
우리 둘이 함께 알고 있는 친구에게 생긴 귀여운 사연이라든가,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참 뿌듯했던 일.
모든 것들이 하루 사이에 부질없는 이야기가 되었다.(44)


 

48.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려줄 열차가 도착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이란다.
전광판의 글씨들이 아른아른 번져갔다.
문득 내가 다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딱 저 정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족하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시간.(63)


 

어리석었다. 애쓰지 말았어야 했다. 안 보이면 잊혀지도록,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도록.
선명하게 새겨 놓은 기억이 자주 아파 하루는 울었고,
울고 나서 개운해진 마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냈다.

그 후에는 또다시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들이 반복되었다.(71)


 

어찌 되었든 내게도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네요.
그 사람이 무뎌지는 날, 그립지도 아프지도 않은 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수많은 밤들을 함께 울고 웃었던 걸까요.
뜨거웠던 그때의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을까요.(188)


 

여고 시절, 친구들과 식당에 갔을 때였다.
멋있는 직원이 냄비에 담긴 음식을 가져다주었는데,
그가 잡은 냄비 손잡이를 나도 한번 잡아보고 싶다며 손을 댔다가 데인 적이 있다.
좋아하는 감정이란 그런 것 같다. 뜨거울 거야, 데일 거야, 아플 거야,
나를 위한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222)


 

다정한 연인의 연애시절을 기록한 사진 같은 일러스트는 이별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와 대비되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어디든 나홀로 있을 땐 그저 흔한 일상이겠지만, 연인과 함께 있다면 그 흔한 일상도 특별한 순간으로 느껴지듯 일러스트 속 연인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이별의 에피소드와 대비되며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별로 인해 생긴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흉터 없이 잘 아물 수 있도록 마음을 보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는 누군가 대신해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렇게 흉터 없는 상처를 통해 더 아픈 사랑(?), 후회 없는 사랑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위로는 일회용 밴드 같은 거라서
잠시 달래줄 뿐
결국 새살을 돋게 하는 일은
스스로의 몫.(1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