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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일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 북노마드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서점의 일』, 북노마드 편집부 엮음, 북노마드, 2019
취미란에
“음주가무” 대신 독서라고 거짓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진짜 독서가 취미가 되면서부터 한 번쯤 들었던 생각들이 있다. 첫째,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것. 둘째, 좋아하는 책과 늘 함께 할 수 있는 서점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것. 물론
둘 다 어려운 과제들이나, 여전히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다.
책과
늘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꼭 서점이 아니라, 도서관도 있다. 그런데
유독 서점이 끌리는 이유는 도서관은 나의 주도성을 갖기 어려운 공적인 영역의 일로 여겨지고, 서점은
나의 주도성이 보장(?)된 자유로운 영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점 운영은 은퇴 후 꿈꾸는 귀농귀촌의 ‘도시’ 버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건물주’가 아닌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임대료’의 압박을 생각한다면 서점은 여느 자영업보다도 어려운 일이란
생각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평생 꿈으로만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생각했다.
북노마드의
<서점의 일>은 전국 9곳의 독립서점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점의 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 1956년 이후 3대째 ‘비즈니스’의 기본을 지키며 운영하고 있는 강원 속초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
2. 마을의 빵집처럼 주민과 함께하는 여행서점인 서울 중랑 <바람길> 박수현 대표.
3. 멸종위기인 ‘밤수지맨드라미(연산호)’와 ‘책’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제주 우도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이의선
대표.
4. 책을 메인으로 남해와 어울리는 공간을 만드는 경남 남해 <아마도책방> 박수진 대표.
5. 책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우연히 모이는 공간, 서울 마포 <어쩌다 책방> 김수진 디렉터, 윤지희 매니저
6. 글 ‘서書’, 길 ‘로路’. 책으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의 서울 마포 <책방 서로> 고영환 대표.
7. 독립 서점 기반의 로컬 플랫폼을 꿈꾸는 ‘도시인문학 서점’인 서울 마포 <책방 연희>
구선아 대표.
8. 변질되어버린 ‘취미는 독서’라는 말이 제
뜻을 되찾길 바라는 부산 해운대 <독서는 취미> 김민채
대표
9.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 서울 관악 <하얀정원> 홍예지 대표, 홍예린 매니저
독립서점을
운영하게 된 동기와 구체적인 서점의 하루 일과, 책을 고르는 서점의 운영 원칙 등 7가지 공통 질문과 6~7개의 개별 질문을 통해 서점이라는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일과 각각의 독립서점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1. 독립 서점을 운영하게 된 혹은 일하게 된 동기
2. 서점의 구체적인 하루 일과
3. 책을 고르는 기준, 서가 운영 원칙
4. SNS를 통한 고객과의 커뮤니테이션, SNS 핵심 스토리텔링
5. 기대했던 것과 달리 어려운 점,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스트레스
6. 책과 독자의 관계를 위한 제안
7. 앞으로의 책방/서점 문화에 대한 전망
<서점의 일>을 읽으며, 나 역시 ‘서점의 일’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점의 일’을 마치 ‘대학
캠퍼스의 낭만’이나 ‘귀촌 생활의 여유로움’과 같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품고 있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도 엄연히 고객을 맞이하는 ‘비즈니스’ 공간으로써 일상의 일들로 채워져 있으며, 생존을 위한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하는 치열한 경영현장임을 깨달았다.
자영업으로서의 노하우
매일 청소해서 매장을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것.
하루하루 매출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단기간에 열정을 쏟는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천천히, 열정을 미지근한 온도로 분배해야 하는 것.
-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34쪽)
‘독립서점이나 독립출판문화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책방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아마도책방>의
박수현 대표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내가 가진
환상을 깨고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방을 하면 생각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책 한 권을 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지,
얼마나 자주 재고를 확인하고 주문하고 정리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환상과 선입견
(좀더 구체적으로 써보면 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한가하고 여유로워서
매일 아침 향긋한 커피를 내려 마시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을 거라는 생각)에 시달리는지,
혹은 본인도 지금 그 환상을 가지고 책방을 바라보는 건 아닌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먼지가 서가에 쌓이고 얼마나 자주 그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지
- <아마도책방> 박수진 대표(128~129쪽)
또한
독립서점을 이용하는 고객으로써 나의 ‘얄팍한’ 마음에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온라인 서점의 영향으로 10% 할인된
가격이 본래 책값이라 생각하던 ‘얄팍한’ 마음과 온라인 서점의
신간 위주의 책추천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던 ‘얄팍한’ 마음에 뜨끔했다. 앞으로는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해서 절대 빈손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할인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거든요.
그런데 대형 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할인해달라고 안 하잖아요.
카페에서 카피를 할인해달라는 사람도 없고요,
온라인 서점의 영향 때문인지 책이란 당연히 할인해서 구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게 좀 아쉬워요.
- <책방서로> 고영환 대표(163쪽)
서점을 공유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은 무료로 보는 것이다,
서점은 책을 사지 않아도 드나들어도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도서관의 역할이에요.(…)
서점에서 거의 화보를 찍듯이 사진을 찍거나,
책은 사지 않은 채 온갖 책 사진을 찍는 사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손님을 마주할 때는 힘이 들어요.
- <책방 연희> 구선아 대표(172~173쪽)
독립서점은
현재 꾸준히 늘고 있다. 기존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을 대체할 정도의 ‘파괴적’ 힘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존속적 혁신’에 잠식될 우려도 있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뉴노멀’ 시대에 가계 소비는 줄어드는 ‘수축 사회’가 예상되고, 유투브
등 영상미디어의 발달로 1인당 독서량도 계속 줄어들고 있어 독립서점에게는 더욱 어려운 시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책방의 역할은 책을 팔고 사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빵집처럼 주민과 함께하는 곳이라는 것.
– 바람길 박수현 대표(42쪽)
좋은 책을 찾는 책방지기의 마음과
자신의 책을 소개할 책방을 찾는 작가의 마음이 닮았다고 생각해요.
- 밤수지맨드라미 북스토어 이의선 대표(78쪽)
책방은 ‘책을 사는 공간’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는 공간’, ‘친밀한 소통의 공간’,
‘지역 문화 교류의 장’으로서 역할도 겸하고 있어요.
- 아마도책방 박수진 대표(114쪽)
‘취미는
독서야’라고 당당하고 즐겁게 말하자고 제안하고 싶었어요.
‘취미는 독서’라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우스꽝스럽게 변질되기도 했고,
‘취미는 쓰세요’라는 칸에 독서를 적는 것은 쉬운 일이자 동시에 어려운 일이니까요.
- 취미는 독서 김민채 대표(198쪽)
나를 책방 창업으로 이끈 것은 삶을 대하는 책방 주인들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차린 회사에 취직하는 대신 스스로 ‘내 일’을
만드는 태도.
망할 가능성이 크지만 해보고 싶은 일을 용기 내어 시작하는 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나가는 태도.
- 취미는 독서 김민채 대표(249쪽)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 무궁무진한 이야기 주머리를 열어 탐색하는 것,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에 대한 해석을 활발히 교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얀정원 홍예지 대표, 홍예린 매니저(226쪽)
사람들이 책방/서점을 방문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입니다.
갑자기 뜨는 시간 혹은 여가 시간에 전시를 보러 가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이제는 책방/서점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며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것입니다.
- 하얀정원 홍예지 대표, 홍예린 매니저(230쪽)
가게라는 공간은 ‘핫플’이 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장소를 개방하고 그곳에 모이는 손님에게 무언가 길을 제시하는 것도 가게의 일이다.
-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273쪽)
독립서점은
‘관계’를 만드는 거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점과 책, 책과 독자, 독자와
작가가 만나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써의 독립서점.
또한 독립서점은 ‘문화’를 만드는 공간이란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으로써가 아니라 자리한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 독립서점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서점의 일>을 통해 책을
읽으며 갖게 된 두가지 ‘버킷리스트’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독립서점, 독립출판과의 관계 맺기, 지역사회와의 관계
맺기를 통해 책을 매개로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 ‘내가
제안하고 싶은 공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세상이 내게 요청하는 일들을 의심해야 한다.
그 일의 상당수는 그들의 편리와 필요를 위해서다.
그 일에 내 삶을 저당 잡혀서는 안 된다.
-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273쪽)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 밥 딜런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