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을유사상고전
묵자 지음, 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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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묵자 지음, 최환 옮김, 을유문화사, 2019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공자, 맹자, 순자, 노자 등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묵자는 생소했다. 그러나 한비자 <현학>에서 세상에서 잘 알려진 학파는 유가와 묵가다. 유가의 시조는 공구이며, 묵가의 시조는 묵적이다라고 이야기 하며, 당시에는 유가와 묵가가 널리 퍼졌다고 한다.


묵학은 일찍이 선진 시기 현학중의 하나였는데, 당시에는 묵학에 대한 언론이 천하에 가득하였다”. 이를테면 한비자 <혆현학>에서 세상에 잘 알려진 학파는 유가와 묵가이다. 유가의 시조는 공구이며 묵가의 시조는 묵적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묵가 학설은 당시에 광범위하고 깊은 영향을 끼쳤으나, 그 후에 날로 쇠락하였는데, 그 원인은 우선 묵가 사상과 통치 계급과의 이익 충돌이 갈수록 심해졌기 때문이다.(P1211)


을유문화사의 묵자는 1200페이지로 두께부터 만만치 않았다. 과연 끝까지 읽는다는 것이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우선 묵자에 대해 생소하여 1203페이지에 실린 해제부터 읽었다.


해제는 묵자라는 사람과 묵자라는 책으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묵자라는 사람은 성명은 묵적이고, 공자와 맹자의 사이의 시대를 살았으며,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났고, 노동 계급의 장인 출신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여씨춘추 <박지>에서는 공구와 묵적을 병렬하여 묘사하였는데, 공구의 성이 공이고, 이름이 구라는 사실로 볼 때 묵적도 당연히 성이 묵이고 이름이 적임을 알 수 있다.(P1203~1204)


우리는 묵자와 공•맹의 관계로부터 비교적 정확한 생졸년의 범위를 얻을 수 있다. 공자는 살았을 때 묵적을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이로부터 묵적의 활동 연대가 공자의 뒤임을 확정할 수 있다. 이 밖에 우리는 묵자 안에서 맹자를 언급한 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는데, 맹자가 일찍이 사방을 주유할 때 묵적의 학설을 대단히 격렬히 공격한 적이 있었으나, 묵적은 오히려 그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묵적의 활동 연대가 맹자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묵적은 공자(기원전 551~기원전 479) 뒤에 태어나 맹자(기원전 372~기원전 289) 출생 전에 죽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P1206)


적지 않은 학자는 묵자가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묵적은 노동 계급의 장인 출신으로 학습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일가의 학문을 만들어 겸애비공등의 사상을 주장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제자가 따르는 스승이 되었다.(P1207)


묵자라는 책은 총 71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현재는 53편만 남아있다고 한다. 53편의 내용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1. <친사>, <수신>, <소염>, <법의>, <칠환>, <사과>, <삼변> : 묵자의 초기 사상이며 유가 학설에서 벗어난 후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 <상현>, <상동>, <겸애>, <비공>, <절용>, <절장>, <천지>, <명귀>, <비악>, <비명>, <비유> : 묵가학파의 대표작으로 일반적으로 <비유>를 제외한 나머지 열 개의 이론을 묵자 십론이라고 한다.


3. <경 상>, <경 하>, <경설 상>, <경설 하>, <대취>, <소취> : <묵경> 혹은 <묵변>이라고 하며, 묵자가 창작한 변론학이나 후학들의 견해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4. <경주>, <귀의>, <공맹>, <노문>, <공수> : 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묵자언행록으로 간주하여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5. <비성문>, <비고림>, <비제>, <비수>, <비돌>, <비혈>, <비아부>, <영적사>, <기치>, <호령>, <잡수> : 침략적인 불의의 전쟁을 반대한 묵자가 전하는 11편의 방어 전법서이다.


춘추전국시대, 전쟁이 일상인 시대에 묵자는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비열한 침략전쟁에 반대하고, 방어전략의 병법 11편을 남겼다. <비성문>, <비고림>, <비제>, <비수>. <비돌>, <비혈>, <비아부>, <영적사>, <기치>, <호령>, <잡수>이다. <비성문>은 일종의 수성전에 대한 병법서로,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어떻게 성을 지킬 것인지 매우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비고림>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공격하는 것을 막는 방법인데, 이 또한 매우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나하나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너무 꼼꼼히 적혀 있어 이대로만 한다면 지키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묵자는 정의로움상현’, ,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숭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신분보다는 능력 위주로 우대하여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겸애사상을 주장한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전쟁을 반대하는 비공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정의로움à 현명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숭상하는 상현à 운명론을 반대하는 비명à 서로 사랑하는 겸애à 전쟁을 반대하는 비공à 불필요한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절검’, ‘절장à 유가를 반대하는 비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묵자가 유가를 비판한 이유는 첫째, 상례, 혼례 상의 친소존비차별, 둘째, 완고하게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셋째, 번거로운 예약, 넷째, 옛것을 중시해야 어질다고 주장하는 것. 다섯째, 처세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유가들은 친척을 사랑하는 데도 차등이 있고,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는 데도 등급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친하고 먼 사람과 높고 낮은 사람의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친하고 먼 관계로써 상을 입는 기간을 정하면 친한 사람에게는 기간을 길게 하고 먼 사람에게는 기간을 짧게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내와 적자의 복상 기간을 부모와 같이 하였다. 만약 높고 낮은 관계로써 기간을 정하면 그들은 아내와 아들을 부모와 같이 높이면서 백부와 종족 내의 형들은 서자와 같이 보았으니 상리를 위배함이 이보다 크겠는가(P607~608)


또한 완고하게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의론은 이렇게 말한다.
장수와 단명, 빈공과 부귀, 안전과 위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본래 천명에 달려 있어 줄이거나 늘일 수 없다. 궁생과 통달, 상과 벌, 행복과 불행은 이미 정해져 있어 사람의 지혜나 힘으로는 바꿀 수가 없다.” 많은 관리가 이것을 믿게 되면 자신의 직분에 태만해질 것이며, 서민들이 이것을 믿으면 자신이 하는 일에 태만해질 것이다. 관리들이 부지런히 다스리지 않으면 어지러워 질 것이며, 서민들이 농사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가난해질 것이다. 가난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은 정치의 근본을 위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가들은 그것을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는 천하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다.(P612~613)


당대에는 유가와 쌍벽을 이룬 묵가이지만, 역사는 유가의 승리(?)로 유교로써 대우를 받는 반면 묵가는 잊혀지고 지워졌다고 한다.


유가는 공자 뒤에 맹자나 순자 등 유명한 사상가들이 있었지만, 묵자 뒤에는 뛰어난 계승자가 없었다. 한나라 무제가 동중서의 제자백가를 물리치고 오로지 유가만을 존숭한다는 의론을 채택한 결과, 묵학을 천백 년 동안 침체의 늪에 빠지게 하였다.(P1211)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은 이미 태어나면서 결정된 것으로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과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분제 사회에서 묵자는 운명론을 반대하는 비명을 주장하였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지배계급에서는 당연히 신분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통치하는데 편할 것임으로 묵자의 사상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되었을 것 같다.


지금은 신분제 사회도 아니지만,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금수저’, ‘흙수저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기에 변형된 신분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말로만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지만 딱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2500년전 묵자의 주장이 더욱 가슴에 남는다.


옛날 왕공대인은 국가를 다스림에, 모두 국가가 부유해지고 인민이 많아지며 형법과 정무가 다스려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국가는 부유해지지 않고 가난해졌고 인민은 많아지지 않고 적어졌으며 형법과 정무는 다스려지지 않고 어지러워졌으니, 본래 바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싫어하는 것을 얻었는데,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묵자께서 말씀하셨다.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간에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운명이 부유할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부유해지고,
운명이 가난할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가난해지며,
운명이 많아질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많아지고,
운명이 적어질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적어지며,
은명이 다스려질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다스려지고
운명이 어지러워질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어지러워지며,
운명이 장수할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장수하고,
운명이 요절할 거라고 정해져 있으면 요절한다.
비록 강한 힘이 있을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

지금 천하의 관리들이 내심 진실로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를 제거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운명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말은 강하게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운명은 폭군들이 만든 것이며 궁한 사람들이 얘기한 것이지 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다. 지금 인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살펴서 강하게 반대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P555~605)


묵자, 한번 읽는다고 묵자의 모든 사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께에 눌리지 않고, 철학에 눌리지 않고 느리지만 나만의 속도로 완독하고자 목표했는데, 나름 속독을 하며 묵자의 겸애’, ‘비명’, ‘비공사상에는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고전은 문맥보다는 행간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니, 앞으로 묵자도 행간을 읽어낼 수 있도록 반복해서 읽자고 다짐해본다. 여타 고전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쓰여졌다면 묵자는 사례와 함께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쓰여져 있는 부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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