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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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지1, 김진명 지음, 쌤앤파커스, 2019


잘려진 귀, 피를 발린 듯 목에 난 네 개의 송곳니 자국, 등 뒤로부터 심장을 관통한 철창. 참혹한 사건 현장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전해져 전율하게 됨과 동시에 이 기괴한 흔적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함을 풀어내고 싶다는 조바심에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종교의식 같은 흔적은 원한과 치정의 의한 살인도 아니고,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이라기에는 너무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기에 더욱 기이했다. 종말론을 믿는 사이비종교의 희생양이라고 하기에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살인을 접하면 그 잔혹함에 치를 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살인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살인의 이유가 없이 그저 살인을 위해 살인을 한다면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직지의 살인사건은 그 둘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듯 보여 더욱 기이했다.


돈이든 원한이든 치정이든 살인의 동기와 상관없이 실제 살해수법은 서투르기 마련이었다. 운 좋게 단 한 번에 칼이 심장을 파고드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거개의 경우 피살자들은 서투른 칼질에 여러 번 찔리기 마련이었고, 따라서 찔린 부위는 난삽하고 시신에는 저항의 흔적이 남는 경우가 허다했다.(P17~18)


청부업자란 은밀하고 감정이 없으며 정체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남기지 않는 법인데, 귀를 베어낸 건 그렇다 치더라도 피를 빤 흔적을 남겼다는 건 프로페셔널 킬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행위였다.(P18~19)


피해자는 퇴직한 서울대 라틴어 교수. 퇴직 후 거의 서재에서 나오는 일이 드문 평범한 노교수. 원한이나 치정에 얽혀 있지 않은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사건.


계획된 살인은 원한이나 복수나 치정 셋 중 하나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이 사람은 그 어느 것과도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이로 보아 보복을 부를 만큼 격렬한 치정에 휩싸일 사람도 아니었고, 전직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원한이나 돈에 얽혀 이런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P20~21)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기자 기연의 시선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첫번째 연결고리는 라틴어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교황의 편지, 직지로까지 연결되었다. 사건의 진실에 한 발 다가서기 보다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직지.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심경. 그런데 직지심경은 잘못된 이름이라고 한다.


직지? 직지심경 말인가요?
직지심경이란 명칭은 쓰면 안 돼요.”(
)
정식 명칭은 더 길어요.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니까.
직지란 곧바로 가리킨다는 뜻이고 심체란 마음의 근본이란 뜻이니, 제목을 그대로 풀면
백운화상이 기록한 마음의 근본을 깨닫는 글귀가 되겠지요.” (P46~47)


서울대학교, 서원대학교, 중앙일보, 직지심체요절 등 실제 지명과 고유명사들이 나오니 소설 직지에서 이야기하는 고유명사들이 실제 고유명사인가 싶어 자꾸 검색하게 되었다. 상징살인을 설명한 책, 이안 펨블턴의 <살인의 역사>를 검색하자, 피테르 스피렌부르그가 쓴 <살인의 역사>가 검색되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1377년 주물사주조법으로 만들어진 직지와 1455년 활자제작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구텐베르크의 성서. 같은 듯 다른 이 둘 사이, 78년을 연결하는 고리는 1444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필사업자가 주물사주조법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하였다는 기록 문서의 발견이었다. 또 다시 시작된 검색. 미궁과 같은 혼돈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10021322001


직지는 나무에 글자를 새겨 이것을 주물사라는 모래 속에 넣었다 뺌으로써 모래 속에 글자의 음각이 남도록 하고 탕로를 만들어 거기에 쇳물을 붓는 방식으로 활자가지쇄를 완성하는, 재미있고도 신기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P86)


 구텐베르크와 직지의 금속활자는 주조방식이 다릅니다.
구텐베르크는 단단한 재질의 금속막데에 글자를 솟아오르게 새긴 후 이를 연한 재질의 금속에 대고 두들겨 글자 모양을 각인했습니다.
그런 다음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들었는데, 직지는 이와 달리 나무로 글자를 만들어 모래 속에 넣어 공간을 형성하고 거기에 쇳물을 부어 굳힙니다. (P92)


그리고 다시 이어진 스트라스부르대학의 폰 피셔 교수와의 연결. 스트라스부르-아비뇽-바티칸의 연결고리 카레나라는 이름. 카레나를 찾는 과정에서 노교수의 기이한 죽음의 실체를 밝히 듯하지만 다시금 멀어지고, 사건이 발생한 노교수의 서재에서 마무리되는 1권을 덮으며, 현재와 과거, 한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긴 여정의 여행을 한 듯하다.


단순한(?) 살인 사건에서 시작해 스트라스부르와 아비뇽을 돌아, 14세기 고려와 유럽을 훑고 다시금 현재의 살인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 지금, 여전히 살인 사건의 실체는 오리무중이고, 퍼즐처럼 흩어져 있는 조각들이 어떻게 맞춰질지, 앞으로 또 어떤 퍼즐들이 나와 채워질지 기대된다.


끝으로 아비뇽에서 카레나를 찾는 과정에서 방문하게 되는 라벤더 정원으로 유명하다는 세낭크 수도원을 검색해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버킷리스트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Senanque Abbey (Provence, France)


"흐흡."
기연은 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각이라 하마터면 위에 담긴 음식을 게워낼 뻔했던 것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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