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허영선 지음, 마음의숲, 2019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은 옿1947년부터 1954년까지 77개월간의 제주 4.3항쟁으로 인해 이유도 모른 채 받은 총격에도 불구하고 생존한 피해자들과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파도 아프다고 평생 말하지 못한 생존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가슴아프게 전해진다.

194921, 시퍼렇게 칼 선 성산포 터진목 집단학살터 현장이었어. 영문 모르고 끌려 나온 수많은 인근 마을 사람들과 함께였어. 젊은 엄마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꼬옥 품에 안고 바람 부는 모래밭에 나왔다지. 당연히, 설마, 쏘랴 하셨겠지. 하늘을 뚫고 탕탕탕, 순간 몸을 관통한 총알에 엄마는 아기와 함께 스러졌지. 피범벅이 된 엄마의 가슴에서 하늘을 찢는 세 살배기의 겁 질린 울음이 곤드박질쳤어. 엄마의 피 가슴을 쥐어뜯던 아기가 꼬물꼬물 모래밭에서 버둥거렸어. 가슴과 양쪽팔에 세 발의 총알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아기가 본능적으로 기어나왔던 것이지. 그러자 멀리서 다시 쏘았어. 그런데도 아기는 죽지 않았어. 그러자 다시 쏘려던 토벌대는 이놈은 하늘이 살린 놈이다. 죽여선 안 되겠다그랬다지. 아기는 당시 성산초등학교 앞에 살던 고모한테 강제로 맡겨졌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은 그때 의약품을 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잘 키우라 했다지.(P252-253)


, 그땐 봄이었습니다. 고사리가 너무 좋았어요. 지천에 깔렸어요. 난 벗들이랑 매일매일 새벽부터 들에 나가 고사리를 꺾었습니다. 생고사리는 열네 살에겐 정말 무거웠어요. 등짐 져 나오는데 친구들은 다들 자기네 집에서 마중 나왔어요.
근데 우리 집에선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앋았던 겁니다. 왜 나만 마중 오지 않느냐고 집에 와서 막 울었어요. 그런데도 뒷날은 또 갔어요. 한 포대기 등에 지고 오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
멀리서 우리 아버지가 뒷짐 지고 겅중겅중 마중 오고 있었어요. , 우리 아버지구나, 난 속으로 기벘뻤어요. 아버지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어요. 그때 저 동쪽으로 순경들이 발 하나 가득 보였어요. 순경 10여 명이 팍팍 날아왔어요. 팡팡 쏠 것 같아서 난 무서웠어요
……
밤이 캄캄해도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어요. 동네 사람들도 형님만 안 보인다고 찾으러 다니고. 초하루 달이 불그스름하게 져올 때 …… 가서 보니 아버진 구덩이를 이만큼하게 파놓고 거기에. 얼마나 못 견뎠는지 꽝꽝한 조밭을 막 손톱으로 판 흔적이 보이는 겁니다. 피만 졸졸 나고 있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야.……
나 때문에 고사리 마중 나갔다가 죽었다고 막 소문 파다했어요. 장례를 치르고 나니 가을 들었어요. 난 고사리가 정말 지긋지긋합니다.(P20-21)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을 통해 제주 4.3항쟁을 마주하면서 나는 80년 광주민중화운동이 떠 올랐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누구도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신문에서도 티비에서도.


고등학교까지 역사과목을 좋아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작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은 줄줄이 외우고 각각의 왕들의 재임시기에 있었던 일들은 연도까지 줄줄이 외우면서도 정작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부분과 반쪽짜리에 불과한 내용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를 알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많은 책들을 탐독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고,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제주 4.3항쟁을 마주하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제주 4.3항쟁은 광주 5.18과 같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학살 사건이면서 77개월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자행된 학살이라는 면에서 더 충격적이었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보다도 더 오랜 시간 동안 자행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제주 4.3 항쟁도 수많은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누구에 의해 왜 자행되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고, 아직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감내하며 참아내는 생존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소중한 가족이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묻지도 못하고, 연좌제라는 덫이 있어 희생자의 가족이라는 이야기도 못하는 생존자들의 아픔은 세월로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면 잃어버린 다리에도 고통이 느껴져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있는 다리가 아프다면 움켜쥐고 주물러보기도 하겠지만 잃어버린 다리는 주무를 수 없어 고통이 더하다는 것이다. 가족을 잃은 고통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유가 밝혀지고 책임있는 자의 사죄만이 아픔을,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


누군가의 평생을 괴롭히고, 누군가의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던
장면들 앞에 가해자들은 모른다고 잡아떼리라.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조차 없이, 타인의 삶에 평생의 상처가 될지 모를 행위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다 하겠는가.(P106)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를 교훈 삼아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음이라고 했던가? 그런면에서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집단과 블랙리스트로 정적을 제거하고 국정을 농단한 집단을 마주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역사를 통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

언제까지 사리사욕 가득한 정치집단은 이익을 가져가고, 대다수의 평범한 시민은 희생양이 될 것인가. 무고한 희생에 대한 책임은 무겁게 하여 다시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적 수단을 악용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본다.


해녀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것은 이다.
욕심은 금물, 해녀들에게 숨비소리는 생명의 또다른 신호다.
삶의 철학이다.
살기 위해 물의 생을 택했으나, 목숨은 그 숨과의 안 보이는 대결이다.
숨은 인생이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시대 권력자들이 보이지 말아야 할 바닥을 보이는 현실에서
해녀들은 자신의 숨을 조절하며 살라고 한다.
숨비소리를 들으라고 한다.(p127)


나날은 행복해야 한다. 역사의 블랙리스트로 사라진 이 땅의 삼촌들과 그들의 후손인 모두의 가슴에도, 그리고 정의는 늘 가슴 깊이 불꽃을 태우는 자들에게서 왔음을 잊지 말자. 행복도 그렇다. 얼음을 깨고 기어코 샛노란 복수초가 눈을 뜨듯. - P66

누군가의 평생을 괴롭히고, 누군가의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던 장면들 앞에 가해자들은 ‘모른다‘고 잡아떼리라.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조차 없이, 타인의 삶에 평생의 상처가 될지 모를 행위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엇을 한다 하겠는가. - P106

해녀 세계에서 가장 냉정한 것은 ‘숨‘이다. 욕심은 금물, 해녀들에게 숨비소리는 생명의 또다른 신호다. 삶의 철학이다. 살기 위해 물의 생을 택했으나, 목숨은 그 숨과의 안 보이는 대결이다. 숨은 인생이다. 우리네 삶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시대 권력자들이 보이지 말아야 할 바닥을 보이는 현실에서 해녀들은 자신의 숨을 조절하며 살라고 한다. 숨비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 P127

오랜 저항 정신이 스며 있는 제주도의 지울 수 없는 상처는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항쟁이다. 제주도를 하루아침에 ‘붉은 섬‘으로 내몬 가장 참혹했던 역사의 바람이었다. 국가 공권력이 동족끼리 적을 만들었던 야만의 시대, 광기의 시대였다. - P259

남보다 한발 앞서 걷는 사람들의 길은 척박하고 힘들다. - P2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