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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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지음, 한겨레출판, 2018



저자인 철학자 김진영은 20177월 암 선고를 받고 20188월 임종하기까지 일기를 쓰고, 이를 책으로 출간했다.


투병중 쓴 일기이기에 병마와 싸우며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투명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뻔한 예상과는 달리 철학자로서 한평생을 고민하던 주제를 마무리하듯 사랑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에 대해이야기하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애도 일기이자 남겨진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일기이다.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P221)


, 세월이여, 지나간 날들이여, 나의 기쁨들, 즐거움들, 사랑들, 행복들이여. 그리고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들이여. 이제 나는 조용한 시간으로 돌아와 너희들을 다시 그리워하고 추억한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였고, 지금도 오늘 여기인 것처럼 내 마음속에서, 내 눈앞에서 찬란히 빛나는 너희들, ,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들이여.(P237)


환자의 삶일상의 삶이 마치 꿈과 현실이 혼재된 것 같은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생과 사의 경계. 내가 그 경계에 있게 된다면 사랑, 아름다움, 감사에 대한 고민보다는 깊어지는 병마의 고통과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두려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로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가득할 것 같다.


그러나 『아침의 피아노』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없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편안한 마음과 적요한 상태를 이야기하지만, 행간에서 묻어나는 고통과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져 가슴이 더욱 애잔했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P23)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죽기 마련이기에 불가능한 삶과의 투쟁의 이유와 목적이 더 오래 살아남기위한 것이 아님을 일깨우고 있다. 일상을 살아내고 켜켜이 축적하는 것도 역사라지만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선 안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P45)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간 미루었던 일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써 이 불가능한 삶과의 투쟁이 무슨 소용인가(P72)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 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P97)


한 펄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P81)


또한 철학자 김진영은 『아침의 피아노』를 통해서 생과 사의 경계에는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으나 세상안에 존재하는 환자’, ‘환자의 삶과 일상의 삶이 혼재된 일상과 같은 많은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들이 존재함으로 이야기한다.


환자의 주체성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그 사이에서 환자의 주체성은 새로운 삶의 영토를 연다.(P83)


환자의 삶은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삶이다.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일상의 회로는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환자)는 종착역을 향해서 달리는 직통열차처럼 매일매일을 중간역처럼 통과한다.(P104)


환자의 정신적 삶은 갈림길에 선다.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살 것인가, 그것과 결별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인가의 양자택일.(P109)


환자의 주체적 삶은 특별한 사랑의 삶을 닮았다.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정상적인 더블 러브 게임의 삶-그의 삶은 일상의 삶과 환자의 삶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그는 두 삶 모두에게 성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불가능한 성실성은 오로지 두 삶의 정연한 분리를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P89)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 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P255)


이러한 아이러니와 역설적인 상황에서 오감으로 체감되는 일상의 색과 일상의 소리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들(’아침의 피아노’, ‘파란색 희망 버스’, ‘축령산 개울가 물소리’, ‘노랑 가방을 멘 아이’, ‘야채 장수의 우렁찬 목소리’, ‘바람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이올렛 우산’,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살아 있는 소리’, ‘녹색 바람개비’, ‘흰 무우’, ‘아이들의 동요 소리’, ‘초록 잔디’, ‘코발트빛 허공’, ’하모니카 소리’)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 그동안 무심히 흘려보낸 내 주변의 일상의 색과 일상의 소리에 대해 다시금 주의 깊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 생과 사의 경계에 선 것은 아니지만, 『아침의 피아노』를 계기로 저자와 같이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P221), ‘세상과 인생을 열심히 구경(P255)’하며, ‘시들 때를 근심하지 않고’, 삶의 의미와 소명을 찾아 생의 하류까지 아름다운 여행을 할 것을 다짐해 본다.


아울러 저자도 추천했듯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면 읽어 보길 권한다.


환자는 투명한 존재다. 그는 그에게 일어나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통과시킨다.

환자의 주체는 종결을 각오한다. 그러나 그 종결에게 항복하지 않는다.

환자의 주체는 사랑의 주체다. 그는 사랑의 마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환자의 주체는 미적 주체다. 그는 자기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P101)


삶은 힘들이다.

몸은 힘으로 살아간다.

정신은 힘으로 사유한다.

마음은 힘으로 노래한다.

생의 기쁨과 희망과 사랑을 (P122)


날이 갈수록 지친다. 이제는 모든 힘들이 소진된 걸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내게는 많은 힘들이 충분히 남아 있다. 그 힘들이 다만 무기력한 잠재력으로 고여 있을 뿐이다. 그걸 길어내어 모두 써야 한다. 아니면 나는 이 싸움에서 패배한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기어코 돌파해야 한다. 나의 사랑을 증명해야 한다.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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