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비사 - 창덕궁에서 15년간 순종황제의 측근으로 일한 어느 일본 관리의 회고록
곤도 시로스케 지음, 이언숙 옮김, 신명호 감수 / 이마고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요즘은 기분전환으로 책 읽는 것도 전공에 관계 있는 책으로 읽으려고 하는 나날입니다. 아예 안 읽는 편이 좋겠지만, 이것마저 못 읽으면..../담배

...어쨌든 북트럭에서 정리중인 것을 눈독 들인 물건입니다. 을사조약 이후 궁내부를 개편한 이왕부에서 여러 직을 역임하며 조선 왕실을 시중들었던 일본인 관리 곤도 시로스케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엮은 것이지요. 원제는 '이왕궁비사'.

저자가 일본인인 만큼 자연스럽게 이토 히로부미를 추어올리고, 합방이 한국에 이익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순종을 명철한 군주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편집부와 감수자는 읽다가 뒷목 잡고 쓰러질 사람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한 모양으로, 단락마다 '역사 바로보기'라는 대목을 끼워넣어 저자에게 치열하게 딴지를 걸고 있었지만... 정작 읽는 저는 생각보다 열받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곤도 시로스케의 서술 행간마다 일본 제국주의 정치의 모순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걸요.

이토 히로부미가 그토록 조선의 번영을 바라서 절치부심했다면 어째서 '정미의 정변'이니 '공포시대'니 하여 정국은 위태로워져만 갔을까요? 순종이 그렇게나 영명했다면 병합이라는 일대 중대사를 적막한 어전회의 한 번으로 결정내렸을까요? 3.1 독립만세는 어째서 그토록 정연하고 맹렬하게 일어났을까요? 일본 황실을 그토록 존경하고 의지하는 이왕 일가가 왜 왕세자의 장기 유학에 싫은 소리를 하고 말았을까요?

더구나 이런 괴리를 곤도 자신도 깨닫고 말아서, 외척이자 친일파인 윤덕영과 하세가와 2대 총독이 순종으로 하여금 천황을 알현하게 하기 위해 악착같이 고종을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그조차 반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밀이니 어쩔 수 없는 사정이니 해서 감추고 밝히지 않는 일도 너무 많고요.

그런 관계로 의무교육기간 9년에 역사를 평범한 수준으로 공부했다면 곤도의 찬양에 휘말려 식민지 시대를 보는 시각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뭐, 세상에는 뉴라이트 어쩌구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순종에 대해 침이 마르게 찬양의 말을 바치는 곤도 시로스케의 본심이... 말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근대 천황제의 성립을 해석한 [화려한 군주]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정치가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천황의 이상적인 형상에 취해 충성을 바쳤다는 서술이 있었지요. 이 책에는 천황이 자기네들의 꼭두각시임을 인지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 정도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군주]의 그 설명을 생각하고, 곤도 시로스케 역시 조슈 번벌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얼마간 진심으로 순종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올 뿐이지만....

[이왕궁비사]. 이 책 자체는 역사 왜곡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역사입니다. 곤도 시로스케의 15년의 역사.

그러나 같은 시대에는 박은식의 역사가, 신채호의 역사가, 김구의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었습니다. 역사를 안다고 함은 그것을 최대한 많이 알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자아낸 결론- 그것이 '나'의 역사.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역사는 '나'의 역사이다", 라고.

우리는 모두 '나의 역사'를 궁구하고, 소중히 여기고, 또한 앞으로도 가꾸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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