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청목정선세계문학 60
보카치오 지음, 민동선 옮김 / 청목(청목사) / 1992년 7월
평점 :
절판


서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명저. 고등학교 무렵 세계명작 쪽으로 독서 비율을 높여보자! 하는 각오에서 구입했습니다만,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 읽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ㅠㅠ 하지만 세계명작이 은근히 그렇듯이 꽤 문제 도서인 것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 제군들에게 그리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 청소년 제군들이 이렇게 글자 빽빽한 책을 읽기나 할까 싶지만서도.

왜 권하지 않느냐면

....문제 장면 묘사가 꽤 많기 때문에...

그것도 대충 심의삭제=ㅅ=하는 수준이 아니라 요즘 같이 개방된 시대를 사는 저조차도 이마를 치며 절묘하다고 감탄할 정도로 개성넘치는 표현이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개방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뭐 보카치오가 시대의 문제작가니까 할 수 있었던 일이겠지만요.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구조는 [캔터베리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더군요. 하지만 [캔터베리 이야기]쪽이 서민들이 등장하는데다 입담도 걸죽하고 내용도 개성만만해서 저로선 조금 더 재미있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취향이겠지만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왕비를 사랑한 말구종의 이야기. 연모를 감추고 살아갔다면 미담이었겠으나, 말구종치고는 머리가 명석했던(외모도 잘났다는 묘사가 있습니다) 그는 왕이 왕비의 처소를 방문할 때의 모습과 행동을 잘 관찰했다가 어느날 밤 써먹었던 겁니다. 들어가서 뭘 하겠습니까. 당연히 왕비와 이하하략...=ㅅ=

그런데 그가 용무를 마치고 왕비의 처소를 떠난 뒤, 참 재수없게도 왕이 왕비의 처소에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왕비의 말을 듣고 누군가 자신의 모습을 가장하고 찾아왔다는 것을 안 왕은, 노기충천해서 난리피우는 대신 대강 맞장구쳐서 얼버무리고 범인을 찾아나섭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라는 추리 끝에 잠든 하인들 방을 찾아간 왕. 모종의 일을 치르고 심장이 벌렁벌렁할 놈(=범인 말구종)을 찾아 머리카락을 잘라 표시를 해둡니다.

그러나 잠도 못 자고 심장을 벌렁벌렁하고 있던 말구종은 왕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모든 하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둡니다=ㅁ=/ 다음날 아침 성 안의 모든 하인들을 불러 범인을 색출하려고 한 왕. 그러나 모든 하인들의 머리카락이 짧아져 있지 않겠습니까. 범인이 제법 똘똘한 놈이라는 것을 깨달은 왕은 모호하지만 범인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엄한 훈계를 내리고, 그 말을 가슴에 새긴 말구종은 다시는 그런 발칙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던 까닭은, 절영지회의 고사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초장왕의 연회에서 불이 꺼진 틈을 타 왠 남자가 초장왕의 미희를 희롱했는데 여자가 꾀를 내어 갓 끈을 끊어버렸다죠. 그리고 초장왕한테 고해바쳤는데, 현명한 초장왕은 불을 켜기 전에 모든 신하들의 갓 끈을 끊게 하였고, 이에 감동한 범인은 초장왕이 위기에 빠졌을 때 열심히 싸워 왕의 위기를 구해냈다는 이야기. 상황이나 주체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한 것이...

...하지만.

왕비랑 끝까지=ㅅ= 갔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처신을 잘 한 끝에 조용하게 살게 된 말구종이랑, 그냥 안아만 봤을 뿐인데 씻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여기고 목숨을 건 신하....

....비교해보니 왠지 신하쪽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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