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제법 이름을 얻고 있는 호러 추리소설. 교고쿠도 시리즈의 하나라고 합니다. 교고쿠도란 작품 내에서 주로 탐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고서점 주인이자 신사의 신주의 별명입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감상을 요약하자면 간단합니다.

.....24 평생 이렇게 기분이 나빠지는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니, 못 썼다는 것이 아닙니다. 괜찮은 전개라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훌륭하고. 교고쿠도의 민속학 해설은 민속학 매니아인 진냥으로서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긍할 수 있는 점도 있고 부정하고 싶은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선한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헌데 말이죠.....ㅜㅜ

정말 우에키가 없었다면 한동안 우울해서 재기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먼 시선)

제가 본 [망량의 상자]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인간의 굴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공의 경계]나 오노 후유미 작품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음, 모두 읽어보신 분들은 '설마?!'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공의 경계]와 오노 후유미 작품들이 현실과 다른 세계관에서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극복(혹은 수용?)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면, [망량의 상자]는....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더러, 그런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전후 일본의 굴절된 세계. 제각각 굴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 굴절을 극복하거나, 구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배경은 전후 일본. 환타지적인 요소는 거의 나오지 않는(아주 조금 나오긴 합니다. 아주 조금) 세계입니다. 잡지라든지 전사자라든지, 여러 가지 요소가 그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합니다. 하지만 그 현실이란, 전쟁이라는 굴절된 현실을 겪은 세계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모두 굴절을 품은 사람들. 그러나 그 굴절들이 만나버려서 벌어지는 사건들.

...더없이 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울려퍼지는 굴절의 불협화음.

작품 속에서는 사람을 상자로 비유하는 표현이 가끔 나옵니다.

아아, 그렇게 생각하면 [망량의 상자]라는 것은 얼마나 잘 지은 제목인지요.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 안에 요괴 망량을 감춘 상자인 것입니다.

감추고만 있었다면 그렇게 되어버리진 않았겠죠. 그러나 만나버렸고, 상자는 열려버린 것입니다.

....그래요. 괴이怪異를 부정하는 세계 가운데서-

그들은 틀림없이 인간보다 요괴가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보통은 아무리 굴절을 안고 있어도 저렇게까지 가진 않죠.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확률은 몇억만분의 일이 아니겠슴까.=ㅅ=;

보통은요, 사람은 굴절과 동시에 그 굴절을 보상할만한 것도 가지고 있어요. 당장 손에 없다고 해도 앞으로의 미래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이 작품은 굴절밖에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굴절된 세계를 몰랐다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치만 같은 시리즈 작품인 [우부메의 여름]은 절대 안 볼 것 같군요(먼 시선)

나중에 생각하면서 제일 실소한 점은, 가장 괴이에 가까운 인물인 에노키즈가, 가장 인간다웠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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