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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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오로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 맑은 눈에 어른들이 당당하지 않게 보여, 그들처럼은 살지 않으려 했다. 중학교 1학년때인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작문 숙제에 나는 선생 아닌 다른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고 썼다가 심한 꾸중을 들었다. 선생인 아버지와 친척들, 그리고 학교 선생들에 대한 반항 탓이었다. 그러나 나도 선생이 되었고, 나의 선생들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젊은 벗에게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살아라!
정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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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서는 환자들의 개인력을 기술하는 난의 첫 줄에 '출생시 환영받지 ㅁ소한 아기'였는지 '환영받은 아기'였는지의 여부를 기록하게 되어 있다.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아기가 태어날 때 부부가 심각한 갈등 때문에 아기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거나 엄마가 직장일 때문에 아이를 낳을 형편이 되지 않아 지우려 애를 쓰다 실패하여 태어난 아기는 아니었는가 등을 살핀다. 존재 자체가 거부되는 상황에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정신과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 요소인 것이다. 출생시부터 거부당한 인생들은 대체로 살아가는 내내 이러한 주변 감정으로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혐오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긴 아기에게 편안한 사랑을 주기 어려울 것이며, 아이의 존재 자체가 자기 앞날의 장애물이라고 인식하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기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험난할지 예측한다. 아기의 미분화된 세포 속에 각인된 이런 힘겨운 감정들은 그 이후 아이의 삶 전체의 바탕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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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몰입은 반이성의 결과이며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흔한 행동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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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삶의 어느 순간 무조건적인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사춘기에 연예인에게 빠지는 것처럼 발달의 한 과정으로서의 몰입도 있다. 이런 종류의 몰입은 그 시기가 지나면 자연 소멸한다. 몰입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에너지의 극한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는 몰입의 긍정적 측면이다. 어린 시절 새의 알을 품으며 가슴 설레었다는 안철수 사장처럼 유전인자에 각인된 강렬한 몰입적 성향으로 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몰입에 저항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몰입에 압도되어 생의 다른 기능들이 마비되지도 않는다. 그들의 몰입은 특별한 부작용 없이 있는 그대로 그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때의 몰입은 타고난 자기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몰입은 정상적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몰입은 '원치 않는 아이'로 시작된 내 정신과 의사생활을 보상하기 위한 과다한 인정욕구에서 시작된 신경증적 증상이었다. 외피는 정신과에 대한 열정이라는 근사한 소재를 둘렀지만 속질은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불행한 인생의 자기부정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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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당한 사람들은 강렬하게 몰입한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병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몰입과 집중은 삶을 뒤틀리게 한다.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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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불행하게도 난 아주 일찌감치 돈의 힘이 빚은 세상의 모순에 눈떴고, 책읽기에 몰입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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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에 입학해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였다. 책상 위에 책들이 시나브로 늘어나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구내식당 점심값으로 어머니가 준 돈까지 밥을 거르며 모았다. 시간이 날 때면 당시 가장 책이 많았던 종로서적으로 가 진열된 책들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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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현실을 온전히 설명해줄 이론적 갈증에 시달렸다. 닥치는 대로 책을 사서 파고든 것도 그 시기였다. 철학과에 있었지만 현실을 천착하는 철학 강의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조정래 - 인생은 단 1회의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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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난에 찌든 숨가쁜 생활 속에서도 아버지는 유난스러울 만큼 자식들 도시락을 신경 써 챙겼다. 클 때 반찬 없는 밥이나마 제때제때 먹지 않으면 그 부실이 평생 간다는 것이었다. ... 그런데, 아버지는 정작 서울로 올라와서 10년 넘게 점심을 굶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지난 뒤였다. ... 뒤늦게 목메고 가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 병상에서 '태백산맥' 완간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내가 연재 1회분 반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돌아가셨다. 그 즈음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책이 잘 팔지로 있었다. ... 팔십 평생 동안 제대로 된 호강 한번 해보지 못하고 빼빼 마른 몸으로 지긋지긋하게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속울음으로 가슴이 미어지고, 죄스러움이 한없이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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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내 소설 속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 실감난다고 말한다.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가난한 이야기를 쓸때 거의 파지를 내지 않는다. 글이 어디선지 모르게 피어오르며 슬슬 풀려간다. 그 반대로 잘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때는 왜 그리 낯설고 서먹서먹하고, 뻑뻑한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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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스로에게 세운 금기 사항은, 신문에 연애소설을 쓰지 않는다, 하는 제법 거창한 것에서부터, 두꺼운 서류봉투는 재활용한다, 하는 사소한 것까지 꽤나 많다. 그런 것들을 한 번 마음 정하면 나는 세월의 길고 짧음을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실천해 나갔다. 그것은 대학생 때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치열하게 살기로 작정했던 것의 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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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하소설을 연달아 세 편씩 써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마음먹음의 실천일 뿐이다. 그런 미련스러운 노력 말고 무엇이 우리 인생을 책임질 수 있고, 우리 인생에 빛을 줄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타고난 재능보다는 미련스러운 노력을 믿고자 했다. 타고난 작은 재주도 치열한 노력을 바치면 커진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실패한 인생을 용납할 수 없었고, 더욱이 가난에 원수를 갚아야 했던 것이다. 남들이 의아해하는 나의 의지, 열정, 실천, 그런것들의 뿌리에는 가난이 있었다. 나를 키운 건 가난이었고, 가난이 나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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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혼자서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놀랄 만큼 글이 잘 되었을 때 그 행복은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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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 노릇도 글쓰기도 엄청나게 열심히 했다. 작가가 되고 교사가 된 것은 내가 바라던 대로 양쪽에 날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맘껏 날갯짓을 안 할 수 있으랴. 낮에는 가르치는 즐거움에 빠지고, 밤에는 글 쓰는 즐거움에 흠뻑 젖곤 했다.비록 셋방을 전전하는 처지였지만 보람과 활력이 넘치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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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 속에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내다보면서, 내가 왜 이러고 다니는가 하는 생각이 사무치며 눈물이 가슴을 줄줄이 적시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눈물과 함께 씹어 넘긴 말이었다. 남쪽으로 질주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황량한 겨울 들판을 바라보며, 언제까지 이러고 다녀야 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소외감과 패배감 같은 것이 몰려들었다. 아니야, 두고 봐라. 반드시 큰 작품을 쓰고 말 테니까. 나를 위로하고 충동하며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나는 마침내 1980년에 출판사를 넘겼다. 만 3년 만에 몇 년 동안 안심하고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는 밑천을 장만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돈 욕심의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걸신들린 것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이었으니 젊은 세월은 흔적 없이 사라진 다음이었다. 상처투성이의 젊은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글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20년 동안 글감옥에 즐겁게 가두었다.
장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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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된다. 도대체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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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철학을 공부해봐도 내가 지녔던 의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올뿐이었다. 어렴풋이나마 한 가지 터득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절대적으로 옳은 지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타당성이 높은 지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타당성 정도의 차이였다. 내가 깨달은 것은, 설혹 상대적일지라도 우리는 타당성 정도가 큰 지식을 추궁할 필요가 있으며 또 이것만이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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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이상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타당성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만이 문제가 되었다.
박홍규
194
나의 20세기란 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버릇처럼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쓴 40년에 불과하다.
217
패거리를 조종하는 정치적 요령꾼들이 대학을 움직이고 소수자를 배제한다. 대학은 이제 패거리 막가파 다수집단의 횡포로 움직여지고 있다.
218
대학만이 아니다. 나는 나의 가족이나 친족안에서도 이단이다. 나아가 초중고대 학교에서도 이단이어서, 그 어떤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물론 나는 국가사회나 지역사회에서도 이단이다. 여기서 이단이라는 표현은 소수자라는 것으로 남에게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는 다른 의견의 소유자라는 것에 불과하다.
김진애
238
MIT 첫 1년은 내 인생의 카메오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영어를 잘못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알고 싶고 듣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머리가 부풀까, 날개가 돋을까, 가슴이 뛸까. 그 놀라움이 마냥 계속된 것만은 아니지만 몰입과 각성의 1년이었다.
247
나의 엄마나 뇌었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었다. "짐은 질 수 있는 사람에게 온단다."
홍세화
258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변할 수 없다. 다만 각박한 현실이 잠시 우리를 눈멀게 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라는 이름의 유일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경배하는 온갖 유령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긴장과 성찰이 요구된다.
265
나는 인간을 알기 전에, 사랑을 느끼기 전에 증오를 배웠다. 그런데 그 증오의 대상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나는 분열되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딘가 응시하고 있는 듯했지만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자신을 향한 숯와 세상을 향한 혐오가 내 속에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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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있다는 것일 터이다.
일찌감치 모순에 눈떴고
책들이 시나브로 늘어나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면
샅샅이 훑어보았다
닥치는 대로
한 번
그 인생을 적당히 살 수도 있고
단 한 번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