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 -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앤디 워홀까지
엘리자베스 런데이 지음, 최재경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최고의 즐거움을 체험한다. 바로 살바도르 달리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자문한다. 이 살바도르 달리는 오늘 또 어떤 경이로운 일을 벌일 것인가?"(p344) 살바도르 달리가 했다는 이 "명언"인지 망언인지를 몇 번이나 되뇌여봤다. "살바도르 달리" 대신 내 이름을 넣어서 소리내어 읽어도 봤다. 아.. 이건 자신에 대한, 자신의 삶에 대한 최고의 예찬이 아니던가. 이 오만한 사내가 이런 오만한 "명언"을 남겼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게 되었고, 이 이상한 사내의 특이한 콧수염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범상치 않은 사내의 작품은 이미 초등학교 때 미술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데, 화가의 이름은 몰랐어도,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무언지는 몰랐어도 그 작품은 너무나 특별하고도 강한 인상으로 머리 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작품의 제목도 이제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기억의 고집". 흐물거리는 시계. 그림이라면 "사진 같은 그림"이 잘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했던(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내 예술관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주었던 그림.. 시계가 어떻게 이렇게 흐물거릴 수 있지. 어떻게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 있는 걸까.. 하는 놀라움을 선사했던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이었다.
나는 예술 분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예술에 대한 심미안은 아마도 타고나는 것인가 보다. 타고나지 못한 예술에 대한 감각을 보충해보고 싶어서 관련 서적을 찾아서 종종 읽어보곤 하지만, 그럴수록 어렵다. 외계어를 읽고 있는 듯한 낯섬이랄까.. 매번 벽 같은 게 느껴졌는데, 이 책은 그나마 그런 느낌이 덜했다.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사생활"이란 낱말 때문이었다. 고고한 예술가들의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세계에 대한 수준높은 담론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글쓴이는 "엘리자베스 런데이." "미술과 건축, 도시설계, 음악, 문학 전문 작가"라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는... 이 책에서 글쓴이는 "얀 반에이크"로부터 "앤디워홀"에 이르기까지 서른여명의 미술가들의 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술사에 관한 책, 혹은 미술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종종 읽어봤지만, 작품활동에 대한 설명과 시대적 배경, 작품에 대한 설명을 내가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해두고 있는 책이 상당수였다. 컬러판으로 실린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그 어려운 단어들을 이해한 듯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책앞날개에서 글쓴이가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글만큼이나 쉬운 단어들로 예술가들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적었다. 다행히도..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작품 밖의 일상생활까지 "예술적인 것"은 아니었나보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반 고흐. 반 고흐보다 더 불행했던 뭉크. 뭉크의 "절규"는 과장되고 희화화된 패러디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작품이 실제로 뭉크가 처했던 절망스런 삶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멋진 조각상의 대명사인 "다비드상"을 통해서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미켈란젤로를 상상할 수 없었는데, 그가 잘 씻지 않았을 뿐더라 감정과잉이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 없다. 카라바조의 살인이나 호퍼의 가정폭력, 잭슨 폴록의 알콜 중독과 비극적인 죽음 역시 예상 밖의 일이라 놀라웠다. 글 첫머리에서 인용했던 명언을 남긴 살바도르 달리의 기행은, 예술가들이 가진 괴짜 근성으로나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아... 이 상식밖의 사람들의 행적이란... 시대를 무시하고 이 책에 실린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다 모아두면 엄청난 참극이 벌어지거나 각본이 필요없는 난리법석의 시트콤이 완성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책을 읽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에서 언급된 많은 "작품"들이 책에 실려있지 않았던 것. 책 말미에 "위대한 예술가들의 대표작"이 실려있긴 하지만 글쓴이가 언급한 상당수의 작품은 누락되어 있어 일일이 찾아보는 불편함이 있었떤 책이었다. 그러나 글쓴이의 말대로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미술작품들을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감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p9)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