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인생 변주곡 - 비평가처럼 수다처럼
윤미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워낙 폐쇄적인(?) 성격을 가져서인지, 낯선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한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하니 깊은 이야기가 있을리 없다. 하지만 그을 통해서는 낯선 그들의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 덕분에 제법 긴 대화가 가능하다. 일방적인 "듣기"가 아니라 주거니받거니가 되는 것이다. 예전엔 글을 읽는 것을 그저 읽는 것, 그들로부터 전달받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책을 읽으면서 가끔 내 이야기도 한다. "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도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특히나 수필을 읽을 땐 더욱 그러하다. 수필을 통해선 낯선 그들의 일상을 몰래 엿보는 재미까지 있다.

 

  솔직히 나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학창시절 미술시간과 음악시간은 그리 즐거운 시간이 되지 못했다. 그림은 늘상 유치원생 수준이었고, 음악 또한 제대로 연주하는 악기 하나 없었고, 그렇다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대상이었달까..? 그런 약점을 극복하려고 최근엔 서양미술에 관한 책을 몇 권 봤다. 봐도 잘 모르지만 면무식이라도 해야겠다는 욕심에 의무적으로 봤다. 이번에 내가 접한 책은 음악이다. 내가 읽은 음악을 주제로 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예전에 마로니에북스의 미술에 관한 서적을 몇 권 접하고 출판사에 대한 느낌이 좋아, 기대를 하고 펼쳐든 책이다.

  클래식이라... 미뉴에트, 론도, 제1트리오, 제1주제, 제1악장, 아르페지오, 변주. 템포, 패시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악에 관한 기본적인 용어는커녕이고 음악가에 대한 배경지식은 거의 백지상태라 어려운 책이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면서 펼쳐든 것도 사실이다.

  "고물 라디오를 통해 클래식을 듣던 어린 시절 나는 음악이 아닌 DJ의 해설을 들었던 것 같다. 흘러나오는 음악보다 그 곡을 멋지게 해석하는 DJ의 멘트에 신경을 쓴 것이다. 곡의 흐름이 어떻고 연주 기교가 어떻고 작곡가와 연주가의 해석이 어떻고.... 문제는 내가 그 해설들을 도저히 내 것으로 함께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누구는 연주되는 음악의 의미를 아는데 나는 들어도 모르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이는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스트레스요 열등감이 되어 갔다." (p19)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명화를 보면서도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 자체를 보거나 즐기려하기보다는 해설서를 통해 "지 식 의   조  각"을 갖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러번 보고 여러번 들어봐도 보고 듣기만 했지 "느끼지는 못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2006년까지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선생님이 쓰신 글이다. 한 선생님의 일상과 시와 그림과 클래식과 많은 생각들..  예술처럼(?) 사는 어느 선생님의 음악감상기라고 정의 내리면 될까 모르겠다. 클래식의 생활화, 그리고 클래식에 대한 깊은 관심이 글 곳곳에서 배어난다. 처음에 겁을 먹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과는 다르게 비교적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클래식에 대한 너무나 빈약한 내 배경지식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클래식에 대한 자극제의 역할은 충분히 한 책이었다. 선반 어딘가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던 클래식 CD 한 장을 찾아내서 재생버튼을 누르면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을 보면 말이다. 클래식에 대한 어렵다는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역시나 나의 무지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클래식에 관한 책은 더러 있는 듯 한데, 우리 음악에 관한 책은 많이 못 본 것 같다. 다음엔 마로니에 북스에서 우리 음악을 주제로 한 책을 펴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쉽게 가르치는 기술
야스코치 테츠야 지음, 최대현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선생님들 생각이 많이 났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야 마냥 어렸던 철부지들을 사람같이 만들어주신 고마운 분들로 기억될 따름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은 그 숫자만큼 개성도 각양각색이었던 듯 하다. 그 다양한 개성에 따라 같은 과목이 재미있기도 없기도 했던 기억이 났다. 중학교 1학년 때 수학 선생님. 수학공부만 하면 지겹다고, "그리운 금강산"과 "비목"의 악보를 복사해서 나눠주시며, 수학책 표지 안쪽에 붙여놓으라고, 그리곤 종종 함께 부르자고 하셨던 분이라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수학시간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기억도. 고등학교 땐 입시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던 아이들을 깨우기가 안쓰러웠던지 자는 아이들을 놔 두고, 몇몇 안되는 생존자들만으로 수업을 이끌어 나가시던 마음 여렸던 국어 선생님도 생각이 난다. 그 외에도 인기가 참 많았던 국사선생님 생각도 난다. 같은 국사라도 왜 그 선생님이 가르치시면 더 쉽고, 재미있게 느껴졌었는지 몰라. 

   굳이 학생들을 앉혀두고 하는 수업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배울 일은 많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가르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p4)  나의 경우는 주로 엄마다. 엄마에게 컴퓨터를 가르쳐드릴 일이 많다. 재미삼아 하시는 주식을 위해서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은 물론이고, hts프로그램 까는 방법과 접속하는 방법, 그리고 주문하는 방법 등.. 컴퓨터가 일상생활화된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엄마에겐 컴퓨터는 낯선 물건인지 똑같은 과정을 몇 번 설명하다보면 "엄만 이것도 몰라?" 하는 말이 튀어나와 모녀지간에 괜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거 몇번이나 설명한 거잖아요.." . 

    그러고보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1대1의 "컴퓨터 강의(?)"가 이렇게 수월찮은 일인데, 30~40명 혹은 몇 백명을 상대로 한 전문적인 강의는 더욱 그렇겠지..?  궁금했다. "잘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잘 가르치는 것인지.. 일본에선 꽤나 유명한 영어 강사가 쓴 책이라 그런지 이 책은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생각하고 쓴 책이다. 목소리와 억양은 물론 강사로서의 옷차림, 그리고 판서법, 학습자료 만드는 방법, 수업의 큰 틀을 잡는 방법, 시선처리와 농담에 관한 것까지. 20년이상 강사로서 생활해 온 그의 노하우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는.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전문가의 이야기라 그런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여러 부분 있었고 앞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때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여러 곳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부분.  "일이나 공부를 가르치는 입장에 섰을 때는 '내가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이니 너도 간단히 할 수 있어야지. 못하면 어떻게 해'라는 생각은 덮어 두어야만 한다. 그 생각 그대로 초보자를 상대하면 상대의 '의욕'을 완전히 꺾어 버리기 십상이다."(p153)는 말. 맞다. 나 역시 엄마보다 조금 빨리 컴퓨터에 익숙해졌을 뿐인데, 왜 이걸 못하나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가르칠 일이 있는 사람에게도 혹은 배우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쉽게 가르치는 기술"을 유용하게 쓸 날이 오길 바라며 책을 일단은 덮어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도스토예프스키, 도박, 선불 그리고 그의 위대한 작품들..>

   얼마전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을 했었다는 글을 읽어 알고는 있었다. 그가 도박을 했었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그 가난 때문에 작품을 "더" 열심히 썼다는 정도의 간단한 사실 정도만을.. 예전엔 도스토예프스키라 하면, 내가 아는 몇 되지 않는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중에서도 톨스토이와 더불어 아주 뛰어난 작가였다는 사실, 그리고 어렸을 때 읽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죄와 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을 썼다는 사실 정도 뿐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는 그가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사형 집행이 되려던 그 순간에 면제받고, 몇 년간 시베리아에서 유형을 살았으며, 이후에는 그의 인생을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천했던 굳은 의지의 사나이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이 책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제목부터가 자극적이고, 내 머리속으로 그리고 있던 집념적이고 바른 생활 사나이의 이미지를 확 깨뜨려버렸다. 궁금했다. 내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 말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짜 모습은 어땠을까가.. "유명한" 작가라는 말이 왜 내겐 "초월적이고 고상한" 작가라는 말과 동일시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미지 역시 내겐 돈 "따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저 "인간과 예술에 대해" 고뇌했을 고상한 작가일꺼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그가 "돈"을 추구했다니..

   노어노문학과 교수님이 쓰신 책이라 그런지, 학생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듯 그의 작품과 그의 삶을 관련지어 쉽게 쓰고 있다. 간간이 위트를 곁들여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을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면 이러하다.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밴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허영심이 강하고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부자들조차도 구입하지 않는 물건을 사달라고 아버지에게 졸라대는 현실감각 떨어지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서는 끊임없이 "선불"을 요구했고, 그 때문에 작품을 써야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항상 가난했던 사람.

   가수가 자기 부르는 노래처럼 살아간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작가도 그런걸까..?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청년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상당한 명성을 가져다주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했다. 그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문학적 성공을 분석해 보자. 그것은 정말로 고무적인 사건이었지만 부를 향한 출발점을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이 문학적 성공을 시점으로 작가의 구질구질한 인생이 시작됐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을 창조한 작가 자신도 평생 '가난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 남아 있었다. 첫 소설의 제목이 작가의 미래를 거의 예언해 주고 있다시피 하니 창조의 신비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p65) 역시나 얼마전에 읽은 또 다른 책에서는 정말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더니, 그리고 [아서 고든 빔의 이야기]라든가 [캐롤라인 호]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야기 속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실제로 발생했다더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유럽여행을 하면서는 도박에서 돈을 잃어 움직이면 배가 더 고플 것 같아서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으면서 돈을 부쳐주기를 바라는 편지를 썼던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에게 빌린 얼마 간의 돈 때문에(밖에라곤 말할 수 없는) 투르게네프에 대한 막무가내 식의 비난과 11년만에야 그 돈을  (이자도 없이)갚았다는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백치]를 다시 읽어보니까 훌륭한 부분들도 있지만 너무 서둘러 쓴 대목들이 많소. 개선의 여지가 지대한 대목들이..... 나는 언제나 급히 써야 했소. 그런데 톨스토이는 부자요. 그는 모든 걸 가지고 있소. 그는 내일 어떻게 어디서 돈을 벌어야 할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오. 글을 쓰고 다듬을 대 충부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소. 그건 굉장히 중요한 점이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그가 부럽소. 그래요, 나는 그가 부럽소."(p226) 라며 톨스토이의 부를 부러워했던 도스토예프스키. 선불에 쫒겨 작품을 다듬을 시간조차 없이 그의 작품을 넘겨야 했고, 끊임없이 도박에의 유혹에 빠지는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그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돈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  내가 생각해왔던 "고상하고" "예술 때문에 번뇌하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이고 속물적인 그의 모습은 참 의외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내겐 그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한권만 읽으면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문학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소개문구처럼 이 책은 작가의 생애가 그의 작품에 관해 조목조목 잘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입문서 혹은 요약서로서의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달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접할 수 있다는 면에서 내겐 무척 재미있고도 유익한 책이었다.  이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읽어볼 차례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문에 빠진 세계사 - 세상을 뒤흔든 뜻밖의 미스터리
치우커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시끌벅적. 이합집산의 정치면 기사보다는 연예 가쉽란을 더 좋아하는 천박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역사서도 흔히들 말하는 정사보다는 야사에 더 관심이 간다. 이런 천박한 나의 관심사에 대해 변명해보자면, 정사는 사람이 없는 사건의 연속이라면 야사는 그래도 과거 속의 "그들"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좋다는 정도로 핑계가 될 수 있을까? 역사서를 좋아해서 흔히들 말하는 "주류"의 역사책으로 줄거리를 잡고자 하면서도 종종 곁눈질을 하게 된다. 더 재미난 얘기는 없을까 하고... 이 책의 제목은 나 같은 사람에겐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책 앞 표지에 실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남자와 그를 껴안고 있는 한 늙은 남자에 관한 그림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는 표지와 함께라면 더더욱이나..

    고대사 부분을 읽으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를 살펴 볼 때면 누구의 말이 더 그럴 듯 한가에 대한 학자들의 내기를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고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앍고 있는 미궁(크레타섬의 미궁)은 궁전이었을까 무덤이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악처와 일부러 결혼했다고..? 클레오파트라는 어떻게 죽었는가? 등등.. 정사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를 보면서 종종 곁가지쳐지는 궁금증.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그랬을까? 그 건물은 무슨 용도였을까? 등에 대한 주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는 정도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깊이 있는 역사서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고대부분을 읽으며 몇 가지 역사외적으로 단순히 이 책에 대해 궁금해진 것인데, 저자가 [무대 뒤편에서 바라본 역사 이야기]라는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 "부루투스는 왜 카이사르의 칼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p5)라는 문장과 "기원전 410년 8월 '영원의 성' 로마가 하루아침에 멸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p67)는 두 문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 49쪽에서 다루고 있는 카이사르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이야기인데, 부르투스가 카이사르의 칼을 받아들였다는 저 문장은 단순오타인지, 아님 나의 이해력 부족에서 비롯된 내용인지.. 마찬가지로 기원전 410년에 로마가 멸망했다는 이야기 또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서로마가 망한 것은 기원후 476년 동로마가 망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00년 후라고 알고 있는데.. 뭔 얘기지...?

    중세사 부분을 읽으면서는  표지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림이 러시아의 이반 4세와 그의 아들에 얽힌 불행한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그림이나 유적, 조각 작품등 다양한 미술품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명화를 볼 때면 그들의 역사나 신화에 대해 얼마간의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역사를 중심에 두고 관련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근대사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 중에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출생에 대한 비밀은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라 흥미로웠다.  또한 어렸을 때 믿거나말거나 식의 책에서 읽고 기억에 남았던 히틀러가 사실은 여자였다?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관련된 설명을 진지하게 읽다가 마지막 문장 때문에 웃음이 났다. "로버트 페임은 당시 창문에 비춰진 "卍"의 모습을 본 히틀러가 좌우 바뀐 것도 모르고 무조건 "卍"(뒤집어서 인용해야 하는데 편집하기 어려워서 이렇게밖에 인용을 못하겠다. -서평자) 를 나치즘의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p166)는 문장 말이다.

   그리고 "역사"라기보다는 "시사"적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현대사 부분. 케네디의 죽음, 워터게이트사건, 클린턴의 사생활 문제, 다이애나비의 죽음과 911테러, 오사마빈라덴까지.. 역사서가 가지고 있는 딱딱함(?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을 벗어나서 재미있고 편하게 큰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 등 큰 틀의 구분은 있어도, 그 각각의 틀 안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약간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 든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묶든지, 그렇지 않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배치했더라면 읽기에 더 편리했을 꺼라는 생각 역시 나만 한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접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다. 예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을 통해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조차 많이 접해보지 않은 터라 몇몇 고전을 제외한 외국작가의 작품으론 그의 작품이 내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따옴표도 문단구분도 없이 줄줄이 나오는 그 글을 읽으며 처음에 적응이 안 되서 "뭔 말이야..?" 하면서도 소재가 너무 독특해서, 그의 글 쓰는 방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다 보니 별 무리 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엔 [눈뜬 자들의 도시]라는 작품도 나왔다던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던 차에 이 책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먼저 읽게 되었다. 독특하다. 그리고 신선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사람 주제 씨. 그는 중앙호적등기소에서 일하는 사무보조원. "각자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할 임무가 있고, 최소한의 일만을 상관에게 넘겨 주면 된다. 말하자면 사무 보조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쉴틈없이 일해야 하고, 일반 직원들은 가끔 올라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부소장들은 정말 드물게 업무에 눈을 돌리며, 소장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p9) 관료화된 행정 기구의 말단에서 일하고 있는 별 존재감 없는 공무원. 나이는 오십을 바라보고 있고 중앙호적등기소에서 25여년간을 일해왔으며,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지금은 등기소 옆의 작은 관사에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주제 씨 이외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게도 "이름"이  없다. 소장, 부소장, 정식 직원, 사무 보조원. 혹은 3층 집 여자, 1층에 사는 할머니 혹은 세탁소 주인, 교장 선생님, "모르는 그 여자" 혹은 "미지의 그 여자"가 있을 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이름이 없을까? 작가는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대중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긴.. 내 생활을 둘러봐도 내 이름이 중요하게 언급될 만한 일들이 없다. 은행에 가면 "몇 번 손님 몇 번 창구로 오세요"이고, 주차를 잘 못 해뒀을 땐 "0000번 차주님 안내실로 와 주세요"고 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 외에는 "40번 읽어봐." 였었다. 은행에 가면 나는 내가 부여받은 작은 쪽지 속의 번호가 됐고, 주차장에선 0000번 차의 차주가 되었고, 학교에선 "40번"이었다. 이름 없는 그들 그리고 나.

   등기소에 일하는 사무보조원 주제 씨에게도, 다른 직원들에게도 등기 서류 속의 개개인은 중요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등기소는 단지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고,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홀몸이 되든, 등기소에선 그런 것엔 관심도 없어요. 그런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행복과 불행은 마치 유명인들과 같은 거예요, 인기가 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보다 더 끔찍한 사실은, 등기소에선 우리가 누군지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p207)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주제씨가 가진 요상한(?) 취미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널리 알려진 국내 유명인들의 기사"(p18)들을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유명인들의 정확한 정보 - 예를 들자면, 부모가 누구인지, 그의 세례에 참석한 대부는 누구인지, 정확한 출생지는 어디인지 - 등을 알아내기 위해 그의 관사에서 중앙호적등기소의 사무실로 통하는 "금지된 문"(p21)을 열게 된다. 등기소에서 몰래 찾아낸 유명인사들의 서류에 딸려온 한 평범한 여자의 서류.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주제 씨는 "그 미지의 여자"를 조사한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그녀의 주소를 찾아가고, 이미 오래전에 이사 갔다는 말을 하는 그 여자의 이웃 할머니에게서 그녀에 대한 다소의 정보를 알아내고. 그녀가 다녔다는 학교에 몰래 침입하여 그녀의 기록부를 찾아내고. 그녀가 다녔던 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내고 이혼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그녀가 얼마전에(그의 이상한 조사가 시작되고 난 얼마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까지. 

    왜 주제씨는 그녀의 행적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일까...? 유명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했던 한 여자의 삶의 행적을 찾아내느라  심한 독감으로 앓아누울만큼, 20여년간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그가 일주일치의 병가를 내게 될 만큼 중요했을까..? 그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였을까...? 엉뚱하게도 몇 해전에 들었던 뉴스가 생각난다. 부모와 떨어져서 다른 도시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한 대학생이 자취방에서 숨진지 몇 개월만에 발견됐다는 뉴스. 사인은 영양실조. 그가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은 몇 달치 세금과 방세를 받았기에 세입자에 대해 "간섭할" 일이 없었다고. 그의 학교 선후배들은 그가  휴학계를 낸 터라 그런 줄 알았다고. 부모는 바빠서 연락을 못 하겠거니 생각하고 지내왔었다고. 그 뉴스를 들으면서 얼마나 섬찟했던가. 개별화된 현대인의 삶과 그 속에서 겪는 소외감에 몸서리쳐졌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주제 씨의 끊임없는 독백(혹은 천장과의 대화), 마침표와 쉼표 외에는 어떤 문장부호도 사용되지 않는 작가의 글 쓰는 방식은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를 읽을 때면 헷갈리는 부분이 종종 있다. 누구의 말인지..(내 이해력의 부족 때문인가 보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다. 내 멋대로의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개별화된 인간 개개인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했다. 몇 해 지나 이 책을 꼭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사람에 대해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 나는 이 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가 궁금해지기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욕심내서 찾아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