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의 인간 경영학
리 아오 지음, 강성애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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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책 제목을 보고,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던 책이다. "서태후의 인간경영학". 역사책은 즐겨 읽지만, 자기계발서류의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제목이 "서태후의 인간경영학"이라니.. "서태후"라는 단어에는 무척 관심이 가지만, "인간경영학"이라는 단어는 그닥 끌리지 않는다. 제목 때문에 이 책의 성격을 두고 자기계발서일까, 역사서일까 성격을 가늠해보기 힘들었다. 인터넷서점 몇 군데를 둘러봐도 마찬가지. 경영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곳도 있고, 동양사 중에서도 중국사로 분류되어 있는 곳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경영이나 자기계발서로 분류하기보다는 서태후라는 인물과 그녀가 살았던 시기의 중국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서로 분류해야 맞을 것 같다.  역사서를 좋아하는 내겐 참 다행이지만, 이 책을 자기계발서류의 책으로 알고 읽기 시작한 사람에겐 다소 실망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솔직히 책을 다 읽고서는 이 책의 제목을 "서태후를 통해 본 중국 근대사"라든가, 단지 "서태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시아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서양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외부의 위협과 근대국가로의 변모를 지향하는 내부의 움직임이 혼재했던 우리나라나 중국의 근대사의 서막은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선 각종 사건들과 인물들이 머리 속에서 짬봉이 되어버리곤 한다. 다양한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이 혼재했던 그 시기, 그 공간에 대한 혼란스러움 때문일까. 사건의 흐름을 대충은 파악은 하겠지만, 원인과 결과와 인물 간의 관련성 등은 늘 "왜?"라는 의문이 남지만, 대충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버리기 일쑤였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 마음에 든다.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약 50년을 권력을 쥐고 있었던 서태후와 그 주변인물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 책의 주요내용은 함풍제의 사(死,1861)후로부터 서태후의 사망(1908)년까지 서태후가 어떻게 청왕조의 정권을 장악했으며, 그녀는 어떤 성격의 인물이었는지, 그녀가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그녀의 삶이 갖는 중국사에서의 의의는 무엇인가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면, 함풍제의 사후 동치제, 광서제의 두 어린 황제를 연달아 즉위시키고, 황제가 어리다는 것을 이유로 수렴청정과 훈정을 했으며 그를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던 서태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남자들보다(이런 표현엔 어폐가 있다만..) 훨씬 권력욕이 강했던 여인 서태후.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친아들과 조카를 황제자리에 두고서도 오히려 그들을 폐인으로 몰고 간 장본인. 두 황제 뿐만 아니라 청왕조의 멸망을 재촉했던 그녀의 삐뚤어진 권력욕을 보며, 어떤 조직에서나(국가라면 더더욱 더) 지도자의 역량이 사회 발전 혹은 퇴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사치는 그 시기 평범한 중국인들이 겪었을 물질적 정신적 고통과 빈곤과 대비되기에 더욱 눈에 고깝게 보였다.

 

    죽음이 임박해서도 또 한번의 권력 장악을 위해 겨우 세살 된 부의를 황위에 앉힐 것을 결정한 그녀건만, 그녀의 생에 마지막 말은 그녀의 삶과 비교해 보아 아이러니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대사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니 여성이 많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p483)라니... 그러는 당신은 여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말을 할 만큼 당신은 국가의 대사에 관여하지 않았던가..? 

 
   그간 이름만 알았지 실체를 몰랐던 서태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즈음의 중국역사에 대해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책이다. 경영서 혹은 자기계발서보다는 중국근대사를 다룬 역사책으로 분류하는 쪽이 더 적절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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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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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올초에는 사극열풍 덕이었는지, "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서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세종에 대한 책을 다섯권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섯권 책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책 [이경 고종황제]의 글쓴이, 이상각 씨의 책 [이도 세종대왕]이었다. 세종이 이룩한 여러 업적 중에서도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칭송에 칭송을 더해도 부족할 한글창제에 대해서는 글쓴이 역시 강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책 앞머리에 과감한 음영처리로 눈에 쏙 들어오게 편집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서평 제목도 그러했거니와 "현대적인 모습의 세종"이 유난히 눈에 띄인 책이기도 했다. 이 책 [이경 고종황제]의 프롤로그에서 글쓴이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적인 어투로 역사책을 가볍게 썼다는 독자들의 원망을 듣기도 했다."(p9)고.. 글쓴이의 그 말을 듣고서 지난번에 내가 썼던 서평을 읽어보니 나 역시 그를 "원망"(?)한 독자 중 하나였다. 글쓴이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그가 재구성한 대화체가 너무 오버스럽고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서평 중에 있었다. 글쓴이의 집필의욕에 상처가 되었다면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각설하고. 이 책과 고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역사를 많이 모르기 때문에 내겐 역사에 대해 좀더 알아야겠다는 욕심이 있다.  유난히 헷갈리고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든 시기가 우리의 근대사부분이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 게다가 외국과의 관계들까지 그야말로 짬뽕이 되어서는 엉켜버린 실타래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 역사이야기. 도식적으로 정조 사후 3대60년간의 세도정치와 그 후의 흥선대원군의 집권, 일제강점기, 해방 등의 단어가 떠오를 뿐 그 자세한 내막이 궁금했었다. 그 엉킨 실타래의 첫 가닥이 내겐 고종의 등장부터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까.. 내겐 "고종의 등장 = 방향을 잘못 잡은 역사"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책의 시작은 내겐 약간의 의아함이었다. 그다지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인물 고종에 대해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라고 칭하고 있으며, "고종과 대한제국의 기분 좋은 재발견"이란 표현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 더해 "고종황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편견을 버려라!!"라는 강한 메세지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의 의문으로 시작해 "그러고 싶다."는 기대로 책을 펼쳐들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살펴본 고종은 글쓴이의 바람과는 달리 그닥 긍정적이지 못했다. 특별히 "잘 했다"고 할 만한 일을 찾기가 힘들다. 그건 그가 고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종이 그 시대의 왕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종과 정조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선의 정치를 주도적인 입장에서 강력하게 끌고 나간 것에 비해, 고종은... 글쎄.. 글쓴이는 중전 민씨와 부친 흥선대원군 사이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무능하고 나약한 이미지의 고종이 아니라,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던 주체적인 모습의  고종을 그려내려 했지만, 내겐 여전히 둘 사이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나약한 임금이 눈에 보일 뿐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일까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일까. 만약에 고종의 자리에 세종이나 태종 혹은 정조가 앉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달라졌을까..? 아관파천 이전까진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를 않는다. 아관파천 이후에도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 속으로야 역발산 기개세의 기상을 가졌다 한들 하나도 실행된 것이 없는 듯한데, 무엇으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런지 모르겠다.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일까..? 내가 몰랐던 고종의 시대에 대해서는 좀더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편견"을 버릴 수는 없었던 그의 이야기. 글쓴이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 서평을 쓰고 있자니 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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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백한 운명인가, 독선과 착각인가 타산지석 11
김정명.최승은 지음 / 리수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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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글쓴이들과 함께 한바퀴 여행한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서양역사 개설서를 비롯 몇 권 접해본 기억이 있지만, 미국의 현재 모습을 다룬 책은 자주 접하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관심을 가질 기회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간 내게 각인된 미국의 인상은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말썽쟁이 골목대장 같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명백한 운명"으로 번역되는 manifest destiny(서부 개척 시대의 영토확장에 대한 정당화로서 현재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사명으로 쓰임-p4))라는 낱말 역시 그것이 가지는 과거의 의미로만 알고 있었을 뿐,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는 그간 간과해왔다.   

   최승은, 김정명 두 글쓴이는 "세 차례에 걸쳐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긴장과 호기심으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 사람과 가치관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책 앞날개). 그간 접해본 특정 국가에 대한 역사서나 개론서 등은 너무 자세해서 읽기 질리거나 혹은 너무 개괄적이라 수박 겉핥기를 한 듯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 종종 있었는데 비해, 이 책은 적당히 읽기 좋은 수준의 책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관점이다.) 너무 장황하거나 소략하지도 않으며, 글쓴이들이 직접 미국에 몇 차례 거주하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미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미국에 한발짝 다가선 느낌이랄까..

 

    글쓴이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크게 네 가지. "1부, 미국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와 "2부, 미국인의 삶, 행복한가 외로운가" , "3부, 결코 만만찮은 미국의 교육" 그리고 "4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 광활하고 다양한 풍광"으로 나누어진다.

  <1부, 미국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서는 미국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고 있다. 230여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 미국. 미국의 역사에 대해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글쓴이들이 미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미국의 역사를 흔히들 그러는 것처럼 백인중심적인 사건의 나열로 풀어가지 않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에 대해서 그리고 현재와의 관련성을 고려해 선별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달랐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이나 아시아 이민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언급해주고 있어 글쓴이들이 미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균형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 미국인의 삶, 행복한가 외로운가>라는 주제도 참신했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는 글쓴이들의 미국 친구들, "일반적인 미국 중산층"이라 표현할만한 사람들의 예를 자주 소개해주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Joke, 아메리카니즘을 논하다](하야사카 다카시 지음, 2008.5.1)라는 유머집에 "인간의 모순"이란 주제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간이란 자주 모순을 범하는 생물이다. 그건 패스트푸드점에 있는 미국인을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더블치즈버거와 포테이토 라지 사이즈 그리고 '다이어트 콜라'를 주문한다. / 인간이란 자주 모순을 범하는 생물이다. 그건 미국인이 사는 집을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곳에는 다이어트를 위한 러닝머신과 바벨, 실내용 자전가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너머에는 높이 2미터 정도의 거대한 냉장고가 놓여 있다." 라는.. 물론 유머집이기에 약간의 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본 미국인의 모습도 그와 비슷하다. 끊임없이 비만에 대해 염려하고, 무설탕 제품을 찾고, 운동이 생활화된 그들이지만 한편으론 햄버거와 바비큐 등 육식에 대해서 집착하는 모습을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기존에 가졌던 미국인에 대한 인상이 이 책을 통해 달라지기도 했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그들(주로 백인)은 성적으로나 결혼 생활이 매우 개방적이다 못해 가끔은 문란하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성에 대해서 보수적이며, 기분에 따라 "마구(?)" 이혼도장을 찍어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보편타당한 원칙과 상식 안에서 평화롭게 자기 삶을 유지"(p129)하며 "가족의 안전과 주변의 평화, 개인의 권리만 보장된다면 세상사야 별로 개의치 않"(p129)고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내가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종종 떠올리곤했던 그것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어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좁은 국토, 많은 인구.  삶 자체가 경쟁이다 싶고, 그 경쟁에서 한발짝만 물러서도 낙오자가 되고마는(극단적인 표현이려나..?) 우리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듯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3부, 결코 만만찮은 미국의 교육>에서는 글쓴이들이 직접 아이들을 미국학교에 취학시키고 경험한 미국의 교육이야기, 그리고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보아온 미국의 교육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따져보고 있다. melting pot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이니만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우리도 배워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다.

 <4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 광활하고 다양한 풍광>에서는 글쓴이들이 직접 체험한 미국의 자연환경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어설프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언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좋다"거나 "싫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미국에 대해 가진 막연한 인상만으로 "말썽쟁이 골목대장"으로 생각했던 점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글쓴이들이 말한 대로 "아직은 젊은 나라" 미국.  분명 젊기에 부리는 객기와 고집(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명백한 운명"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모른다.)도 있지만, 결코 독선적인 착각만을 해대는 나라는 아니라는, 내가 몰랐던 많은 장점과 다양성을 가진 국가임을 발견하게 된 건 이 책을 통해 얻은 성과다. 균형잡힌 시각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이 글이 미국을 바르게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책 앞날개)는 글쓴이들의 바람이 내게 전해진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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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 - 조선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13인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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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부정적인 모습으로 기록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번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를 읽고 나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 대해서도 큰 점수를 주기가 힘들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견해이니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책에 대한 비난이 이렇게 쉬운 걸까..?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는 상당히 마음에 든다. 승자의 역사,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이 남긴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의 이면에 가려졌던 인물 혹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기억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역사라는 큰 틀의 퍼즐맞추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패배자]도, 이 책 [~배신자]도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너무나 잦은 편집상의 오류, 문맥이 맞지 않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문장들, 그리고 잘못된 용어의 사용과 잘못 씌인 글자들 때문에 책읽는 재미가 확 줄어버렸다. 사실 내가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역사분야의 책이기 때문에 더 까다롭게 더 꼼꼼히 읽으니 그런 오류들이 내 눈에 더 크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하다. 나는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 이유도 내가 잘 모르는 역사라는 큰 그림의 작은 부분이나마 알아가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통해 한두개 정도의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의 오류가 아니라 오류투성이인 책이라면 굳이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봐야할 의미가 없지 않을까..

 

    이 책의 오류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책173쪽에서 헌종의 사후 철종이 왕으로 즉위하기 전, 순원왕후와 그 남동생 김좌근의 대화를 재구성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은원군 밑에 다른 자식이 있었나요?"

     "그때 전계대원군이라고, 상계군의 동생이 하나 있긴 있었는데......"(p173)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맞는 것 같지 않다. "대원군"이라는 호칭은 "조선시대에 왕위를 계승할 적자손()이나 형제가 없어 종친 중에서 왕위를 이어받을 때 신왕의 생부()를 호칭하던 말"(출처 : 네이버백과사전)이다. 즉, 자신은 왕이 아니지만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칭호가 "대원군"인데, 철종이 왕으로 즉위하기도 전에 전계군을 "전계대원군"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인명(人名)에 대해서도 잘못된 기재가 매우 많다. 김종서를 "김정서"(p25)로, 광해군을 "공해군"(p91)의 인조반정 설명 박스)으로, 연잉군을 "영잉군"(p139 경종 설명 박스)으로, 안동김씨를 "암동김씨"(p168)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런 예이고, 을사조약을 "울사조약"(p257의 한규설 설명박스), 아관파천의 시기를 1896년이 아니라 "1986년"(p240)으로 쓰고 있다. 그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오류들. 글쓴이여, 편집자여! 책을 인쇄하기 전에 최소한의 교정을 보셨는가..? 안타깝다. 이렇게 좋은 주제와 기획의도로 이렇게 무성의하게 책을 만들다니.

 

   물론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역사이야기도 많다. 특히 세번째 주제 "조선을 역사에서 퇴장시킨 5인방"에서 다룬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5적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해본 주제다. 을사오적으로 뭉쳐서 두루뭉실하게 언급한 책만 봐왔던 것 같은데, 각각의 인물에 대한 이력과 생애에 대한 소개는 무척 흥미로웠다.

   남의 눈에 티는 잘 보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이지 않는 격일까..?  혹은 기대했던 책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까..?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아쉬웠다. 내가 모르던 것들을 여럿 알려주기도 한 고마운 책이기도 하지만 내용외적인 부분에 신경이 쓰여 내용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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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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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자살클럽]이라.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얼마전에 읽었던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이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도 "연애"란 걸 했던가 하는 궁금증에 펼쳐든 책에는, 내가 알고 있던 것, 혹은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연애를 했으며, 그 연애사건만으로도 족히 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비극으로 끝을 맺어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그냥 사랑"할 수 없는 현실에 죽음을 선택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한 신파조이건만, 연극이나 영화가 아닌 실제 이야기란 게 가슴이 짠했다. 이 책 [경성자살클럽]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실려 있지 않을까 하고 책을 펼쳤더니, 과연 몇몇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같은 주제라도 [~연애사건]과는 저자가 그 사건들 혹은 인물들을 바라보는 느낌도 다르고, 내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도 여럿 수록되어 있어 책읽기의 재미는 쏠쏠했다.

   

    자. 이 책의 내용을 마음가는대로 재구성해보자. 글쓴이는 <근대조선의 사랑과 전쟁> <근대 조선 잔혹사>라는 두 개의 큰 틀로 나뉜 열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자살충동의 순간"이라는 이야기를 해보련다. 물론 이 책을 바탕으로.. 시대적 배경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이미 잡아먹었으면서도)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서양의 제국주의는 조선에도 근대 사상과 문물을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적이라기엔 아직 구식의 냄새가 나고, 구식이라기엔 너무 급진적이다 싶은 요소들이 곳곳에 혼재되어 있는 그 시대 그 공간.

 

   가난하지만 그 가난을 자식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부모 아래에서 "나"는 태어났다. 갓 예닐곱살. "사람구실을 하려면 모름지기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까닭"(p211)에 부모는 "밥을 굶을지언정 어떻게든 자식 교육은 시키려"(p211)한다.  식민지 지배를 위한 총독부 건물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지으면서도 초등학교는 더 이상 짓기가 힘에 부친다는 사이토 경성부윤이란 넘의 망발이 치가 떨린다. 부족한 수용시설 덕분에(?) 초등학교 입시를 치러야 한다. 겨우 예닐곱살이 된 아이들이 입시에 시달려야 한다고...? 에라이 나쁜 넘들. 당신들에겐 조선인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세우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겠지..? 초등학교에 떨어진 "나". 콱 죽고 싶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애간장이 탄다. 초등입시 뿐인가? 이 후에도 치러야 할 시험은 많고 학교수는 부족하다. (제8화 유전입학 무전낙제, 입시지옥의 탄생)

 

   어렵사리 입학한 학교, 가난하기에 학교 일을 도와 학비에 도움을 보태려는 "나". 돈 문제로 오해가 생겼다. "나"는 돈을 훔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다 "나"를 의심한다. 심지어 선생이란 사람들까지 공개적으로 "나"를 의심한다. 그리고 "나"는 따돌림을 당한다.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다. (제6화 고학생 문창숙 집단 따돌림 자살 사건)

 

   신학문을 배우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나". 하지만 사회는 신여성을 향해 눈을 흘긴다. 집안에선 결혼을 하라고 성화다. 연애라도 실컷 해보자. 주변에 괜찮다 싶은 남자들은 이미 아내가 있다. 조혼의 폐습이 아직도 이어져 온다. 눈을 돌려보니 가까이엔 학창시절을 함께 한 "동성"의 친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성의 친구에게 연애감정을 느낀 "나". 숨길 것도 없다. 오히려 학생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유행처럼 번져나간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이른 결혼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다보니 세상이 싫다.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은 거다.(제7화 홍옥임*김용주 동성애 정사 사건)

 

  동성연애도 실컷 해 보았다. 이성에 관심이 간다. 빠져들듯 사랑한 그 역시 열렬히 "나"를 사랑한다. 사랑을 다짐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남자 이미 유부남이다. "나"를 속였던 거다. 그의 본처가 그에게서 떠나라고 협박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 역시 나를 피하는 눈치다. 억울하다. 그에게 속은 것이 억울하고, "나"를 보는 주변의 차가운 눈빛들도 억울하다. 이럴 때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은 거다. (제4화 박금례 순정애사)

 



    결혼이란 걸 했다. 하라는 강요에 한 결혼이지만 이 남자, 의외로 마음이 맞다. 행복하다. 하지만 시댁에서는 신여성인 "나"를 곱잖은 눈으로 바라본다. 사사건건 트집이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인"(p62)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며느리를 구속하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들에게  신여성인 "내"가 예뻐보일리 없다. 하지만 남편 때문에 "참는다." 하지만 그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힘들어 하던 남편은 병을 얻어 요절하고 만다. 남편이 죽고도 이어지는 시댁식구들의 횡포에 힘들다. 이럴 때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다.(제2화 청상과부 신여성 윤영애 자살사건)

 

    너무 도식적으로 이야기한 걸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말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의 사연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말이다. 이유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 책에 실린 그들의 "자살"은 사실 자살이 아니다. 시대상황, 주변환경이 그들을 "자살"하게끔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글쓴이의 말처럼 "아름다운 자살은 없다."(p294) 그리고 "그래도 자살은 아니다."(p300) 자살하지 말지어다. 뭐 급히 갈 것 있나?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 마음껏 누리고 그 시간이 다하면 가면 되는 거지..  식민지 하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저자에게 고마움의 말을 전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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