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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 올초에는 사극열풍 덕이었는지, "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서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세종에 대한 책을 다섯권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섯권 책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책 [이경 고종황제]의 글쓴이, 이상각 씨의 책 [이도 세종대왕]이었다. 세종이 이룩한 여러 업적 중에서도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칭송에 칭송을 더해도 부족할 한글창제에 대해서는 글쓴이 역시 강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책 앞머리에 과감한 음영처리로 눈에 쏙 들어오게 편집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서평 제목도 그러했거니와 "현대적인 모습의 세종"이 유난히 눈에 띄인 책이기도 했다. 이 책 [이경 고종황제]의 프롤로그에서 글쓴이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적인 어투로 역사책을 가볍게 썼다는 독자들의 원망을 듣기도 했다."(p9)고.. 글쓴이의 그 말을 듣고서 지난번에 내가 썼던 서평을 읽어보니 나 역시 그를 "원망"(?)한 독자 중 하나였다. 글쓴이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그가 재구성한 대화체가 너무 오버스럽고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서평 중에 있었다. 글쓴이의 집필의욕에 상처가 되었다면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각설하고. 이 책과 고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역사를 많이 모르기 때문에 내겐 역사에 대해 좀더 알아야겠다는 욕심이 있다. 유난히 헷갈리고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든 시기가 우리의 근대사부분이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 게다가 외국과의 관계들까지 그야말로 짬뽕이 되어서는 엉켜버린 실타래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 역사이야기. 도식적으로 정조 사후 3대60년간의 세도정치와 그 후의 흥선대원군의 집권, 일제강점기, 해방 등의 단어가 떠오를 뿐 그 자세한 내막이 궁금했었다. 그 엉킨 실타래의 첫 가닥이 내겐 고종의 등장부터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일까.. 내겐 "고종의 등장 = 방향을 잘못 잡은 역사"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책의 시작은 내겐 약간의 의아함이었다. 그다지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인물 고종에 대해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라고 칭하고 있으며, "고종과 대한제국의 기분 좋은 재발견"이란 표현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 더해 "고종황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편견을 버려라!!"라는 강한 메세지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의 의문으로 시작해 "그러고 싶다."는 기대로 책을 펼쳐들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살펴본 고종은 글쓴이의 바람과는 달리 그닥 긍정적이지 못했다. 특별히 "잘 했다"고 할 만한 일을 찾기가 힘들다. 그건 그가 고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고종이 그 시대의 왕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종과 정조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선의 정치를 주도적인 입장에서 강력하게 끌고 나간 것에 비해, 고종은... 글쎄.. 글쓴이는 중전 민씨와 부친 흥선대원군 사이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무능하고 나약한 이미지의 고종이 아니라,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던 주체적인 모습의 고종을 그려내려 했지만, 내겐 여전히 둘 사이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나약한 임금이 눈에 보일 뿐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일까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일까. 만약에 고종의 자리에 세종이나 태종 혹은 정조가 앉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달라졌을까..? 아관파천 이전까진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를 않는다. 아관파천 이후에도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 속으로야 역발산 기개세의 기상을 가졌다 한들 하나도 실행된 것이 없는 듯한데, 무엇으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런지 모르겠다.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일까..? 내가 몰랐던 고종의 시대에 대해서는 좀더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편견"을 버릴 수는 없었던 그의 이야기. 글쓴이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 서평을 쓰고 있자니 또 씁쓸해진다.